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적 유전자>를 읽고...
코로나 19를 이야기하다 문득 이 책을 다시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리차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
“모든 동물, 모든 인류는 유전자에 의해 창조된 기계다. 성공한 유전자의 기대되는 특질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비정한 이기주의다(Dawkins, 1976/2006, p. 42)."
바이러스와 인간의 싸움을 보며 이 전쟁을 통제하는 것은 바이러스도 아니고 인간도 아니며 비정한 이기적 유전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유전자의 기원을 이해하기 위해 원시 세계의 해양으로 돌아가 보자.
유전물질 DNA의 구성 요소인 퓨린(염기의 아데닌, 구아닌 계열)이라든가 피라미딘(염기의 티민, 시토신)이라고 하는 유기물이 부분적으로 농축되어 있던 세계. 유기물들이 태양으로부터 자외선과 같은 에너지의 영향을 받아 더 큰 분자가 된다. 이 분자는 원시 해양 속에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유영한다. 이 과정에서 때론 과거와 다른 놀랄만한 분자가 생기기도 한다. 가령 자기를 복제하는 분자같은 것. 놀랍지 않았을까? “자 봐봐~ 내가 나를 하나 더 만들 거야. 짜잔...”
자기 복제자. 이 분자들은 스스로의 복제물을 만드는 특성을 지닌다. 생각해보면 이건 정말 깜짝 놀랄만한 사건이었다. 자기를 복제하다니! 복사기에서 복사를 하는 것처럼 수많은 똑같은 분자가 만들어지기 시작했고, 그 사이에 종이가 끼거나, 잉크가 옅어지거나, 사본을 만드는 과정에서 오류도 누적된다. 흥미로운 것은 이 오류에 의해, 이 엉뚱한 복제에 의해 때로는 진정한 의미의 개량이 일어나기도 하고, 진화의 국면이 점핑하기도 한다는 점이다. 진화를 가능케 하는 것은 결국 잘못에서 비롯되는 것이다(같은책, p. 63~65.)
진화란 자기 복제자(오늘날의 유전자)가 오류를 막기 위해 모든 노력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막무가내로 생겨난 일일지도 모르겠다. 초기의 자기 복제자를 살아 있다고 하든, 하지 않든 그들은 생명의 조상이며, 우리의 선조인 것이 분명하다. 이 관점에서 보면 바이러스는 우리의 조상임은 분명하다. 바이러스는 어느 순간 누적된 오류와 여러 변종 사이의 생존 경쟁을 겪으면서 최초의 살아있는 세포로 진화했으며, 이 살아있는 세포는 단순히 현재 이 순간에 존재하는 것만이 아니라 내일 미래에도 계속 존재하기 위해 운반자까지 만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살아남은 자기 복제자는 자기가 사는 생존 기계를 스스로 축조한다. 이 자기복제자를 우리는 유전자라 부른다. 그리고 코로나 19 바이러스든, 조류든, 돼지든, 인간이든 모두 그것의 생존기계다(같은 책, p.67~69)
현대의 자기 복제자에 관하여 우선 이해해야 할 것은 무리지어 사는 성질이 대단히 강하다는 사실이다. 하나의 생존 기계는 하나만이 아닌 수십만이나 되는 유전자를 가잔 하나의 운반자다. 이를테면 설계도의 각각의 페이지에는 건물의 각 부분에 관한 지시가 쓰여 있고, 각 페이지는 수많은 다른 페이지의 앞뒤를 참조함으로써 의미를 갖는 것과 같다. 바이러스든, 인간이든 그 개체에 머무는 유전자 조합은 개체와 함께 단명하지만, 유전자 자체는 잠재적으로 수명이 길다. 그것들이 밟는 길은 끊임없이 교차하고 횡단하면서 세대에서 세대로 이어지는 것이다(같은 책, p. 77~78). 놀랍지 않은가?
모든 살아있는 생명은 생로병사의 흐름을 겪지만, 유전자는 죽지 않고 행진을 계속할 따름이다. 그러나 모든 유전자가 행진을 지속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유전자는 100만 년을 살 수가 있으나 많은 새로운 유전자는 최초의 한 세대조차 넘기지 못한다. 이 사이에서 유전자 사이에 경쟁과 협력이 일어난다. 여기에서 100만 년을 살아남는 유전자는 환경을 가장 잘 이용하도록 자기의 생존 기계를 제어하는 유전자일 것이다.
그렇다면 100만 년을 살아남는 유전자의 특징은?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유전자는 고립 상태에서 개별적으로 우수한 것이 아니라, 유전자 풀내의 다른 유전자를 배경으로 해서 일할 때 우수한 것이면 선택된다는 점이다. 우수한 유전자는 몇 세대에 걸쳐 몸을 공유해 가지 않으면 안 될 다른 유전자들과 양립할 수 있어야 하고 또 보완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같은 책, p. 166)
유전자 풀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유전자가 서식하는 장기적 환경이라 할 수 있다. 우수한 유전자들은 유전자 풀에서 살아남은 것들이다. 우리는 흔히 이런 이야기를 한다. “저 놈은 유전자가 훌륭한 것 같아.” 유전자가 훌륭하다는 것은 유능한 몸(생존 기계)을 만드는 능력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전제조건이 있다. 단수로서 유전자가 복수로서 안정된 유전자 세트 안에 풀단으로 자리잡고 있어야 한다는 것. 유전자는 우수성으로 선택된다. 그러나 이 우수성은 진화적으로 안정된 세트, 즉 현재의 유전자 풀을 배경으로 한 성과에 기초하여 판정되는 것이다(같은 책, p. 169).
여기서 질문. 2020년 인간의 안정된 유전자 풀에 코로나 -19 바이러스는 어떤 존재일까?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우리의 몸과 같은 유전자 집합체에서 이탈된 유전자일지도 모른다. 코로나-19 바이러스는 단백질 옷을 입은 RNA 자기 복제 분자다. 그들은 주위에 단백질의 옷을 입으며 예외 없이 기생적 존재다. 이 견해에 따르면 바이러스는 도망쳐 온 반역 유전자로부터 진화된 것으로 정자와 난자라 하는 일반 운송 수단을 타지 않고 공기를 통해 생물의 몸에서 몸으로 직접 여행한다. 안정된 유전자 세트에 들어가지 않은 반역 유전자의 반란이라고 할까?
물론 도킨스에 따르면 이 견해는 하나의 상상 수준인데, 만약 이 상상이 유효하다면 우리를 구성하는 유전자의 대부분이 과거 언젠가에는 반역 유전자였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그러니깐 우리는 우리 자신을 바이러스의 집합체로 간주해도 좋은 것이다(이 상상력이란~~~). 이 바이러스 유전자들의 일부는 과거 어느 순간부터 인간과 공생적 협력 관계를 맺고 정자와 난자에 실려 몸에서 몸으로 이동했을 거다. 그리고 그 밖의 많은 바이러스 유전자들은 인간과 무관하게 지냈을 거다. 그러다 어떤 환경에서 인간의 몸에 칼을 휘두르는 반역 유전자로 변신하여 인간의 몸을 숙주로 삼고, 가능한 방법으로 이동을 시작한 거다(같은 책, P. 319).
그렇다면 이 반역 유전자를 달래 인간 유전자 세트에 안전하게 안착시킬 방법은 없을까? 방법을 고안하는 것은 인간 의지의 산물이면서 그것의 결과는 문화라는 양태로 드러난다. 일상적 삶의 양식으로서의 문화, <이기적 유전자>의 저자 도킨스는 이를 밈이라 부른다. 유전자가 유전자 풀을 배경으로 살아가는 것처럼, 밈 역시 밈 풀을 배경으로 삼는다. 유전자의 자기 복제와 유사한 방식으로 밈은 모방이라고 할 수 있는 과정을 매개로 하여 인간에서 인간으로, 집단에서 집단으로, 뇌에서 뇌로 건너다닌다.
이동 방법은? 말과 글.(p. 336).
밈은 옛 원시 수프 속을 무질서하에 떠 있는 초기의 자기 복제 분자를 닮았는지도 모르겠다. 서로 다른 문화와 생각이 경쟁하고 공존하고, 그러면서 우수한 밈이 살아남게 된다. 우수한 밈은 우수한 유전자처럼 다른 밈들과 양립할 수 있어야 하고 보완적이어야 하며, 밈 풀내의 다른 밈을 배경으로 삼는다. 오랫 동안 남은 종교, 사상, 철학, 음악, 춤 등이 그 대표적 예일 것이다. 여기서 필요한 것은 과거에 대한 모방 능력, 그 다음 필요한 것은 그 능력을 완전무결하게 이용하면서 진화해 나가는 것이다(같은책, p. 347).
그렇다면 지금 이 순간 필요한 것은, 인간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밈의 진화아닐까? 코로나 19시대 이전의 밈이 단기적인 이윤, 인간 중심적인 문화, 확장과 정복의 밈 풀안에 존재했다면 코로나 19 이후 시대의 밈은 달라져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동어반복적인 서사에서 자유로워지는 거다. 그렇다면 코로나 19시대, 밈은 어느 풀 안에서 움직여야 할까? 이 풀의 기본로직은 무엇일까? 다음 장에서는 이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겠다.
<참고문헌>
Dawkins, C. R. (1976). The Selfish Gene. 홍영남 역 (2006). <이기적 유전자>. 서울: 을유문화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