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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걀이요."

음미하다. 27

by 오늘나 Mar 03. 2025

  어릴 적 우리의 아침을 깨우던 시계는 살아 움직였었다. 우리가 원하는 시간과 소리를 설정할 수는 없었지만, 꽤 정확하고 우렁찬 소리로 우리를 깨웠다. 맞다. 닭이다. 시계 역할까지 겸했던 우리 닭은, 무척이나 매끄럽고 단단한 껍질, 맑고 탱탱한 흰자, 동글동글 탄력 넘치는 샛노란 노른자를 뽐내는 묵직한 달걀들의 어머니이기도 했다. 유난히 봉긋 솟아오른 노른자가 신기해 검지손가락으로 ‘꾸우욱’ 누르면, “감히 어딜!”이라며 호통을 치듯 내 손가락을 ‘쑤우욱’ 밀어내는 신경전을 벌이기도 했다. 


닭장에서 바로 꺼낸 달걀은 기분 좋은 온기로 가득했다. 아버지는 그 달걀을 생으로 하나씩 꼭 드셨다. 아래 송곳니로 껍질을 톡톡 깨트려 작은 구멍을 내고, 그 구멍에 입을 대서 쪼오옥 빨아들이며 맛깔나게 드셨다. 어른이 되면 나도 그렇게 멋지게 날달걀을 먹게 될 줄 알았다. 하지만 아직도 날달걀은커녕, 반숙도 못 먹고 있다. 어머니는 달걀로 거의 항상 찜을 해주셨다. 그렇게 달걀찜에 익숙해져서인지, 지금도 달걀을 보면 찜부터 한다. 어머니는 둥글넓적한 ‘스뎅’ 대접에 달걀과 소금, 물을 넣어 숟가락으로 대충 섞고, 고춧가루와 대파를 고명으로 조금 올리셨다. 달걀물을 거름망에 거르는 수고 같은 건 절대 없었다. 그럼에도 충분히 부드러웠다. 쌀을 안쳐 놓은 가마솥에 ‘스뎅’ 대접을 넣고 밥을 하셨다. 그러면 달걀찜도 되었다. 달걀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은 탓에 달걀찜에 손이 자주 가지는 않았지만, 풍성하게 부풀어 올랐다가 서서히 꺼져가는 모습이 재밌어서 달걀찜이 밥상에 올라오면 기분이 좋았다. 


고춧가루의 알싸함과 대파의 달짝지근함이 달걀의 싱싱한 고소함과 참 잘 어울렸다. 세상의 달걀찜은 모두 그런 맛인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물 대신 다시마 육수까지 넣는 정성을 들였는데도 그 맛이 나지 않는다. 달걀 때문이라고 결론 내렸다. 물론 내 실력이 가장 문제겠지만, 재료만 따지면 그렇다는 말이다. 


그런 결론에 이르게 된 건,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먹은 에그타르트가 결정적이었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현지 교민이 직접 만들어 준 에그타르트는 노른자가 전혀 안 익은 것처럼 보였다. 반숙도 못 먹는 내게, 설익은 노른자가 가득한 에그타르트라니! 그건 거대한 두려움이었다. 그럼에도 우리를 위한 정성이 고마워 먹어야만 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그토록 그리워하던 달걀의 싱싱한 고소함이 가득 느껴졌고, 정말 맛있었다. 낯선 음식 한입에 나는 어린 시절로 돌아가는 마법에 빠졌다. 그 먼 곳에서 그토록 큰 선물을 받게 될 줄은 몰랐다. 


비법의 재료가 궁금했다. “달걀이요.”라고 진지하게 답하시는 모습에 멋쩍게 웃었다. ‘에그타르트의 에그가 달걀이니까, 달걀이 들어가는 건 당연한데, 그게 비법 재료라고?’ 나의 당황함을 눈치채셨는지 “정말로 달걀만 들어갔어요.”라고 재차 웃으며 말씀하셨다. 빵을 만들 때는 바닐라 향 같은 것이 들어간다고 알고 있었기에, 향신료의 종류를 직접적으로 물을 수밖에 없었다. “달걀만 싱싱하면 돼요. 달걀이 좋지 못하니까, 냄새가 나고, 그런 냄새를 숨기기 위해 향신료를 넣는 거예요. 저는 우리 닭이 낳은 달걀만 넣었어요.”라면서 마당을 보셨다. 마당에는 닭과 병아리들이 날개를 퍼드득거리며 돌아다니고 있었다. 어린 시절 우리 닭처럼 그렇게 종횡무진 돌아다니고 있었다. 


우리 닭은 아버지께서 꽃밭 옆에 만들어 준, 경치 좋은 닭장에서 살았었다. 층간소음, 벽간소음 걱정 없는 층고가 매우 높은 1층짜리 단독 주택이었다. 발바닥을 건강하게 자극시켜줄 깔끔 촉촉한 흙바닥, 높은 천장에 매달려 낮잠 자기에 안성맞춤인 멋들어진 홰, 알을 낳기에 적합한 아늑한 수제 짚 바구니까지, 어느 부동산에서도 구할 수 없는 최고 수준의 닭장이었다. 닭들은 집 걱정, 알 낳을 부담 없이 새벽부터 저녁까지 종일 집 주변과 마당에서 힘차게 놀았다. 놀다가 배가 고프면 모이통이나 땅에서 무언가를 열심히 쪼아 먹었고, 그 덕분인지 갖가지 영양소가 골고루 들어간 인공사료나, 항생제 근처에는 간 적도 없었지만 건강했다. 우리 닭들은 꽃밭을 헤집어 가며, 계절별로 예쁜 꽃과 나무를 감상하면서 나름의 문화생활도 즐겼다. 넘치는 힘을 주체하지 못하고 쉴 새 없이 ‘꼬끼오’를 외치고, 날개를 퍼덕거리며 우리를 쫓기도 하고, 원할 때 알도 낳으며 하루를 바삐 보냈다. 해가 지면 닭장 안은 별빛과 달빛만 은은하게 남았고, 닭들은 그곳에서 깊은 잠에 빠졌다. 아주 가끔씩 잠꼬대처럼 울어대는 닭도 있었지만, 이내 조용해졌다. 그리고 다시 새벽이 되면 우리를 깨웠다. 


하루 종일 환하디 환한 비좁은 곳에서 시도 때도 없이 낳은 달걀로는, 어머니가 만들어 주시던 달걀찜이나, 달걀만으로 구운 에그타르트의 맛을 낼 수 없다. 자연을 마음껏 누리고, 본성대로 살던 닭이 낳은 달걀만이 그 맛을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취향과 편리에 따라 본성을 억압받고, 상실당할 것을 강요당한 채 살면서 어떻게 건강한 달걀을 낳겠는가? 어디 닭뿐일까? 닭의 이웃들도 비슷한 처지인 것은 마찬가지다. 들리지 않는가? 최소한의 본성이라도 존중받고 싶어 하는 닭들의 애절함이! 꼬끼오 꼬꼬꼬꼬 꼬끼오 꼬꼬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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