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닌 밤중에 입시 7
조카의 성적을 내 능력으로 착각하며 단두대에 목을 내놓고 있자니, 영 언짢고 찝찝했다. 꼴등을 하든, 빵점을 맞든, 내 성적표를 기다리는 게 더 나은 일이었다. 조카의 성적표를 기다리는 것은, 뇌염 주사와 불주사를 한꺼번에 맞는 공포심과, 떨어진 수학 성적만큼 허벅지를 맞기 위해 책상 위에 무릎 꿇고 앉아있던 친구들을 보며 느꼈던 두려움을 동시에 맛보는 고통이었다.
무엇에도 연연함 없이 초연하게 살고자 했던 나의 바람은, 조카의 성적표를 따라 바람처럼 사라진 채 연연함만 가득 남았다. 기말고사 성적표 한 장을 기다리며 이러니, 대학입시 결과를 기다리는 날은 가관일 것이 뻔했다. 긴 호흡으로 조카의 입시에 도움이 되겠다는 처음의 다짐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짧은 시간 안에 엄청난 결과를 내서 나의 능력을 과시하고 싶은 마음조차 싹을 틔우고 있었다. 참을 수 없는 내 존재의 가벼움이 들통나기 일보 직전이었다.
“고모, 성적표 나왔어요.”
저승사자 앞에 끌려가서 생전의 행적에 대한 판결문을 받는다면 이런 기분일까? 응급실에 실려 가도 이상할 것이 없을 만큼 심장이 두근거렸다. 낚싯줄에 걸려 아가미를 펄떡이며 몸부림치는 물고기처럼 온몸이 바들거리고, 가뭄에 갈라지는 논바닥처럼 입술이 바짝바짝 타들어 갔다. 한없이 가벼운 내 마음을 들키지 않기 위해 최대한 담대한 척, 연기를 했다.
“어머, 성적표가 벌써 나왔구나?”
어울리지 않는 우아함과 차분함과 미소까지 빌려와 물었다. 하지만 속으로는 ‘벌써는 무슨 벌써야? 너희 학교는 성적표가 왜 이렇게 늦게 나오는 거야?’라며 절규하고 있었다. 드디어 조카의 성적표가 내 손에 들렸다.
덜덜덜! 두근두근! 어머나! 이게 웬일인가? 시력 탓인지, 인쇄가 잘못된 건지, 그것도 아니면 도깨비가 요술 방망이라도 휘둘렀는지, 생각지 못한 숫자들이 보였다. 국어는 80점대, 통합사회는 90점대였다. 올라도 너무 올랐다. 영어는 등급에 영향을 줄 수 있을 정도는 아니었지만, 확실히 올랐다. 교과서 한 단원도 제대로 마무리 못 한 영어까지 오르다니! 약 2주 만의 결과라고 하기엔 기적에 가까웠다.
‘입시의 신’이나 ‘입시계의 제갈량’이라는 이름도 아깝지 않을 것 같았다. 직업을 바꿔야 하나? 입시 지도 초보인 내가, 족집게 강사도 아닌 내가, 도대체 어떻게 이런 기적을 만든 거지? 조카가 열심히 했다는 것은 까맣게 잊은 채 ‘내’ 능력에만 심취해 있었다. 나도 모르는 ‘나의 비결’이 무척이나 궁금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특별할 게 없었다. 영어 교과서 반복해서 읽고 스스로 해석하기, 국어 교과서 반복해서 읽고 평가 문제집 반복해서 풀기, 통합사회 교과서 반복해서 읽고 문제 반복해서 풀기가 전부였다. 물론 국어와 통합사회는 관련 주제로 많은 수다를 떨기는 했지만, 특별한 비법은 없었다. ‘반복’만 있었을 뿐이었다. 정답을 골라내는 시험에서는 여전히 반복만 하면 된다는 것이 조금은 씁쓸했지만, 당장은 조카의 성적표를 만끽하기로 했다. 자신감 가득 충전한 조카와 감동의 순간을 즐기기로 했다. 하지만 바로 ‘삐익!’ 제동이 걸렸다. 이렇게 피 말리는 조마조마함을 2년이나 반복해야 한다는 무시무시한 사실을 깨달아 버린 것이다.
조카가 시험을 볼 때마다 피부의 촉촉함과 탄력은 사라지고, 기미는 마치 장마철 먹구름처럼 순식간에 얼굴 전체로 퍼져나가고, 팔자 주름은 계곡처럼 깊어지고, 마음의 여백은 협착증 말기 증세고, 아무도 얹어주지 않은 책임감과 부담감까지 알뜰하게 챙기는 내 모습이 훤히 그려진 것이다. 이 무슨 변고란 말인가?
내게 닥칠 이 모든 고통의 싹은 실패를 용납하지 않은 사회 때문임이 분명했다. 어른들도 마찬가지지만 무엇보다도 아이들에게 실패의 경험은 무척이나 소중하다. 다양한 실패를 통해 문제 해결력도 생기고, 마음도 단단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실패를 경험한 사람을 ‘실패자’로 단정해 버리고 기회를 주지 않는다. 특히나 입시에서의 실패는 치명적이다. 실패가 실패자라는 낙인이 아닌, 삶의 훌륭한 거름이 되는 곳이었다면, 급속 노화의 일인자가 되는 끔찍한 상상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조카의 성적표를 마음껏 즐기는 호사를 누렸을 것이다.
승승장구하는 ‘시험 성적 모범생들' 만큼이나, 끊임없이 실패하고 좌절한 경험을 태산처럼 쌓아본 아이들도 소위, ‘잘 나가는 직업’을 갖게 되는 길이 활짝 열려있는 사회라면 얼마나 좋을까? 아니, 정말 직업에 귀천이 없는 사회가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입시에 실패해도 다른 대안들이 넘쳐나는 사회가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학교가 입시를 위한 준비 장소가 아닌, 실패를 딛고 일어서는 연습을 하는 곳이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학교라는 아랫물이 먼저 맑아져, 사회라는 윗물까지 맑아지는 상상을 해본다. 위에서 끊임없이 똥물이 떨어져도 아랫물이 계속 맑아진다면, 언젠가는 그 똥물도 맑아지는 기적이 일어날지 누가 알겠는가?
그런 기적을 위해서라도, 정신 바짝 차리고 조카에게 집중하기로 했다. 경험해 본 적 없는 긴긴 겨울 방학이 육중한 몸과 압도적인 후광을 내뿜으며,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윗글은 2021년부터 약 2년 동안 조카와 함께한, 입시 경험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