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 코로나 19 시대, 필요한 것들.

by 오윤

코로나 19에 대한 이야기는 코로나 19 그 이상이었다. 그것은 바이러스와 면역 세포의 전쟁사이기도 했으며, 인간중심, 각자도생의 악순환에 맞서서 헌신과 연대의 가치를 지키는 싸움이기도 했다. 지난 몇 달간 코로나 19 관련 이야기를 모으면서 생명과학과 역사학의 관점을 주로 차용한 것은, 코로나 19 바이러스의 특징이 무엇이고, 이런류의 전염병에 대처하는 인류의 대응 방식과 그것의 결과, 의미를 정리하는 것이 새로운 장을 준비하는 첫 단추가 될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13-1면역세포.jpg 출처: 동아사이언스

정말 정말 오랜만에 생명과학 교과서에 준하는 텍스트들을 다시 읽으면서 흥미로웠던 점은 바이러스와 면역 세포의 전쟁, 여기에서 인간의 몸은 하나의 전쟁터에 불과하다는 사실이었다. 물론 인간도 멍하니 당하고만 있지는 않는다. 바이러스에 대응하기 위한 수천가지 방식을 진화시켜왔는데, 역사적으로 증명된 가장 현명한 방식은 사회적 거리두기였다.


변이하고 이동하려는 바이러스와 통제하고 조절하려는 과학, 이 싸움에 엔딩은 없으며, 시즌은 계속 이어진다는 것, 이 전쟁은 인류가 바이러스를 이겨먹을 수 있는 게임이 아니며, 제로섬 게임은 더욱 아니라는 것도 과학을 통해 알게 된 거다. 좀 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보면 인류와 바이러스가 원시 세계에서 같은 조상을 가진 존재라는 사실, 도시 한 복판에 살던 인류가 원시 세계에 살던 바이러스와 다시 만난 데에는 인류가 만든 문명 그 자체의 원심력과 구심력이 큰 영향을 미쳤다는 것 역시 교과서에서 확인한 바다.


13-8 거리두기.jpg 출처 : bbc


그렇다면 우리는 이길 수도 없고, 시즌이 종료되지도 않을 이 바이러스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안토니누스역병에서 흥미로운 점은 강력한 지도자와 단호한 실행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전염병을 무시하거나 미화하거나 질병에 걸린 사람을 모욕하는 것은 문제 해결에 어떤 도움도 주지 않는다. 매 순간 가장 적절하다고 생각하는 노력을 해야 하고, 때론 터무니 없는 노력과 시간도 들여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외면하지도, 무시하지도 않는 거다. 전염병은 심각하게 여겨지지 않을 때 기뻐하기 때문이다.


13-4 최전방1.jpg 출처: 경향신문


가레톳페스트가 인류를 괴롭힌 오랜 시간을 떠올려보면, 인류가 새로운 바이러스에 대응하는 과정은 결코 단막극이 아니라는 것, 흡사 언제 끝날지 모르는 일일드라마와 비슷하고, 그 드라마 안에는 누군가를 비난하고, 미워하고, 낙인찍고, 미쳐가는 캐릭터들이 넘쳐난다는 사실과도 마주하게 된다. 이 드라마 안에서 괴물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우애의 공동체가 필요하다는 것, 주변 사람들이, 마을이, 국가가 나의 치유를 진심으로 바란다는 것을 아는 것만으로도 이미 바이러스에 감염된 너도, 앞으로 바이러스에 감염될지 모르는 나도 그 시절을 잘 버텨낼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됐다.


한 문명을 몰락시킨 두창의 위력을 마주하면서는 개인적으로도 문명적으로도 힘을 키워가는 것, 면역력을 키워가고, 새로운 바이러스로부터 나타날 질병에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대비해가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하다는 사실도 새삼 깨닫게 되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당장 눈에 보이는 실적, 과제, 결과를 위해서만 움직이는 우리의 몸과 문명 자체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생각도 했다. 개발, 확장 논리에서 탈주하여 조금은 단호하게 원시 세계를 지킬 필요도 있고, 과도한 육식/소비를 줄여나가고, 그것을 거래하는 시장에 대한 관리도 필요하다. 공공 의료, 기초 과학에 대한 사회적 투자 역시 늘려가야 함은 물론이다. 아마도 이 과정은 문명의 습관, 관행을 바꾸는 일이기에 지난한 일이 될지도 모르겠지만, 이걸 해내지 못하면 미래 어느 시대에는 아무 것도 아닌 바이러스성 전염병 때문에 우리 문명이 모래성처럼 무너질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13-5 이미지.jpg 출처: getty image

두터운 침묵을 발판으로 지독히도 인간을 괴롭혀 온 매독의 역사를 마주하면서는 전염병에 걸린 것을 죄악시하고 부끄러워하고 침묵하면 그 바이러스에 완패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위기의 순간, 그 위기를 정면으로 마주한 사람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것, 자신의 아픔을 드러내는 것, 그게 어렵다면 아픈 사람과 함께 하는 사람들이 이야기할 수 있는 장을 만들어내는 것이 참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침묵하던 목소리가 광장에 울려 퍼지고, 이 목소리에 사회가 귀를 기울이기 시작하면 치료법을 찾기 위한 간절함은 좀 더 강렬해지기 마련이다.


같은 맥락에서 나병 환자와 함께 한 이태석, 다미앵 신부의 이야기를 보면서는 결국 최고의 시나리오는 공동체가 힘을 합쳐 환자를 돕는 것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다정하게 돌보고, 아픈 손을 맞잡고, 존엄하게 살 수 있도록 필요한 모든 일을 하는 것. 누군가는 이 일이야말로 제도와 시스템과 국가가 해야 하는 일이라 말하겠지만, 그 무겁고 관료적이며 눈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움직이기 위해서라도 사람들의 작지만 큰 움직임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선한 영향력의 진화. 이 진화의 계열에 들어가는 첫 번째 단추는 뭐 거창한 게 아니라 주변에 대한 관심과 애정, 그리고 그것을 표현할 줄 아는 작은 용기 정도라는 것, 코로나 19시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 작은 관심과 애정, 그리고 용기라는 마음을 가지게 됐다.


장티푸스 메리의 이야기를 읽으면서는 전염병 위기가 절정에 치닫는 순간, 나의 공포감 때문에, 우리의 무지 때문에, 언론의 나쁜 프레임 때문에 누군가를 손가락질하거나 비난하고 싶은 마음을 경계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왜냐하면 문제를 푸는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뿐더러, 그 시간에 어떻게 문제를 풀고, 어떻게 손잡을지를 고민하는 게 훨씬 더 생산적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스페인 독감이 전 세계적으로 확산된 1918년의 이야기를 따라가면서 언론의 역할, 진실의 무게가 얼마나 큰지를 새삼 느끼게 됐다. 괜찮다고 이야기한다고 정말 세상만사가 잘 굴러가는 것은 아니다. 위기의 국면에서 한 공동체의 힘은 정보가 제대로 주어졌을 때, 공개되었을 때 가장 강하다. 우리가 제대로 된 팩트를 알고 있다면, 좀 더 현명하고 좀 더 선명하게 힘을 합쳐 위기를 넘어설 수 있는 것이다.


13-6 뉴욕.jpg 출처 : 뉴욕타임즈


코로나 19를 검색어로 뉴스를 검색해보면 괜히 불안하고, 괜히 인간에 대해 깊은 환멸을 느끼게 되는 경우가 있다. 이렇게 삶과 세계에 대해 환멸을 느낄 때마다 미국의 작가 제니퍼 라이트는 <어제의 세계(슈테판 츠바이크, 1942)>에서 다음 구절을 꺼내본다고 한다.


“우리가 오늘날 반쯤 눈이 멀고 심란하고 기진맥진한 상태에서 길을 더듬고 있는 공포의 심연 속에서도, 내 유년 시절의 오래된 별자리를 다시금 올려다보며 언젠가 이 퇴보도 앞으로, 그리고 위로 나아가는 진보의 영원한 리듬 속 하나의 막간에 불과할 것이라고 스스로 위로한다.”


과연 그럴까? 역사의 흐름은 대개 그렇다고 믿을 수밖에 없다. 우리는 나아지고 있다. 비난하는 힘보다 헌신과 연대의 힘이 더 세다. 우리는 좀 더 배려하게 될 것이고, 좀 더 똑똑하게 싸울 것이다. 그 과정에서 이웃에 잔혹하게 굴지 않을 것이고, 따뜻하고 용감한 마음이 찌질한 마음보다 강할 것이다. 수많은 바이러스 전염병과 조우하는 순간, 때론 아프기도 하고, 때론 밀리기도 하며, 때론 고립되기도 하겠지만, 짧게 보면 비극, 길게 보면 희극이라고 믿으며 담대하게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 그 과정에서 인류의 나쁜 습관, 관성을 반성할 수도 있고, 겸손함을 배울 수도 있으며, 수많은 생명들과 공존하는 몸을 만들어갈 수도 있다. 그렇게 주도적으로 가보는 것, 어쩌면 뉴노멀 시대란 예기치 않게 만들어진 언택트 시간, 누군가와 연결되지 않은 시간을 매개로 새로운 습관, 새로운 몸, 새로운 마음을 만들어가는 과정일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나를 믿고, 동료와 공동체의 선한 힘을 믿고 가보는 수밖에 없다. 그 과정에서 무엇을 만나든 뚜벅뚜벅...




<참고문헌>

Wright, J. (2017). Get Well Soon: History's Worst Plagues and the Heroes Who Fought Them. 이규원 역(2017). <세계사를 바꾼 전염병 13가지>. 서울: 산처럼.

Zweig, S. (1985). Die Welt Von Gestern. 곽복록 역 (2014). <어제의 세계>. 서울: 지식공작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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