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이야기가 나의 이야기로 다가오기까지

신성아 <사랑에 따라온 의혹들>, 마르잔 사트라피 <페르세폴리스>

by 무단횡단

긴박한 도입부. 서문 없이 시작하는 내용은 소설을 닮았다. 아이의 몸에 이상이 생겼다. 저자인 엄마는 출근을 마쳤고, 등교를 맡은 아빠의 일기로 신성아의 에세이 『사랑에 따라온 의혹들』(마티, 2023)은 문을 연다.


“코피는 6.1에 났고, 6.2에도 났다. 그리고 6.3 금요일이 되었다. 아침 8시에 학교 갈 준비를 하는데, 세수하러 화장실에 들어간 윤이가 코피를 흘리기 시작했다. 지혈을 했으나 잘 듣지 않았다. 8시 10분이나 15분쯤 되었을 때, 코에서 손가락 굵기만 한 덩어리가 나왔다. 나는 놀라서 병원으로 향했다. 코피는 계속 났다. 8시 반경에 뉴고려병원에 도착했는데, 응급실에서 우리 병원에는 이비인후과가 없으니 일산백병원이나 동국대병원으로 가라고 했다. 피가 계속 나고 있어서 백병원으로 향했다. 백병원에 도착한 시간이 9시 10분경. 도착 직전에 코피가 멎었다. 약 한 시간 정도 코피가 난 셈이다.” (p.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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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명은 백혈병. 소아병동에서의 돌봄이 시작된다. 담당은 엄마. 자신의 일에 진심인(워커홀릭인) 저자는 휴직을 거쳐 퇴직을 결심한다.


책의 절반은 ‘전담 간병인’이 왜 엄마이어야 하는지, 왜 여자이어야 하는지 묻는다. 아이가 아프면 으레 엄마가 그 역할을 맡아야 한다는 주변의 암묵적인 강압에 의문을 던진다. 그런데 아쉽게도,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저자의 주장에 쉽게 수긍되지 않았다. 여성에게 부과된 간병에 대한 문제 제기에는 동의한다. 하지만 과거와는 달리 아빠가 육아와 가사에서 담당하는 몫이 늘었음에도, 여전히 엄마의 영향력이 클 수밖에 없는 환경을 간과한 점이 엿보여서다.


흔히들 하는 말이 있다. 아이의 성공은 아빠의 재력과 (사교육에 대한) 아빠의 무관심이 필수라고. 이 말을 아빠들이 했을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아빠들은 아직도 아이가 감기에 걸리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내년에는 어떤 학원을 새로 보낼 것인지, 아이가 특히 좋아하는 친구는 누구인지, 패딩점퍼를 언제쯤 새로 사주어야 하는지 등에 대해 무지하고 무감하다. 결코 먼저 나서지 않는다”(p.82)는 저자의 말도 생각해볼 대목이다. 물론, 대다수의 아빠들이 이 문장에 ‘부합’한다는 건 부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과연 대다수의 아빠들이 ‘주체적으로’ 이렇게 되었을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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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터에서는 아이를 중심으로 엄마들이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아빠들이 ‘감히’ 끼어들기에는 쉽지 않은 대열이다. 엄마들 위주로 이루어진 커뮤니티(놀이터든 카톡이든)에서 아빠가 설 자리는 빈약하다. 이건 누구의 잘못이 아니다. 그냥 남자, 여자의 성향과, 사회적 환경에 따른 차이일 뿐이다. 당연히 육아에 있어서 정보의 주도권을 엄마가 쥐고, 아빠는 이를 공유하는 경우가 보통이다.

그래도 이 책을 읽으며 좋았던 건, 본문 곳곳에서 저자가 소개하는 영화나 책이 세세하고 구체적이어서다. 마르잔 사트라피의 『페르세폴리스』(휴머니스트, 2019)는 이렇게 만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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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출신 만화가이자 영화감독인 저자는 진보적인 부모덕에 테헤란에서 프랑스 학교를 다니고, 14세에는 홀로 오스트리아에서 청소년기를 보낸다. 4년 후 이란으로 돌아와 디자인 공부를 한 후 현재는 프랑스에서 활동 중이다.

1979년 이란 혁명으로 저자가 다니던 프랑스 학교는 폐교. 순식간에 여자는 히잡을 쓰고 신체를 가려야 하는 상황이다. 음주와 파티는 금지되고 이웃의 고발과 감시, 검열이 일상인 사회로 퇴보한다. 1980년 발발해 8년간 이어진 이란-이라크 전쟁으로 이란은 피폐해진다. 히잡으로 대표되는 여성 인권 하락을 온몸으로 감내하는 저자는 이란에서는 유학생으로, 오스트리아에서는 이방인으로 외로움과 정체성 혼란을 겪는다.


저자의 자전적 이야기인 『페르세폴리스』는 여성에 대한 사회의 억압과 모순을 유머와 위트를 담아 무겁지 않게 이야기한다. 분노로 목소리를 높이지 않고 침착하게 생각할 거리를 던진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이러한 방식이 오히려 큰 울림을 준다. 개인사에 담아낸 이란의 역사는, 그래서 우리에게 ‘남’의 이야기가 아닌 ‘나’의 이야기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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