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베르 카뮈 <페스트> 2
오랑시, 봉쇄가 시작되었다. 타협의 여지가 없는 봉쇄였다. 양해, 특전, 예외란 단어들이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했다. 처음에는 설마했던 시민들도 여러 날이 지나서야 그 의미를 깨닫게 되었다.
“전 지금 가족 때문에, 애인 때문에, 아이 때문에 떠나야 해요.”
처음에는 심장에서 피를 흘리며 나왔던 말들이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의미를 잃고 텅 비게 되었다.
페스트의 창궐, 그것이 오랑시민들에게 가져온 것은 귀양살이였다. 이 귀양살이에 대해 카뮈는 이렇게 묘사한다.
심연과 절정의 중간 거리에 좌초한 그들은 산다기보다는 부유하고 있었다. 방향 없는 많은 날과 아무 소용이 없는 추억에 내던져진 그들은 고통의 흙 속에 뿌리를 내리는 것을 받아들여야 힘을 얻을 수 있는 그런 방황하는 망령들이었다. 이렇게 해서 그들은 모두 포로와 유형수의 심한 고통, 아무 데도 소용이 없는 기억을 간직한 채 살아가는 고통을 맛보고 있었다. 현재를 참지 못하고, 과거에 대해 적대적이며, 미래를 빼앗긴 우리는 철창 뒤에서 살게 된 자들과 많이 닮아 있었다(p. 77).
부유하는 삶, 방향 없는 많은 날, 고립의 삶. 새로운 일상은 자연스럽게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극단적인 고독, 누구도 이웃의 도움을 기대할 수 없는 상황, 급작스런 삶의 변화 속에 사람들은 마음에서 나오는 진실된 언어를 찾을 수 없었기 때문에, 그들 모두 세상의 용어, 시장의 용어를 빌려 쓰면서 단순한 뉴스, 신변잡기, 찌라시 정보, 주식, 부동산 같은 이야기에 몰입하곤 했다(뭔가 지금의 나와 내 주변의 이야기와 많이 닮아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예전과 완전히 달라진 나날들임은 분명했지만, 누구도 일상적 삶에서 페스트를 자신의 현실로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다만 자신들의 일상적인 삶을 방해하거나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영향을 미치는 것들에 대해 예민하게 반응할 뿐이었다. 예컨대 페스트 확산에 대한 사람들의 첫 반응은 행정당국을 비난하는 것이었고, 두 번째 반응은 언론을 비난하는 것이었고, 나중에는 서로가 서로를 비난하기 시작했다. 짜증과 화가 일상 곳곳에 묻어났지만, 이런 감정들이 페스트와 맞설 수 있는 것들은 아니었다.
봉쇄가 계속되면서 오랑 시의 모습은 조금은 기이하게 바뀌어갔다. 거리를 배회하는 보행자들의 수는 많아졌다. 가게나 사무실이 폐쇄되면서 할 일이 없어진 많은 사람들이 평일 오후시간대에도 거리를 채우고 있었다. 이런 변화가 너무 유별났고 너무 신속하게 이루어졌기 때문에 이 삶이 지속적일 것이라 생각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이 공간에서 어떻게든 탈출하려는 사람도 있었다. 랑베르. 그는 기자다. 취재차 오랑시에 들어왔다 페스트와 함께 갇혔다. 랑베르는 파리에 있는 여자친구를 그리워하며 그의 모든 인맥과 재주와 지략을 사용해 도시를 떠나려 한다. 그러나 쉽지 않았다.
떠나려는 랑베르와 떠날 수 없음을 설득하는 의사 리외 사이의 대화의 한 국면.
“전 기사를 쓰기 위해 세상에 태어난 게 아닙니다. 어쩌면 여자하고 살기 위해 세상에 태어난 것 같기도 하고요. 이게 정상이지 않습니까? 전 오랑과 어떤 관계도 없습니다. 떠나야 합니다.”
“떠날 수 없습니다. 이게 한심한 이야기라는 건 나도 잘 압니다. 하지만 이건 우리 모두와 관계됩니다. 사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저는 이곳 사람이 아닙니다.”
“당신은 지금부터 모든 사람들처럼 이곳 사람입니다. 시행령과 법률이라는 것이 있고 또 페스트가 있습니다. 당신은 기자로서 여기서 해야 할 것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닙니다. 선생님께서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성적으로 말하고 있고 생각이 추상적입니다.” (p. 88~90).
생각의 추상성, 위기의 국면에서 생각의 추상성에 대해 알베르 카뮈는 리외의 입을 빌려 이런 이야기를 전한다.
불행 속에는 추상적이고 비현실적인 면이 있다. 하지만 추상이 당신을 죽이기 시작할 때는 분명 그 추상에 마음을 써야 한다. 유행성 열병, 페스트라는 진단을 내리는 것은 환자를 곧바로 격리공간으로 데리고 가도록 하는 것이었다. 바로 그때 추상과의 어려운 싸움이 시작된다. 환자의 가족은 환자가 완치되거나 죽어야만 환자를 다시 볼 수 있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언쟁, 눈물, 설득, 결국 이 모든 것은 추상적이고 비현실적일 수밖에 없다. 열병과 불안으로 과열된 아파트 안은 난장판이 된다. 하지만 환자는 어쩔 수 없이 끌려간다. 그래야만 의사 리외는 그 장소를 떠날 수 있었다(p. 93).
실제로 페스트는 추상처럼 단조로웠다. 매일 저녁 사람들의 팔이 의사 리외의 팔을 붙들고 늘어졌고, 그들은 소용없는 말들, 약속들, 눈물들을 쏟아 냈다. 그리고 이 모든 추상적인 이야기의 시작과 엔딩으로 울리는 구급차의 경적 소리가 반복되면 반복될수록 사람들은 동정심에 피곤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의사 리외는 자신이 하고 있는 추상적인 일이 수월해지리라는 것을 알았다. 페스트와 함께 하게 되는 기나긴 시간, 그 시간 속에서 의사 리외는 오랑 도시의 삶 전체를 형성했던 각자의 행복과 페스트라는 추상 사이에서 매일매일 지긋지긋한 투쟁을 계속했고, 시간이 지날수록 이 투쟁은 수월해졌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전염병이 곧 멈출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 있었다. 그들에게 페스트란 어느날 불연 듯 그냥 왔기 때문에 언젠가는 떠나게 될 불쾌한 방문자에 불과했던 것이다(지금의 우리처럼~~~). 겁은 먹었으나 완전히 절망하지 않은 그들의 눈에 페스트가 그들의 생활양식 자체가 되고, 이 병의 발병 전까지 그들이 영위할 수 있었던 삶을 잊게 될 순간이 올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역시 지금의 우리처럼~~). 사람들은 마치 자신들의 몇몇 일상만을 방해할 뿐인 일시적인 불편은 어떤 것이라도 받아들일 수 있을 것처럼 외부와 차단되는 것을 우선 받아들였다. 하지만 이 유폐로 인해 자신들의 삶 전체가 위협받고 있다는 것을 막연히 느끼게 되었고 간혹 절망적인 행동을 하기도 했다.
어떻게 해야 할까?
그 여름, 장타루는 페스트와 싸우기 위해 자원봉사자들을 조직하자는 아이디어를 낸다. 흥미로운 것은 자원봉사자 모집을 화두로 한 장타루와 의사 리외의 대화.
"이 세상의 모든 악에 대해 사실인 것은 페스트에 대해서도 역시 사실입니다. 그런 것은 몇몇 사람을 성장시키는 역할을 할 수 있기는 합니다. 하지만 그 병이 가져오는 비참과 고통을 볼 때, 체념하고 이 병을 받아들이려면 미쳤거나, 눈이 멀거나, 비겁해야 합니다.”
타루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심사숙고해 봤나요? 이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일입니다.”
“리외 선생 신을 믿나요?”
“아니요. 하지만 나는 어둠 속에서 분명히 보려 애쓰고 있습니다. 나는 오래 전에 신을 근본적인 것으로 여기는 것을 그만뒀습니다.”
“바로 그게 당신과 신부 파늘루를 가르는 것이 아닐까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파늘루는 연구자입니다. 그는 사람이 죽는 것을 많이 못 봤기 때문에, 진리의 이름으로 말하는 겁니다. 하지만 아무리 하찮은 시골 신부라도 자기 교구 사람들의 종부성사를 집전하고 임종하는 사람의 숨소리를 들어 봤다면 나처럼 생각할 겁니다. 그는 비참함이 왜 좋은지를 증명하고 싶어 하기 전에 그것을 보살펴 줄겁니다.” (p. 128).
지금 환자들이 있으니 그들을 치료해야 하는 게 의사 리외였다. 가장 시급한 것은 본분을 다하는 것, 그들을 치료하는 것.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 그들을 보호한다. 무엇으로부터? 이 질문에 대해 리외 스스로도 답을 찾지는 못했다. 다만 생각은 그 다음에 하는 거다. 그의 승리는 늘 일시적일 뿐이고, 페스트에 대해서는 끝없는 패배 뿐이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투쟁을 그만 둘 이유는 못 되었다.
리외, 타루 뿐만 아니라 자원봉사대에 헌신한 사람들 역시 아주 대단한 자질이 있어서 그렇게 한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자기들이 해야 할 유일한 일이 그것임을 알고 있었고, 또 그때는 그런 결단을 내리지 않을 수 없어 그렇게 한 것뿐이었다. 그러니까 이런 식이든 저런 식이든 간에 계속 싸워야지 무릎을 꿇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오직 페스트와 싸우는 방법밖에는 없었다. 리외의 표현대로 하면 그게 도리이고, 자기의 본분을 다하는 거였기 때문이다.
매일 사투가 벌어졌고, 대부분은 자원봉사대의 KO패로 끝났다. 그렇지만 그것이 싸움을 그만 둘 이유는 못되었고, 그 여름 아침부터 저녁까지 곳곳에서 사투가 벌어진다. 오랑에서의 여름 날은 그렇게 흐르고 있었다
<참고문헌>
Camus, A. (1947). La Peste. 김화영 역 (2011). <페스트>. 서울: 민음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