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덩이가 무슨 죄!

아닌 밤중에 입시 11

by 오늘나

예외로 가득한 세상이다. 법법(法)의 부수인 삼수 변(氵)이 법망을 빠져나갈 세 개의 구멍이라는 우스갯소리가 더 이상 우습지 않은 걸 보니 법도 예외는 아닌 것 같고, 그렇다면 과학은 어떨까? 역시나 피해 갈 수 없다. 그 유명한, 공기의 저항이 없다면 무게가 다른 물체도 같은 속도로 떨어진다는 자유낙하 법칙에도 예외가 있었다는 사실! 그동안 학계에 보고하지 않고 극비로 봉인했지만, 여러분을 위해 오늘 드디어 공개하도록 하겠다.


놀라지 마시라! 그 비밀은 바로 우리 조카의 엉덩이다. 오해 없도록 다시 한번 말하자면, 조카가 아니라 조카의 엉덩이다. 제아무리 완벽한 진공 상태라고 해도 새털과 조카의 엉덩이가 같은 높이에서 떨어진다면 단연코 새털이 먼저 떨어졌으리라!


조카는 어릴 때부터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나는 상상력과 무한한 호기심 때문인지 진중하니 앉아서 한 가지에 집중하는 걸 힘들어했다. 학교를 오가면서도 길가에 피어있는 꽃 한 송이, 개미 한 마리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쳐다보고 만져 보고 이야기를 건네는 아이였다. 그래서 등하교 시간이 조금은 더 필요했다. 문제를 풀 거나, 책을 읽을 때도 “고모, 이 사람들은 표정을 왜 이렇게 찡그리고 있어요?", "얘는 왜 혼자 학교에 가요?", "여기는 우리 학교보다 급식이 맛있어요?” 등등 입에서 단내가 날 정도로 많은 질문을 했다. 그러고는, 그 궁금증이 풀려야만 공부를 하든, 책을 읽든 했다. 물론 공부하는 시간도 책 읽는 시간도 그리 길진 못했다.


그래서 조카가 갑자기 미술을 하고 싶다고 했을 때 들었던 걱정 중 하나가 바로, 오래 앉아있기였다. 조카의 엉덩이가 의자 위에 오래 머물 수 있을까? 종일 그림을 그리는 날도 허다하던데, 과연 잘하고 있을까? 학원이 어떤지 물으면 괜찮다는 말만 하니 더욱 답답했다. 차라리 힘들다고 푸념이라도 하면, 예방 주사를 맞듯 마음의 준비라도 할 텐데, 조카는 무심하게 괜찮아요만 반복했다. 그래서 미술학원의 첫 평가서를 받는 날이 다가올수록 초조해졌다. 분명 ‘집중력이 부족하니 많이 노력해야 한다’라고 적혀 있으리라. 가슴이 콩닥거렸다.


그런데 웬일인가? ‘실력은 아직 보완해야 할 부분이 있지만, 집중을 무척이나 잘한다’라는 문장이 선명했다. 남동생 부부가 분가하기 전까지 십여 년을 같이 살았으니, 조카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안다고 자신했는데, 착각도 정말 자유롭게 했던 모양이었다. 조카의 평가서는 그동안 품고 있던 근원적 물음에 대한 답까지 주었다. 사실 조카가 미대 진학을 선언했을 때부터, 단전의 모든 힘까지 끌어모아 뱉어내려고 해도 절대 나오지 않고 버티는 가래 마냥, 못된 ‘의심 덩어리’ 하나가 마음속에 끈질기게 남아있었다. 그건 바로 ‘아이가 혹시라도 대학에 가기 위한 수단으로만 미술을 선택한 것은 아닐까?’하는 염려였다. 그만큼 미술을 하겠다는 것이 뜬금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걱정과 달리 평가서에는 미술을 향한 조카의 애정과 열정이 가득했다.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찌꺼기를 시원하게 뱉어낼 수 있었다. 아이는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고 있는데, 여전히 철부지로만 대하고 있는 어리석은 내 모습이 그제야 보였다.


그동안 아이는 중구난방 사방팔방 뻗치기만 하던 상상의 가지를 한 곳으로 집중시킬 힘을 키웠고, 새털보다 가볍던 엉덩이를 낙지 빨판보다 더 강력하게 만들고 있었다. 열심히 그렸다며, 쑥스럽게 그림을 내미는 조카가 기특했다. 미술 시간을 몹시 싫어했기에, 조카의 그림이 무척이나 대단해 보였다.


때는 바야흐로 나의 초등학교* 1학년 미술 시간! 심혈을 기울인 내 그림을 보시던 담임 선생님께서 “펭귄 가족을 정말 멋지게 잘 그렸네.”라며 다정하게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다. 선생님의 손길은 지금 생각해도 정말로 따스했다. 하지만 그 따뜻함이 전달되기도 전에, 내 마음은 얼음장이 되어버렸다. 선생님의 칭찬과 다르게 난 펭귄을 그린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화려하고 멋진 공작새를 그렸을 뿐이었다. 내가 그린 알록달록 공작새가 선생님 눈에는 통통하고 건장한 펭귄 가족으로 보인 것이다. 멋진 펭귄이라는 칭찬에 차마 공작새라고 말하지 못하고, 멋쩍게 웃었다. 추측으로 건넨 사랑 가득했던 칭찬은, 애석하게도 독이 되었고 나와 그림의 인연은 그렇게 끝이 났다. 물론 펭귄처럼 그린 내 탓이 가장 크다는 것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럼에도 ‘만약 칭찬이 아닌 질문이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은 든다. “멋지게 그렸네. 무슨 장면이야?” 그럼 신나서 말했을 텐데. 아직 마음의 힘이 부족했던 먼 옛날 아이는 성급하게 붓을 내려놓았지만, 조카는 모든 고비를 잘 이겨내기를 바랐다. 다행히 조카는 몇 시간이고 앉아서 그리는 것이 전혀 힘들지 않고 재밌다고 했다. 그동안 한없이 가벼웠던 것은 조카의 엉덩이가 아니라, 세상 얄팍했던 내 마음이었다는 것을 알아채며 또 하루가 끝나갔다.


참, 자유낙하 법칙의 예외를 입증할 중요한 증거였던 조카의 엉덩이는 증거능력을 완전히 상실했기에 학계에 보고하지 못했음을 알린다.

*당시에는 초등학교가 아니었지만, 현재의 표기법을 따랐습니다.





윗글은 2021년부터 약 2년 동안 조카(남)와 함께한, 입시 경험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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