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많은 악어 떼가?

아닌 밤중에 입시 13

by 오늘나

빽빽한 수행평가의 정글 숲을 지나, 드디어 다다른 2학년 1학기 중간고사의 늪! 엉금엉금 기어가며 조심한다고 했는데, 결국 악어 떼를 만나버렸다. 한 마리만 있어도 충분히 두려운데, 떼로 만나버렸다.


조카는 한 번도 상상한 적 없는 엄청난 소식을 가져왔다. 영어시험을 보다가 화장실에 갔단다. 하지만 놀라기엔 아직 이르다. 악어가 아니라 악어 떼라는 것을 잊지 마시라! ‘윤리와 사상’ 시간에도 갔단다. 어떻게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도무지 믿기지 않았지만, 내가 아무리 부정해도 어쩔 수 없는 사실이었다. 당연히 영어와 윤리와 사상은 그야말로 ‘폭싹’ 망했다. 하필이면 제일 애정을 갖고 열심히 준비한 두 과목에서 화장실 대란이라니! 한 번이라면 어쩌다 그럴 수도 있으리라 넘겼겠지만, 두 번이나, 그것도 가장 열심히 공부한 과목에서 그랬다니, 걱정이 깊어졌다. 아이의 긴장이 과했다는 신호였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끝이 아니었다. 악어 떼라는 것을 기억하시라! 화장실 대란을 피한 과목들 점수가 ‘폭망’한 영어와 윤리와 사상보다 더 낮게 나온 것이다. 직전 기말고사에서 받은 상상 이상의 화려한 성적표가 오히려 독이 된 것 같았다. 노력에 비해 너무 잘 나온 성적이, 긴장감을 떨어트리고 약간의 나태까지 불러온 것이었다. 최선을 다하는 대신 조금만 해도 충분하다는 생각이 은연중에 생겨난 것이다.

‘이 정도만 해도 돼. 저번보다 많이 했잖아. 더 할 필요 없어.’

하지만 적당히 해서 얻은 건 진짜가 아님을 중간고사 성적표가 알려주고 있었다.


조카의 입시에 빨간불이 켜진 것을 직감하니, 심장이 덜컹 내려앉으며 속상함이 한가득 몰려왔다. 하지만 일단은 조카 마음부터 살피는 것이 먼저였다. 본인 딴에는 그래도 열심히 했는데, 어이없는 실수와 점수에 과하게 자책하지는 않을까 걱정이 됐다. 조카와 함께 원인을 찾고 대책을 세우기로 했다. 아이의 실수와 점수를 절대 탓하지 않고 따뜻하게 위로해 주는, ‘비빌 언덕’이 될 것을 곱씹었다. 출발은 좋았다. 이미 끝난 시험은 잊자며 화기애애했다.


하지만 어느새 나는 입에서 불을 뿜어내는 사나운 용가리가 되어있었다. 독기 가득 품은 악어 떼가 불길 속을 헤치며 내 입에서 뛰쳐나왔다. 비빌 언덕이 아닌, 입으로 악어 떼를 낳는 용가리가 되나니! 결국 우리의 대화는 산으로 갔다. 그것도 아주 험한 산으로 말이다.

“시험 보다가 화장실을 가는 게 말이 되니? 그리고 점수가 이게 뭐야?”

“제가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니고, 최선을 다했어도 그런 걸 어떻게 해요.”

“너의 기준에서 최선은 뭐야? 최선이 뭔 줄 알기는 해?”

“·······.”


내가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걸까? 화장실에 두 번이나 갈 만큼 과도한 긴장을 한 이유가 무엇인지, 긴장감이 몰려올 때 어떻게 할지, 스스로와 타협하지 않고 최선을 다할 방법을 찾아보며 아이를 품어주는 대신, 가장 어리석고 못난 짓을 하고 말았다. 시험 결과에 대한 실망을 기어이 가장 못난 방법으로 표출하고야 말았다. 속상했을 마음을 헤아리는 대신, 아이의 상처를 후벼 파다 못해 사포질까지 확실하게 해 버렸다.


근사한 다짐과는 전혀 다른 말을 한가득 쏟아놓고 나서야, 시험을 보다 갑자기 화장실에 가고 싶어 졌을 때 얼마나 당황했을지, 혼자서 그 상황을 이겨내며 힘들었을 아이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은 아이의 단단함이 그제야 보였다. 대장과 방광이 엉뚱한 시간과 장소에서 마음대로 움직인 걸 어떻게 할 수 있었겠는가? 나라면 어땠을까를 생각하니 부끄러울 뿐이었다. 학기 초에 조카가 부회장에 당선되고 수행평가를 열심히 할 때는 오두방정을 떨며 좋아하다가, 중간고사 한 번 잘못 봤다고 세상 큰일이라도 난 듯 요란을 떠는 내겐, 커다란 ‘쥐구멍’이 제격이었다.


조카의 간절한 바람으로 시작한 입시 공부이긴 했지만, 그깟 대학 한두 해 늦게 가는 게 뭐가 대수라고, 아이의 마음 대신 점수부터 살폈을까? 조금 늦더라도 과정을 즐겨야 했는데, 왜 그리 어리석었을까? 중간고사 동안 조카가 풀어놓은 악어 떼는 쉽게 잡을 수 있었지만, 아이의 마음에 내가 풀어놓은 악어 떼는 도무지 답이 없어 보였다. 그런데 내가 답을 찾기도 전에, 아이는 마음속 악어 떼를 진즉에 치워 없애고 다시 시작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지혜로움은 나이와 상관이 없다는 것을 그렇게 깨우치고 나니, 더 부끄러워졌다.


아이는 명문대라는 근사한 학벌도, 취업하기 좋은 스펙도 바란 적 없었다. 그저 대학에서는 미술을 어떻게 배우는지 그게 궁금해서 대학에 가고 싶을 뿐이었다. 절대 잊지 말아야 할 그 마음을 잊은 채, 나는 흔들리는 잎새에도 일희일비하고 있었다. 아이가 오로지 우상향 그래프를 그려 가기를 기대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멋져 보이는 상승 그래프도, 가까이서 보면 오르락내리락 물결무늬인 걸 잊고 있었다. 하마터면 눈앞의 결과에 눈이 멀어 '기울기 0'이라는 세상 밋밋한 수평선으로 아이의 인생 그래프를 망칠 뻔했다.





윗글은 2021년 11월부터 약 2년 동안 조카와 함께한, 입시 경험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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