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미하다 14
아버지는 절대 반찬 타박을 하시는 법이 없었다. 고추장에 멸치만 있어도 잘 드셨고, 그러다 간혹 정말 입맛이 없으면 비빔밥을 만드셨는데, 아버지를 ‘으뜸 요리사’라고 생각할 정도로 맛있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아버지가 비빔밥을 만드실 때마다 인상을 잔뜩 찡그리며 볼멘소리를 하셨다.
“반찬을 이렇게나 맛있게 만들어 줬더만, 뭔 짓이데 여. 왜 비벼먹는가 모르겄네.”
반찬이 맛이 없어서 비빔밥을 만든다고 생각하신 어머니의 서운함이 그런 말로 표현된 것이었다.
어머니의 날 선 물음에 아버지는 가타부타 어떤 말도 없이 묵묵하게 밥을 비비셨다. 말이 좋아서 비빔밥이지, 사실은 밥상에 올라온 이런저런 반찬을 모두 모아 고추장을 넣고 비빈 것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초라한 반찬도 아버지가 대접에 넣고 비비기만 하면 꿀맛이 되었다. 우리가 아무리 열심히 아버지를 따라서 같은 재료를 넣고 비벼도, 절대 같은 맛을 낼 수 없었다. 음식은 ‘감’이고 ‘손맛’이라더니, 아버지는 그 모두가 좋았던 모양이었다.
아버지의 손맛에 빠져든 우리는 아버지가 비빔밥을 만드실 때마다, 입으로 숟가락을 쪽쪽 빨면서 기다렸다.
참기름을 두른다면 그 맛은 최고의 정점을 찍는 것이지만, 아버지의 비빔밥은 굳이 참기름을 두르지 않아도 충분히 맛있었다. 아버지의 비빔밥에는 무시무시한 두 가지 비법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첫 번째 비법은 무시무시한 물리적인 힘! 바로 엄청난 아버지의 팔 힘이었다. 미식가들은 비빔밥을 젓가락으로 살살 저어야 한다고 하지만, 우리에게는 아버지가 온 힘을 다해서 척척 비벼낸 비빔밥이 제일 맛있었다. 쌀알 하나하나에 빨간 고추장과 반찬 양념이 깊이 베인 비빔밥은 보기만 해도 군침이 흘렀다. 밥알이 터지느냐 아버지의 팔근육이 터지느냐를 놓고 숙명의 라이벌전이라도 하듯, 아버지는 온 힘을 다 쏟아부어 비비고 또 비볐다. 결과는 언제나 무승부였다. 아버지의 팔뚝도 비빔밥의 밥알도 멀쩡했다. 엄청난 힘에도 여전히 탱글탱글함을 뽐내던 밥알은 예술이었다.
아버지 비빔밥의 두 번째 비법은 바로 무시무시한 화학적인 힘! 그렇다. ‘화학조미료’였다. 아버지의 비빔밥에는 반드시 듬뿍 쌓아 올린 화학조미료 한 숟가락이 들어갔다. 그럴 때마다 어머니는 기겁하시며 “그걸 그렇게 많이 넣으면 어쩔라고 그려! 애들도 먹는데. 아주 그냥 조미료 중독이여. 중독.” 어머니는 아버지가 화학조미료를 비빔밥에 듬뿍 넣는 걸 좋아하지 않으셨다. 하지만 비빔밥에 항상 화학조미료를 넣었던 아버지 덕분에, 나는 비빔밥의 주재료가 화학조미료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화학조미료가 맛있는 비빔밥의 비법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어머니의 성화 때문이었는지, 아버지의 비빔밥에서는 차츰 화학조미료가 사라졌고, 그럼에도 여전히 아버지의 비빔밥은 꿀맛이었다. 아마도 무지막지했던 아버지의 팔 힘이 맛있는 비빔밥의 더 중요한 비법이었던 것 같다.
어린 시절 우리 집 부엌에는 항상 화학조미료가 있었다. 없는 맛도 만들어 내는 신기한 능력이 있는 화학조미료는, 요리를 잘하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웠던, 어머니에게도 꼭 필요했던 것 같다. 물론 어머니는 항상 “눈에 보이지도 않을 만큼 아주 쬐끔 밖에 안 넣었어.”라고 하시며, 순수하게 어머니만의 실력임을 늘 강조하셨다.
눈꼽쟁이만큼 들어간 화학조미료에게 공을 뺏기고 싶지 않은 어머니의 간절한 마음이 가득 담긴 항변이었다.
소생 불가능한 음식도 살려내는 감칠맛으로, 어머니처럼 음식을 잘하는 사람에게조차도 필요한 존재였던 화학조미료는, 나처럼 요리를 못하는 사람에게는 더없이 감사한 존재다. 하지만 나는 화학조미료에 손이 가지는 않는다. 내가 어머니보다 요리를 잘한다고 오해하면 안 된다. 난 먹는 걸 좋아할 뿐, 요리에는 재능이 심하다 싶을 만큼 없다. 나는 그냥 부족한 대로 요리를 한다. 내 부족한 음식 솜씨는 신선한 재료와 재료 본연의 맛에 만족하는 미각으로 채우고 있다. 그래서인지 자극적인 맛에 적응된 사람들은 나의 요리에 호의적이진 않지만, 어차피 내가 만든 요리는 내 요리법에 적응된 사람들만 먹고 있으니 문제 될 건 없다.
재료가 신선하면 사실 많은 양념이나 조미료가 필요하지 않다. 재료 본연의 맛에 만족하게 되면 많은 양념이나 조미료는 필요하지 않다. 재료의 부족함을 메꾸기 위해 자꾸 자극적인 양념이나 인공 조미료를 찾게 된다. 자극적인 맛에 익숙해지다 보니 더 강한 양념이나 인공 조미료를 찾게 된다.
우리들도 그런 것 같다. 스스로의 모습에 만족하지 못하다 보니, 자꾸 과하게 꾸며줄 것을 찾게 된다. 우리들은 모두 조미료나 양념 없이 자체로 빛이 날 수 있는 존재들이다. 거울 속에 비치는 바로 그 사람이, 바로 그런 존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