#12. 코로나 19, 언론은 중요하고 중요하다.

스페인 독감과 언론

by 오윤

스페인독감, 1918년, 한 해 동안 5천만 명이 스페인 독감으로 죽었다. 남한 인구정도의 규모가 지구상에서 사라진 것이다. 원인이 무엇인지, 어떻게 치료하고, 박멸해야 하는지, 다시 유행할 것인지, 100여년이 지난 지금 이 순간도 우리는 알지 못한다. 스페인독감은 이름엔 스페인이 붙었지만 알고 보면 미국 캔자스주 해스컬에서 발생한 미국의 역병이다. 왜 다른 국가의 명이 붙었을까? 이유는 심플하다. 미국의 힘이 세기 때문이다. 미국의 캔자스주를 독감 저장고보다 곡창지대로 부르는 편이 훨씬 듣기 좋다고 힘센 미국이 생각했고, 그래서 이름은 대서양 건너 스페인을 빌려온다(Wright, 2017/2017, p. 211).

12-1 스페인독감.jpg 출처: 중앙일보


어쨌든 그 시작의 공간으로 가보자. 1918년 3월 미국 캔자스주 해스컬. 초겨울부터 주민 수십 명이 중증의 인플루엔자로 보이는 것에 걸려 죽었다. 각목으로 얻어맞은 것처럼 끙끙 앓는 독감이었다. 폐렴으로 진행되고 검푸르게 변해 죽었다. 공포소설에나 나올 법한 독감이었다(같은책, p. 213). 해스컬의 한 농장. 확신하지는 못하지만 전문가들은 1918년 스페인 독감이 여기서 시작됐다고 믿는다.


원인은?

감염된 조류와 감염된 인간이 같은 돼지를 만난 게 원인이라 생각한다. 한번 상상해보자. 감염된 조류, 그 새는 조류인플루엔자를 앓고 있었다. 최소 100년 동안 닭과 거위 오리를 감염시킨 인플루엔자에 말이다. 같은 시간 인간은? 인플루엔자의 변종인 계절성 독감을 앓고 있었을 거다. 수백 년 동안 인간을 콧물과 고열에 시달리게 하는 독감말이다. 이 두 바이러스는 서로의 종을 감염시킬 수 없지만 동시에 돼지를 감염시킬 수는 있었다. 그렇게 돼지 세포에 두 바이러스가 결합해 신종 인수공통 바이러스가 탄생한다. 그것이 바로 바로 바로 H1N1이다. 이 조합은 기존의 인체 면역 체계가 인식하지 못하는 치명적인 조합이었고, 인간을 전염시킬 수 있었으며, 전 세계에 퍼져 5천만~1억 명을 죽였다. 공기 중에 떠다니는 바이러스를 흡입한 사람은 다 H1N1, 독감에 걸렸다.

1918년 인플루엔자로 사망한 환자의 35%가 20대였다고 한다. H1N1은 건강한 면역계를 과도하게 자극시켜 자신의 몸을 공격하게 만들었다. 코로나 19의 국면에서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사이토카인 폭풍(Cytokin storm)이 촉발된 것이다. 사이토카인은 체내에 바이러스의 침투가 발생했을 때 면역세포의 방출을 조절하는데, 사이토카인 폭풍이 일어나면 너무나 많은 면역세포가 감염 부위로 몰려들어 주변에 염증을 유발하고, 이것이 죽음의 원인이 된다(같은책, p. 215). 부연하여 설명하면 신종 바이러스에 의한 급성 감염이 일어나는 경우, 간혹 엄청나게 쏟아들어오는 바이러스를 감당하려고 탐식세포들이 무리하게 달려들 때가 있다. 이때 세포가 내뿜는 활성산소는 숙주 조직을 손상시키고, 사이토카인을 엄청나게 분비한다. 그 신호를 받고 달려온 2차 면역세포(방어막), 특히 t세포가 감염세포를 마구 죽이는 사태가 벌어지는데, 이때 숙주 조직에 과도한 염증을 유발하게 되고, 심할 경우 숙주 생명을 위협할 수 있다. 이것이 일명 ‘사이토카인 폭풍’ 효과다. 이 열정과 질주는 당연하게도 노년층보다 젊은층에서 자주 일어난다(최강석, 2016, p. 190).


12-2 언론(time.com).jpg 출처: time.com

미국 한복판에서 젊은층의 목숨을 앗아가는 새로운 독감의 출현. 이에 대한 언론의 대응은 어땠을까? 조용했다. 조용해도 너무 조용했다.

이유는 1차 세계대전.

미국은 세계대전 참전을 결정했고, 전쟁에서의 승리를 위해 정부에 대한 모독, 비평, 불충, 악의, 독설을 금지한다. 괜히 정부 비판적인 이야기를 출판했다가는 재수 없이 징역 20년까지 수감될 수 있었다. 신종 바이러스 전염병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사람들에게 큰 소리로 정확하게 알려야 했던 언론은 입을 닫았다. 20세기 미국 언론을 대표하는 저널리스트 월터 리프먼은 세계대전 참전 시기의 미국 언론은 미국에 유리한 기사만 발표해야 한다며 이를 관장하는 보도국 신설을 대통령에게 권고하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스페인독감은 조용히 급속하게 퍼져나간다. 왜? 옆동네는 몰랐으니깐. 질병은 캔자스주 해스컬에서 군인들을 통해 전국에 있는 여타 부대로, 해외로 이동했다. 확산 속도도 놀랍고, 사망사 숫자도 놀랍지만, 이보다 더 놀라운 것은 언론의 침묵이었다. 이는 비단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라, 1차 세계대전에 참여한 모든 참전국에서 공히 나타나는 현상이었다.


12-3 마스크.jpg 출처: time magazine


그렇다면 왜 스페인독감이란 이름이 붙었을까? 스페인은 제 1차 세계대전 중 중립국이었다. 어떤 이야기를 쓰든 투옥되거나 매국노 딱지가 붙을 염려가 없었다. 독감과 사망자 수 증가를 보도할 수 있었고 그렇게 스페인에서 첫 기사가 나갔다. 1918년 5월 22일의 일이었다. 그 후 일주일동안 스페인에서만 알폰소 국왕을 비롯하며 800만 명이 감염되었다. 그해 7월에는 영국 런던으로 퍼져 첫 주에서 약 290만 명이 죽었다. 그런데도 영국 신문들은 단순히 ‘전쟁 피로로 불리는 일반적인 신경쇠약’이라 주장했다. 발병률과 감염률은 과장이라 주장했다. 언론의 축소와 은폐와 반비례하여 전염병은 배를 타고, 바람을 타고 곳곳으로 이동했다. 젊은이들은 애국심으로 똘똘 뭉쳐 수송선에 올라탔고, 바이러스는 그 이동 흐름을 따라 빠르고 효과적으로 세계로 전파됐다. 1차 세계대전 중 4만 명의 미군이 스페인독감으로 목숨을 잃었다. 이는 베트남전쟁의 미군 사망자 수보다 겨우 7천 명 적은 규모라 한다(같은책, p. 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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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8년 여름이 되자 스페인독감의 위력은 약해졌다. 뭔가 코로나 19와 약간은 비슷한 느낌이다. 그러나 서늘한 가을바람과 함께 2차 폭풍이 불기 시작했다. 가장 심한 곳은 미국 동부 필라델피아였다. 시 당국이 여러 우려에도 불구하고 대규모의 대중 집회를 감행한 것이 화근이었다. 외출 금지와 사회적 거리두기가 필요한 시점에 대중 퍼레이드를 강행한 거다. 참가 시민은 무려 20만 명이었고, 그 주에 2,600명이 숨졌다. 묘한 가을이었다. 언론이 숨기고 은폐해도 이제는 모두가 전염병에 관해 알고 있었지만 그 누구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누군가는 전염병에 대해 심드렁한 태도를 보였고, 누군가는 전염병을 이기기 위해서는 청결한 생활과 유쾌한 생각이 요구된다고 주장했고, 부분적으로는 맞는 말이지만 그것이 질병을 막는 근본 치유책은 아니었다(같은책, p. 225). 어쨌든 1918년 여름 미국의 풍경은 2020년 여름 미국의 분위기와도 상당히 비슷하다.



사람들은 왜 갑자기 중세 시대로 돌아갔는지 의아해했다. 필라델피아에서는 마차가 거리를 누비며 보도에서 썩어가는 시체를 수거해갔다. 시카고에서는 보건국장이 ‘질병보다 공포가 더 치명적’이기 때문에 ‘공동체의 사기 진작에 방해가 되는 일은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달의 치사율은 15%에서 40%로 치솟았다(같은책, p. 227). 그해 10월, 한 달 동안 20만 명이 스페인독감으로 목숨을 잃었다. 사람들은 겁에 질렸다. 국가, 공동체, 시스템, 언론은 없었고 사람들은 각자도생하기 시작했다. 그제서야 샌프란시스코 시의회는 마스크 의무 착용 규제안을 통과시켰고, 어떤 보건 검사관이 마스크 착용을 거부한 남성에게 총을 쏘기까지 했다, 시카고에서는 한 남성이 가족의 목을 베며 ‘내 방식대로 치료할 거야!’라고 소리치기도 했다(같은책, p. 230)


겨울이 되자 사람들은 질병과 싸우기를 포기한 것 같았다. 그 사이 너무 많이 감염됐고, 너무 많이 죽은 것이다. 그런데 바로 그때 유행이 멈췄다. 숙주를 너무 많이 죽여서일까? 어떤 이유에서인지 바이러스의 위세가 줄어든 것이다. 기적적으로 유행이 멈췄다. 스페인독감으로 인해 전 세계적으로 2500만 명에서 1억 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미국인만 약 67만 5천 명이 죽었다고 여겨진다. 그 질병은 여전히 치료법이 존재하지 않는다. 다시 유행이 시작된다면 인류는 살아남을 만큼 행운이 따르지 않을지도 모른다. 존 베리는 <지독한 인플루엔자>에서 다음과 같이 기술한다.

“당국자는 대중의 신뢰를 유지해야 한다. 그 방법은 아무것도 왜곡하지 않고 숨기지 않고 누군가를 조정하려 하지 않는 것이다... 리더십을 발휘해 어떤 공포든 그 존재를 구체화해야 한다. 그래야만 사람들이 공포를 이겨낼 수 있을 것이다.” (같은책, p. 233)


어디 당국자만일까? 당국자가 그렇지 못하다면 언론이라도 그 역할을 해야 한다. 알려야 할 것을 제대로 정확하게 전하여 민중을 보호하는 것이 그들의 이상적인 임무이기 때문이다(같은책, p.233). 언론을 제 4권력으로 부르는 이유도 여기에 있는 것 아닐까? 안전장치인 거다. 입법부, 사법부, 행정부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때 이를 보완하는 장치. 1918년, 스페인독감이 전 세계를 강타할 때 언론은 전쟁을 핑계로 제대로 알리지도, 경고하지도, 예방하지도 못했다. 그렇게 수많은 사람들이 과도하게 죽어나갔다. 만약 필라델피아의 단 한 신문에서라도 ‘퍼레이드 참가는 금물, 어리석은 퍼레이드 제발 취소해야’라는 헤드라인을 냈다면 수백 명은 목숨을 건졌을 것이다. 겁먹지 말라는 것보다 훨씬 나았을 것이다(같은책, p. 233~ 234).

that's ok. no problem.


12-5 denber voice.jpg 출처: the denver post


모든 걸 긍정적으로 해석하고, 괜찮다고 이야기한다고 정말 세상만사가 잘 굴러가는 것은 아니다. 위기의 국면에서 한 공동체의 힘은 정보가 제대로 주어졌을 때, 공개되었을 때 가장 강하다. 수많은 엘리트주의자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겠지만, 우리는 제대로 된 팩트를 알고 있다면, 좀 더 현명하고 좀 더 선명하게 힘을 합쳐 위기를 넘어설 수 있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믿는다. 그리고 그것이 지금 이 순간, 코로나 19의 시대를 넘어서는 국면에서 한반도의 작은 땅에서 저널리스트로 살아가는 사람들, 살아가고자 하는 사람들이 기억해야 하는 한가지일지도 모르겠다.



<참고문헌>

최강석 (2016). <바이러스 쇼크>. 서울: 매일경제신문사.

Wright, J. (2017). Get Well Soon: History's Worst Plagues and the Heroes Who Fought Them. 이규원 역(2017). <세계사를 바꾼 전염병 13가지>. 서울: 산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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