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맛깔나다. 봄 5
무척이나 깐깐해 보이는 인상과 달리 아버지의 식성은 무척이나 소탈하시다. 아버지 사전에 ‘반찬 타박’은 절대 존재하지 않았고, 그건 아버지를 ‘그놈의 영감탱이’라고 부르며 티격태격하시는 어머니도 전적으로 동의하는 부분이다. 바쁜 어머니께서 간혹 밥에 김치만 밥상에 올려도 마치 진수성찬이라도 되는 듯 맛있게 드셨다. 그리고 아주 가끔은 맛있게 만들기도 하셨다. 바로 봄기운 가득 담은 봄나물이 풍성하게 올라올 때였다.
큰 대접에 밥상 위 모든 나물과 밥, 고추장을 넣고 참기름도 없이 소박하게 비벼낸 아버지의 비빔밥은 정말 맛있었다. 봄나물뿐 아니라 서로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반찬들조차, 아버지가 대접에 넣고 비비기만 하면 꿀맛이 되었다. 아버지를 따라 같은 재료를 넣고 아무리 비벼도 절대 흉내 낼 수 없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아버지가 비비실 때마다 숟가락을 쪽쪽 빨면서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아버지의 비법을 탐탁지 않게 여긴 어머니는 늘 못마땅해하셨다.
참기름 없이도 맛있던 아버지 비빔밥에는 무시무시한 두 가지 비법이 있었는데, 첫 번째는 엄청난 물리력 바로 팔뚝 힘이었다. 어떤 이들은 젓가락으로 살살 비벼야 한다고 하지만 우리에게는 아버지가 온 힘을 다해서 척척 비벼낸 비빔밥이 제일 맛있었다. 쌀알 하나하나에 빨간 고추장과 반찬 양념이 깊게 벤 비빔밥은 보기만 해도 군침이 흘렀다. 밥알이 터지느냐 아버지의 팔근육이 터지느냐를 놓고 숙명의 대결이라도 하듯, 온 힘을 다 쏟아부어 비비고 비빈 결과는 언제나 무승부였다. 아버지의 팔뚝도 밥알도 멀쩡했다. 탱글탱글 윤기 좌르륵하던 밥알은 예술이었다.
아버지 비빔밥의 무시무시한 두 번째 비법은 새하얀 화학 성분, 바로 ‘조미료’였다. 이 비법을 어머니는 참 싫어하셨는데 아버지는 전혀 상관하지 않고 반드시 조미료 한 숟가락을 비빔밥에 넣으셨다. 그럴 때마다 어머니는 기겁하시며 “그걸 그렇게 많이 넣으면 어떻게 해. 애들도 먹는데. 아주 그냥 조미료 중독이여. 중독!”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차츰차츰 아버지의 비빔밥에서 조미료가 사라지기 시작했다. 어머니의 끈질긴 성화 때문이었는지 조미료에 대한 사회적 변화를 눈치채신 건지 알 수는 없지만, 나물과 고추장만 넣고 비비셨다. 그런데도 여전히 아버지의 비빔밥은 꿀맛이었다. 아마도 아버지 비빔밥의 제일 중요한 비법은 조미료가 아니라 무지막지한 아버지의 팔 힘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어머니가 그토록 싫어했던 조미료를 아버지는 어디서 가져왔을까? 재밌게도 아버지가 애용하던 조미료는 어머니가 책임자로 있던 부엌 출신이었다. 어릴 적 우리 집 부엌에는 조미료가 항상 있었다. 죽은 맛도 살려내고 없는 맛도 만들어 내는 신묘한 능력의 조미료는, 동네 최고의 요리사였던 어머니에게도 꼭 필요했던 것이다. 물론 어머니는 항상 “눈에 보이지도 않을 만큼 아주 쬐끔 밖에 안 넣었어.”라며, 어머니의 실력임을 강조하셨다. 눈꼽쟁이만큼 넣은 조미료에게 그 공을 뺏기고 싶지 않은 귀여운 항변이었던 것이다.
소생 불가능한 음식도 살려내는 감칠맛으로 음식의 달인이었던 어머니조차 몰래 숨겨놓고 쓰는 조미료였으니, 나 같은 요리초보에게는 더없이 감사한 존재다. 그런데 손이 가지 않는다. 어머니보다 요리를 잘해서도 아니고 나만의 비법 양념이 따로 있어서도 결코 아니다. 난 먹는 걸 좋아할 뿐 요리에는 재능이 없다. 그럼에도 최소한의 양념만을 고집하는 이유는, 잠자는 미각을 깨워 재료 본연의 맛을 느껴보고 싶기 때문이다. 강한 양념과 조미료의 유혹을 이겨내는 과정이 쉽지는 않지만, 진행 중이다.
언젠가 프랑스인들의 그림 보는 안목이 높아서 유명한 화가들이 프랑스로 모여들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림에 대한 프랑스인들의 안목이 진짜 높은지 알 수는 없지만 일리는 있어 보인다. 명화를 알아보는 사람이 없으면 명화도 그저 도화지 위의 물감 덩어리일 뿐이고, 보석을 알아보는 사람들이 없으면 보석도 그저 돌멩이일 뿐이니까 말이다.
안목은 그림에만 필요한 것은 아니다. 재료 본연의 맛을 알아채는 안목이 잠을 자면 가짜 음식들이 진짜 음식 행세를 한다. 그러나 그 가짜 음식으로는 우리의 배를 온전히 채울 수 없다. 헛배만 부르고 쓸데없는 지방만 쌓인다. 그래서 몸 여기저기가 아프고 살을 빼기 위해 시간과 돈을 들인다. 재료가 가진 원래의 맛을 알아채는 능력만 회복한다면 과한 양념이나 조미료가 필요 없으니 몸도 건강해지고 시간과 돈도 절약되는 일석삼조다. 이 좋은 걸 왜 안 하겠는가?
재료 본연의 맛을 보는 안목, 혀의 미각 깨우기를 시작했으니 마음의 미각인 사람 보는 안목에도 욕심이 난다. 조건이나 겉모습이 아닌 내면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그런 안목이 탐난다. 물론 그전에 내 내면부터 살피는 건 당연한 말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