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평가'평가

아닌 밤중에 입시 12

by 오늘나

‘디잉~ 디잉~’ 명상의 시간! 편안하게 앉아 고요히 눈을 감는다. 숨을 깊게 들여 마시고, 천천히 뱉는다. 자연스럽게 호흡하며, 종일 쉬지 않고 장애물 달리기를 하는 상상을 한다. 이런! 얼른 눈을 뜨길 바란다. 명상을 빙자해 이런 무자비한 고통을 드린 점 사과드린다.


그런데 상상만으로도 무서운 그 일이 요즘 고등학교의 일상 일 줄이야! 지금 다시 고등학생이 되어야 한다면, 두 손 두 발을 다 들고 항복선언을 하겠다. 수업은 물론 수시를 대비한 동아리 활동과 다양한 수상 경력 쌓기 등 일분일초의 여유도 없는 시간과 공간을 감당할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수행평가라는 과제를 만나면 한 바퀴 돌 때마다 장애물은 높아지고, 간격은 좁아지기까지 해서 도무지 숨 쉴 틈이 없었다.


조카는 중간고사를 앞두고 새벽 배송하듯 수많은 수행평가를 가져오기 시작했다. 영어, 국어, 수학, 미술, 일본어, 윤리와 사상 등 모든 과목에 수행평가가 있었다.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지쳐버린 나와 달리 조카는 적극적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없어도 너무 없다는 큰 문제가 있었다. 미술학원을 마치고 밤 11시가 넘어서야 겨우 집에 도착해, 그때부터 수행평가를 시작한다는 것은, 그렇지 않아도 잠이 많은 아이에게는 가혹 자체였다. 하지만 고맙게도 조카는 잘 받아들였다.


본문 해석과 문법 설명을 PPT로 발표하는 영어 수행평가를 위해, 조카는 처음으로 PPT를 만들고 시연까지 하며 자신감을 보였다. 하지만 내 눈엔 PPT의 구성도 내용도 발표도 엉성할 뿐이었다. 역시나 최선의 과정이 최고의 결과로 직행하는 것은 아니었다. 지적질 본능에 입이 움찔거렸지만, 혼자 해낸 보람을 뺏고 싶진 않았다. 더구나 스스로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공부니까 말이다.


조카는 ‘뇌사자의 장기기증’을 동기 중심의 의무론자 칸트, 결과 중심의 공리주의자 벤담의 시각에서 토론하는 ‘윤리와 사상’에도 많은 공을 들였다. ‘착해 보여서 좋다’라며 칸트를 지지하던 첫 마음은, 어느새 벤담으로 기울었다. “아무래도 한 사람보다는 여러 사람에게 이익이 되는 게 더 좋을 것 같아요.”

하지만 소수를 보호할 확실한 대안과, 동기에 상관없이 결과만 우선시하면 생길 문제에 대해서는 여전히 갈팡질팡했다. 더구나 뇌사의 기준을 두고는 연이은 한숨만 내쉬었다. 뇌사를 ‘사망’으로 판단할 수 있는 근거가 큰 문제였다. 조카는 사람이란 ‘생각하는 존재’라고 했다. 따라서 생각할 수 없는 뇌사상태는 사망 판정의 근거가 되며, 장기기증도 가능하다고 했다. 하지만 ‘생각’의 정의는 차치하고서라도, 신생아처럼 아직 사고의 수준이 높지 않은 경우나, 뇌의 사고영역을 제외한 다른 기능은 잘 유지되는 사례의 등장으로 고민이 깊어졌다. 조카는 토론을 준비하며, 한 사회에 적용되는 공통의 규범 하나를 만들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숙고와 토론이 필요한지 제대로 배우고 있었다. 비록 명쾌한 답을 얻진 못했지만, 조카는 정말 많은 생각을 쏟아내며 의견을 정리하고 만들어 갔다. 그러면서 자기주장의 모순을 알아채 인정하고, 새로운 근거를 찾는 과정을 즐겼다. 그렇게 토론의 날이 왔다.


“고모, 제가 마지막을 장식했어요. ‘칸트의 입장은 선한 동기를 강조하니까 도덕적으로 보일 수는 있지만, 현실성이 없다. 어떤 예외도 없이 반드시 지켜야만 한다는 것은 불가능한데, 그렇게 지킬 수 없는 것을 판단 기준으로 할 수는 없다. 그래서 칸트의 입장을 계승한 로스도 조건부 의무론을 주장했다고 본다’라고 했더니 더 이상 반론이 안 나왔어요. 애들도 제가 제일 잘했대요.”

수행평가를 통해 ‘윤리와 사상’이라는 과목을 제대로 배우고 있는 아이의 모습에 흐뭇하면서도, 입시에서는 수행평가보다는 지필고사의 배점이 더 중요할 것이 못내 아쉽기도 했다.


조카의 생각지 못한 적극성은 일본어 수행평가에서 절정에 달했다. 자매결연을 맺은 일본의 고등학교와 줌(ZOOM)으로 공동 수업을 하는데, 한국 발표자로 자원을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선정까지 되었단다.

“너 일본어도 못하면서 어떻게 하려고 그래?”

“번역기도 있고, 선생님도 계시잖아요. 모르면 물어보면 되니까 괜찮아요.”

“이야, 멋진데! 그런데 무슨 용기가 나서 발표한다고 했어?”

“이 시간은 다신 안 오잖아요. 나중에 후회하지 않게 최대한 즐기고 싶어요.”

‘부회장 선거에 나간 것도 ‘그냥요’가 아니었구나!’ 힘들지만 열심히 하는 이유가 현재를 맘껏 즐기기 위해서라는 조카에게 또 배웠다. 잠잘 시간까지 뺏어간 수행평가를 통해 조카는 열심히 성장하고 있었다.


물론 개인차는 있겠지만, 시간만 충분하다면 수행평가는 아이들에게 좋은 동기부여가 될 것이 분명해 보였다. 그러나 ‘점수’ 중심의 입시에서 과연 제 몫을 할 수 있을까? 맛있는 귤이 땅을 잘못 만나 탱자가 되어버린 귤화위지(橘化爲枳)가 괜한 소리는 아닌 듯했다. 무한 장애물 달리기 굴레에 갇힌 아이들에게 수행평가가 귤이 될 방법이 뭐가 있을까? 수행평가! 참 좋던데 말이다.





윗글은 2021년 11월부터 약 2년 동안 조카(남)와 함께한, 입시 경험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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