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맛깔나다. 봄 6
친가 쪽은 대부분 우리 집 근처에 사셔서 거의 매일 볼 수 있었고, 멀다고 해도 지척인 건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정반대로 외가 쪽은 너무 멀리 있어서, 몇 년 동안 얼굴 한 번 보기도 힘들었다. 그러다보니 우리 집에 친척들이 손님으로 오시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사실 친척이 아니어도 손님이라는 거창한 이름의 방문객은 거의 없었다. 시골에 살았던 10여 년 동안 손님다운 손님은 딱 한 번, 어머니의 고향 친구 대여섯 분이 오신 것이 전부였다.
‘손님들’ 방문이 예정되었던 그날은 생일만큼, 명절만큼 설렜다. 전날부터 목욕도 하고 나름 때 빼고 광을 낸 나와 동생들의 노력이 무색하게, 어머니의 친구들은 몹시도 예쁘셨다. 곱디곱게 화장을 하고, 나폴나폴 화려한 원피스를 입고, 책 한 권도 들어갈 것 같지 않은 작디작은 가방을 메고, 형형색색의 ‘뾰족’ 구두를 신고 오셨다. 천사처럼 예뻤다. 손에 들고 오신 선물꾸러미가 그 아름다움을 더욱 돋보이게 했다.
그 많은 선물 중에서도 내 시선을 단박에 끈 것은 ‘봉봉’과 ‘쌕쌕’이었다. 포도알이 들어간 달콤한 봉봉과 귤 알갱이가 하나하나 살아있던 새콤한 쌕쌕은,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할 고급 음료였다. 그런데 그 비싼 봉봉과 쌕쌕을 선물로 가져오시다니! 드디어 꿈꾸고 꿈꾸던 봉봉과 쌕쌕을 마음껏 마실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모든 분들이 다 예뻤지만 특별히 봉봉과 쌕쌕을 들고 오셨던 그분은 나만의 ‘더 예쁜 아줌마’가 되었다. 그날 ‘더 예쁜 아줌마’를 향해, 내 눈에서 떨어진 꿀을 모았다면 커다란 항아리를 가득 채우고도 남았을 것이다.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상냥함과 예의를 끌어모아 심부름을 하고, 눈이 마주칠 때마다 인사를 했다. 봉봉과 쌕쌕 덕분에 없던 사교성이 주체할 수 없을 만큼 넘쳐흘렀다. 손님들께서 마지막 인사를 마치고 집을 떠나실 때, 나는 터질 듯 밀려오는 행복감에 함박웃음이 저절로 나왔다.
드디어 봉봉과 쌕쌕을 맞이할 시간이 온 것이다. 적어도 봉봉 하나 쌕쌕 하나씩은 우리 손에 오게 될 것이 명백했다. 하지만 나의 봉봉과 쌕쌕은 절대 있어서는 안 될 곳, 바로 가게 진열장에 이미 가지런하게 자리를 잡고 있었다. 눈곱만큼도 생각해 본 적 없던 경우의 수였다. ‘더 예쁜 아줌마’는 천사 같은 음성으로 분명히 말씀하셨다. “어머, 너희가 가게를 했구나. 나는 그것도 모르고 이걸 사 왔어. 그래도 사 온 거니까 애들 먹여.” 나는 성대모사도 가능할 정도로 정확하게 들었다. “애들 먹여.” 그런데 어머니는 그 당부를 듣지 못하신 걸까?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걸까? 마지막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어머니께 물었다. “엄마, 봉봉이랑 쌕쌕 언제 줄 거야?” “파는 거야.” 그 한마디로 모든 게 다 끝났다. ‘두 개 다 안 줘도 되는데, 한 개만 줘도 되는데, 나는 그렇게 큰 욕심은 없는데, 팥쥐네 엄마보다 더 나빠!’.
봉봉과 쌕쌕을 마음껏 마실 수 있을 거라는 기대는 삼일천하도 아니고, 일장춘몽도 아니고,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순식간에 끝나버렸다. 화가 잔뜩 난 나는 며칠 동안 댓 발 나온 입을 삐죽거리며 다녔고, 툴툴거리는 내 모습을 보다 못한 어머니는 결국 봉봉과 쌕쌕을 주셨다. 한 방울이라도 흘릴까 싶어 애지중지했다. 과육을 한 번에 깨물어 먹는 것도 아까워, 사탕처럼 한참을 입속에 굴리면서 음미했다. 그러다 침에 삭아버린 알갱이들이 나도 모르게 목구멍으로 넘어가면 그렇게 아쉬울 수가 없었다.
아주 작은 것으로도 충분히 행복하고 감사한 날들이었다. 기껏해야 봉봉과 쌕쌕 못 마시는 것이 인생의 가장 큰 슬픔이고 좌절이고 분노였던 말랑말랑 달콤한 날들이었다. 이제는 봉봉과 쌕쌕을 먹지 못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매운맛에 눈물도 흘리고, 끝날 것 같지 않은 긴 어둠의 통로도 지나 보면서 단단해지고 있다. 세상 아무리 대단한 사람일지라도 비껴갈 수 없는 순간을 나 역시도 지나왔다. 그래서 작은 것에 더 감사해진다.
99개나 갖고 있으면서도 100개가 안된다며 욕심을 내고, 충분히 유능함에도 부족함만을 생각하며 스스로를 괴롭히고, 모두가 부러워할 하늘 같은 학벌과 명함 내밀기 좋은 직업을 가졌음에도 불행하고, 넓은 집과 고급차로 화려하게 살면서도 끊임없이 비교하며 스스로 초라해지는 모습이 안타깝다. 물론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다며 더 많이 가진 사람들을 부러워하며 스스로 초라해지는 것도 역시나 안타까운 일이다. 하지만 겉으로 행복하고 완벽해 보이는 사람도 썩어 문드러지는 사연 하나쯤은 있다. 어디 하나뿐이겠는가? 그러니 부디 부족함만을 탓하며 쓸데없이 나를 괴롭히는 대신, 지금 내가 누리는 것에 집중하며 감사하고 단단해지자. 서로의 아픔과 부족함을 그대로 드러내어도 탓하지 않고 보듬어 줄 수 있는 단단한 우리가 되어보자.
그렇게 개인이 건강해져서 공동체를 건강하게 하고, 공동체가 단단해져서 개인을 단단하게 지켜주면 그곳이 바로 무릉도원이고 유토피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