닉네임을 바꾸셨나요?

권남희 <스타벅스 일기>(한겨레출판, 2023)

by 무단횡단

스타벅스 닉네임은 내내 실명 그대로였다. 육지에서야 기껏해야 테이크아웃만 했으니 딱히 거슬릴 일이 없었다.

올해 봄부터 시작된 스타벅스 출근도장. 너무 정직한가 싶어서 성을 빼고 이름 두 글자로 닉네임을 변경했다. 몇 달 이용 후 이것도 아닌가 싶어서 무심코 이름을 검색해 봤더니 가수 이름과 겹쳤다. 그것도 유명한 그룹 멤버. 몇 달 사용한 닉네임을 다시 변경했고 얼마 되지 않은 오늘, 스타벅스 직원이 바뀐 닉네임을 알아챈 것이다(그동안 한심하다고 생각한 걸까? 다 큰 어른이 아이돌 이름이라니).

“닉네임을 바꾸셨나요?”


일본문학 번역가 권남희. 집순이인 그가 딸의 독립을 기회로 스타벅스에서 일하며(번역이나 저술) 일기 쓰듯 그날그날의 기록을 남겼다. 『스타벅스 일기』(한겨레출판, 2023). 일하며 보고 듣는 스타벅스 이용객들의 관찰기가 가득하다. 새로운 메뉴 소개도 빼놓지 않는다. 무엇보다 재미있다. 봉부아, 홍만춘 류의 글쓰기에 읽는 내내 웃음이 가시질 않는다. 내 경험과 겹치는 부분에서는 격하게 동감한다. 작가에게도 역시나 닉네임 에피소드가 있더라.


“나의 사이렌오더 닉네임은 평범하다. 나무다. 그러나 아무리 평범한 닉네임이어도 비슷한 시간대에 닉네임을 몇 달씩 부르다 보면 기억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며칠 전에는 사이렌오더로 주문 후 텀블러를 전달하려고 줄을 서 있는데, ”나무 고객님이시죠?“ 하고 카운터 안의 파트너가 먼저 웃으며 내게 인사했다. 그때 ‘아, 닉네임을 바꿀 때가 됐구나’ 생각했다.” (p.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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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여름방학기간, 올레길 걷는 날, 약속이 있거나 일이 있는 날을 빼면 실이용횟수는 그렇게까지 많지 않다. 그래도 돌이켜보면 내 인생에서 꽤 귀한 시간이고 값진 경험이다. 예전에는 책을 읽는 데 그쳤는데, 이제는 (책 관련) 글 쓰는 맛을 알게 되었다.


어디에나 관광객이 넘쳐나는 제주. 스타벅스라고 예외는 아니다. 관광객이 점령한 제주시내 스벅은 늘 시끌벅적이다. 반면, 내가 애용하는 스벅은 도민 비율이 압도적이다. 관광객이 없는 건 아니지만 대체적으로 조용한 편이다. 만석은 보지 못했고(크지 않은 규모임에도), 오전 시간 이용객은 한 자릿수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아쉽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이곳 스벅에서의 시간.


그나저나, 책 말미에 나온 한 에피소드에 의도치 않게 도리도리 융성여리가 소환됐다.

2022년 5월말부터 두 달 동안 제공한 스타벅스 서머 캐리백에서 발암물질이 검출됐다. 스타벅스는 7월말, 사과문을 내고 새 제품 교체와 함께 무료 음료 쿠폰 3만원 권을 제공한다. 파장이 커지자 여기서 그치지 않고 10월말, 대표이사 경질로까지 이어진다. 철저한 원인 분석과 이에 따른 보상과 수습을 피하지 않았고, 위기사항 대응에 적극적이었다. 무엇보다, 제대로 된 사과가 무엇인지 보여주었다.


“서머 캐리백 사태는 이런 물질적 보상과 대표이사가 사임하는 등 대대적인 사과로 마무리됐다. 일련의 과정을 쭉 지켜보며 생각했다. 사과란 "요만큼하면 되겠지"가 아니라 상대방이 "뭘 그렇게까지"라고 말할 정도로 해야 제대로 하는 거구나. 그러려면 역시 돈이 많이 드는구나.” (p.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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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도리도리 융성여리의 담화문은 참담했다. 29분 분량에 사과는 없었다. 한 나라의 대통령이 뱉어내는 말에 논리는 없었다. 극우 유튜버의 그것과 전혀 다르지 않았다. 팩트체크 없는, 어린아이 같은 감정의 분출에 아연실색했다. 이성이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어떻게 법조계에서 일할 수 있었는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 ‘뭘 그렇게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요만큼’이라도 사과하면 좋겠다만 그에게는 불가능한 것 같다.

다행이다. 우리에게 내일이 있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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