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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나 Nov 22. 2024

사수하라! 봉봉과 쌕쌕!

음미하다. 19

    친가 쪽 친척들은 대부분 우리 집 근처에 사셔서, 거의 매일 만날 수 있었다, 멀리 떨어져 산다 해도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볼 수 있는 거리에 있었다. 하지만 외가 쪽 친척들은 대부분 먼 곳에 살고 계셔서, 몇 년 동안 얼굴 한 번 보기도 힘들었다. 서로가 먹고살기도 바쁘거니와, 교통도 불편하다 보니, 집안에 큰 행사가 있어야 볼 수 있는 정도였다. 이런 이유로 우리 집에 친척들이 손님으로 오시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사실 친척이 아니어도, 손님이라는 거창한 이름의 방문객은 거의 없었다. 


시골에 살았던 10여 년 동안, 손님다운 손님은 딱 한 번, 어머니의 고향 친구 대여섯 분이 오신 것이 전부였다. ‘손님들’ 방문이 예정되었던 그날은 생일만큼, 명절만큼 설레는 날이었다. 전날부터 목욕도 하고, 나름 때 빼고 광을 낸 나와 동생들의 노력이 무색할 만큼, 어머니의 친구들은 몹시도 예쁜 모습으로 나타나셨다. 곱디곱게 화장을 하고, 나폴나폴 화려한 원피스를 입고, 책 한 권도 들어갈 것 같지 않은 작디작은 가방을 메고, 형형색색의 ‘뾰족’ 구두를 신고 오셨다. 천사처럼 예뻤다. 하지만 그분들이 예뻐 보인 건 겉모습 때문만은 아니었다. 손에 들고 계신 다양한 선물꾸러미의 덕도 있었다. 


그중에서도 내 시선을 단박에 끈 것은 ‘봉봉’과 ‘쌕쌕’ 음료 상자였다. 포도알이 들어간 달콤한 봉봉과 귤 알갱이가 하나하나 살아있던 새콤한 쌕쌕은,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할 음료수였다. 사브레만큼이나 비쌌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 비싼 봉봉과 쌕쌕을 선물로 가져오시다니! 드디어 꿈꾸고 꿈꾸던 봉봉과 쌕쌕을 마음껏 마실 수 있다니! 봉봉과 쌕쌕을 들고 오셨던, 그래서 더 예뻐 보였던 그분은 나만의 ‘예쁜 아줌마’가 되었다. 그날 ‘예쁜 아줌마’를 향해, 내 눈에서 떨어진 꿀을 모았다면 커다란 항아리를 가득 채우고도 남았을 것이다.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상냥함과 예의를 끌어모아 심부름하고, 눈이 마주칠 때마다 인사를 했다. 봉봉과 쌕쌕을 보면 없던 사교성도 주체할 수 없을 만큼 넘쳐 올랐다. 손님들께서 마지막 인사를 마치고 집을 떠나실 때, 나는 터질 듯 밀려오는 행복감에 함박웃음이 저절로 지어졌다. 


드디어 봉봉과 쌕쌕을 마실 수 있는 시간이 온 것이다. 적어도 봉봉 하나, 쌕쌕 하나씩은 우리 손에 오게 될 것이 너무도 명백했다. 하지만 나의 봉봉과 쌕쌕은, 절대 있어서는 안 될 곳, 바로 가게 진열장에 이미 가지런하게 자리를 잡고 있었다. 눈곱만큼도 생각해 본 적 없던 경우의 수였다. ‘예쁜 아줌마’는 천사 같은 음성으로 분명히 말씀하셨다. “어머, 너희가 가게를 했구나. 나는 그것도 모르고 이걸 사 왔네. 그래도 사 온 거니까 애들 먹여.” 


나는 성대모사도 가능할 정도로 정확하게 들었다. “애들 먹여.” 그런데 어머니는 그 당부를 듣지 못하신 걸까?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걸까? 마지막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어머니께 물었다. 

“엄마, 봉봉이랑 쌕쌕 언제 먹어?” 

“파는 거야.” 그 한마디로 모든 게 다 끝났다. 


‘두 개 다 안 줘도 되는데, 한 개만 줘도 되는데, 나는 그렇게 큰 욕심은 없는데, 팥쥐네 엄마보다 더 나빠!’. 봉봉과 쌕쌕을 마음껏 마실 수 있을 거라는 나의 기대는, 삼일천하도 아니고, 일장춘몽도 아니고, 반나절 춘몽으로 끝났다. 화가 잔뜩 난 나는, 며칠 동안 댓 발 나온 입을 삐죽거리며 다녔고, 툴툴거리는 내 모습을 보다 못한 어머니는 결국 봉봉과 쌕쌕을 주셨다. 한 방울이라도 흘릴까 싶어, 애지중지하며 마셨다. 과육을 한 번에 깨물어 먹는 것도 아까워, 사탕처럼 한참을 입속에 굴리면서 음미했다. 그러다 침에 삭아버린 알갱이들이 나도 모르게 목구멍으로 넘어가면 그렇게 아쉬울 수가 없었다. 


아주 작은 것으로도, 충분하게 행복하고 감사했던, 그날들이 참 좋았다. 기껏해야 봉봉과 쌕쌕을 마시지 못하는 것이, 인생의 가장 큰 슬픔이고 좌절이고 분노였던, 말랑말랑 달콤했던 때가 지났다. 봉봉과 쌕쌕을 먹지 못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아픔과 좌절과 분노를 맛보며, 쌉쓰름하면서도 단단한 어른이 되어가고 있다. 


피하고 싶지만, 누구도 피할 수 없는 것이 이런저런 아픔일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모두 각자만의 아픔을 갖게 된다. 세상 모든 행복을 다 가진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도, 마음속에 아픔 하나쯤은 갖고 있다. 비싼 옷과, 으리으리한 집과, 소위 ‘명문’이라는 학벌과, 명함 내밀기 좋은 직업에 가려져 있을 뿐이지, 누구나 아픔은 있다. 눈물 솟아나게 할 마음속 버튼이 하나쯤은 있는 것이다. 어디 하나뿐이겠는가? 


그러니 우리 서로를 아껴주고, 손 내밀고 잡아주면서 살자. 보여주기 위해 쓸데없이 꾸미고 치장하느라 힘 빼지 말고,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살자. 차곡차곡 쌓이는 아픔을 털어버리지 못하고, 나와 남에게 상처를 주고 파괴하는 대신, 있는 그대로의 상처를 드러내기도 하고, 보듬어도 주면서 그렇게 살자. 그렇게 개인이 건강해져서 공동체를 건강하게 하고, 공동체가 단단해져서 개인을 지켜주면 얼마나 좋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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