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닌 밤중에 입시 6
마지막은 항상 버려졌었다.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교과서의 맨 뒤에 내던져진 마지막 단원은 시험에는 부적합한 내용이었는지, 시간 부족 때문인지 눈길 한 번 제대로 받지 못하고 사라지는 그림자 같은 존재들이었다. 그런데 조카의 ‘통합사회’ 시험 범위에는 ‘문화와 다양성’, ‘세계화와 평화’, ‘지속 가능한 삶’이라는 멋진 이름의 마지막 단원이 떡하니 자리하고 있었다. 문제가 적게 출제될 거라는 예고가 있기는 했지만, 존재 자체로 반가웠다. 더구나 흥미로운 주제도 많아서 국어나 영어에 비해 훨씬 수월했다. 하지만 그만큼 함정도 있었다. 조카와 시험공부한다고 만나기만 하면 수다를 떠느라 바빴는데, 통합사회는 아예 ‘수다 마당’을 펼쳐 준거나 다름없었기 때문이었다. 문화 상대주의를 어디까지 허용해야 할지, 세계화가 인류와 지구에 도움이 되는지, 지속 가능한 삶이 정말 지속 가능한지, 세계 평화와 한반도의 통일은 어떤 관련이 있는지 등등 이야기가 끝이 없었다. 한두 시간으로 끝내기에는 아까운 주제들이었다. 그렇게 통일도 ‘수다 마당’에 올랐다. 요즘엔 돈 되는 일이 최고의 관심사여서 그런지, 아이들 교과서에도 통일이 경제적으로 더 이익이라는 이론이 한자리 차지하고 있었다. 경제적 이익이 없으면 통일도 필요 없다는 말처럼 들리기도 했다. 통일에 대한 조카의 생각이 궁금했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노래도 있잖아요. 그러니까 통일해야죠.”
“노래 때문에 통일한다고?” 정색하는 내게, 조카가 능글맞게 웃으며 말했다.
“에이, 웃자고 한 말인데, 그걸 또 뭐 그렇게까지 진지하게 그러세요. 원래 하나였으니까 통일해야죠. 꼭 그럴싸한 이유가 있어야 하는 건 아니잖아요?”
‘원래 하나였으니까 하나가 된다?’ 둔탁한 충격이었다. 객관적 자료로 무장한 번듯한 이론을 벗어난 답이었다.
80년대 후반 중학생 이름표를 달고 다니던 때, 북한군이 팠다는 ‘땅굴 견학’을 간 적이 있었다. 담임 선생님께서는 북한군이 망원경으로 우리를 지켜보고 있으니, 영어가 적힌 옷은 절대로 안 된다며, ‘되도록 한글이 써진 옷을 입으면 좋을 것 같다’라고 하셨다. 하지만 한글이 적힌 옷은 촌스럽고 영어가 세련됐다고 생각하던 때였다. 그래서 성적인 욕망을 가득 담은 영어 욕이 대문짝만 하게 적힌 옷은 뜻도 모르면서 멋있다고 입고 다녀도, 한글 적힌 옷은 찾기도 힘들었고, 입을 생각도 안 했었다.
북한군과 영어가 도대체 무슨 상관인지는 의아했지만, 적어도 새 옷을 살 절호의 기회인 것은 분명했다. 땅굴 견학을 핑계로 나도 친구들이 입는 HUNT(헌트)니 UNDERWOOD(언더우드) 상표가 붙은 옷을 사고 싶었다. 하지만 그런 옷에는 당연하게 영어가 있었고 포기해야만 했다. 아쉬웠지만 새 옷이 생기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였다. 담임 선생님 말씀 때문에 어쩔 수 없음을 어머니께 한껏 강조했다. 드디어 꿈이 이루어지기 직전이었다. 여동생이 방정을 떨기 전까지는 말이다.
‘엄마, 학교 선생님은 새 옷 사라는 말 절대 안 해. 언니가 옷 사고 싶으니까 거짓말하는 거야’라며 득의양양했다. 겨우 초등학생 주제에 중학생 일을 다 아는 듯이 참견하는 것도 얄미운데, 나를 거짓말쟁이로 몰며 ‘새 옷 사 입기 작전’에 초까지 치는 그 순간의 여동생은 정말 꼴도 보기 싫었다. 어찌나 약이 오르고 화가 나든지 ‘다시는 얼굴도 쳐다보지 말고, 말도 하지 말자.’라는 굳은 다짐을 일기장에 빼곡히 적었었다. 크고 깊은 분노는 자그마치 일곱 장을 채웠고, 그 순간부터 여동생은 나의 주적이 되었다. 하지만 그 감정은 언제나처럼 채 하루도 가지 못해 사그라져 버렸다. 함께 밥 먹고, 잠을 자면서 증오심을 품고 있기는 힘든 일이었다. 때로는 얼굴만 마주쳐도 저절로 웃음이 나와서, 때로는 필요 때문에 말을 걸며 자연스럽게 화해가 됐다. 그러면서 우리는 더욱 단단한 시간을 쌓아갔다.
어린 시절의 여동생과 나처럼, 우리 사회도 그렇게 될 수는 없을까? 서로 의견이 달라 투닥거려도 이해하고 존중하는 공동체! 더 나아가 남과 북도 그렇게 서로를 품어주면 얼마나 좋을까? 서로 미워하고 싸우고 죽이기 위해 쓰는 돈을, 함께 행복하고 건강하게 사는 데 쓴다면 얼마나 좋을까? 분단 현실을 외면하는 가짜 평화에 무뎌지는 일상이 아닌, 통일을 시작으로 진정한 평화를 누리는 일상을 상상해 본다. 통합사회를 배우는 세대, 가르치는 세대, 통합사회에 등장하는 세대가 함께 어우러져 증오와 혐오 대신, 다름을 존중하는 따뜻한 세상을 상상해 본다. 능력으로 포장된 약육강식의 잔인함이 아닌, 익을수록 고개를 숙이는 성찰과 사랑이 가득한 세상을 상상해 본다. 너무 꿈같은 이야기라고 책망하지 마시라! 함께 꿈을 꾸면 현실이 된다고 하지 않던가!
참, 조카의 기말고사는 통합사회를 마지막으로 드디어 끝이 났다. 이젠 성적표만 남았다.
윗글은 2021년부터 약 2년 동안 조카와 함께한, 입시 경험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