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태와 한군 <죽음의 바느질 클럽>(마티, 2024)
가 보고 싶은 나라가 있다. 아니, 정확히는 도시. 팔로우하는 두 작가의 여행기를 통해 호기심이 생긴 곳. 광활한 대자연이 펼쳐지고, 도심 곳곳 건물을 집어삼킬 듯한 아름드리 나무가 가득한 곳. 그 안에 자연스레 자리 잡은 숙소와 카페. 핸드 메이드의 도시, 시간이 천천히 흘러가는 곳. 태국 제2의 도시, 치앙마이다.
베트남, 라오스, 캄보디아, 미얀마, 태국, 말레이시아. (말레이반도를 포함한) 인도차이나반도에 속한 국가는 내게 생소하다. 동남아시아 국가로까지 범위를 확장하더라도 여행한 국가는 필리핀, 싱가포르에 불과하다.
치앙마이를 가 보고자 하는 마음은 복태와 한군의 책 『죽음의 바느질 클럽』(마티, 2024)을 읽고는 더 커졌다. ‘선과영’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뮤지션 부부인 복태와 한군. 아이 셋을 키우며 치앙마이에서 익힌 바느질과 수선 기술을 이웃과 공유하는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바느질이라니, 나와의 접점은 희박해 보였다. 아이들이나 내 옷의 해어지고 구멍난 곳을 깁는 게 고작이니 당연하다. 속독할 요량이었다.
이들은 뭐든 바느질하고 수를 놓는다. 양말이나 옷을 수선하는 건 기본, 운동화나 무스탕, 가방 같은 질기고 두터운 재질도 깁고 수를 놓는다. 버려진 우산도 살려내고, 떨어진 기타 케이스 손잡이도 바느질 하나로 재생시킨다. 심지어는 한 번 사용하고 버리는 비닐봉지조차도 꿰매고 예쁘게 장식해 ‘작품’으로 재탄생시킨다. 하다못해 벽돌도! 이들 수선의 핵심은 예전 상태로의 ‘복원’이 아니라, 오히려 눈에 띄게 ‘재탄생’시키는 작업이다. 이웃의 추천으로 방문하게 된 도시, 치앙마이에서 우연히 만난 바느질 스승과의 만남이 이 모든 일의 시작이다.
“바느질을 배우기 시작했다고 해서 그와 단박에 가까워진 건 아니었다. 바느질이 손에 익기까지 시간이 걸리듯, 우정의 농도가 진해지는 데도 시간이 필요하다. 액이 시범을 보여주고, 묵묵히 바느질을 하고, 그러다 액이 가까이 다가와 내가 잘하고 있는지 들여다보고, 잠시 바느질을 멈추고 허리를 펴고 목을 돌리며 액의 아이와 우리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지켜보고, 액의 아내가 망고를 깎아다 주면 함께 먹으면서 영어 단어로 수다를 떨고, 또다시 바느질을 하다가 하늘 한 번 쳐다보고. 다음 날, 또 다음 날 페이퍼스푼에 앉아 바느질을 하면서 우리는 그렇게 아주 서서히 가까워졌다.” (p.249~250)
이들의 만남이 호들갑스럽지 않아서 좋았다. 조금씩, 자연스럽게 가까워지는 느린 시간의 흐름이 좋았다. 그렇게 익힌 바느질은 ‘기법’을 중심에 두지 않는다. 서두르지 않고, 멈추고 싶을 때면 언제든 멈추는, 그러면서 원할 때 다시 시작하고 이후를 기대하게 하는 바느질이었다. 저자는 이를 ‘치앙마이 정신’이라 부르며 삶과 연결시킨다. 멈췄다고 해서 실패한 삶은 아니라고 말한다.
“바느질은 '멈춤'에 특화된 장르다. (중략) 바느질은 언제든 멈출 수 있다. (중략) 바느질은 다시 이어갈 수 있으니까. 바느질을 한다, 힘을 빼고. 힘들면 멈춘다. 나중에 이어서 하면 되니까. 바로 이것이 우리가 8년째 질리지 않고 여전히 즐겁게 바느질을 하는 비법이다. 적당히 하고 멈추는 것. 더 하고 싶을 때 그만두는 것이 '다음'을 기대하게 만든다. 과정을 즐기게 된다.
(중략) 서두르는 법이 없고, 심각할 일도 별로 없다. 바느질 땀이 엇나가면 다시 한다. 힘들면 쉰다. 너무 쉬었다 싶으면 움직이면 그만이다. 그래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멈췄다고 해서 실패한 삶은 아니었다.” (p.167~168)
바느질을 통해 삶을 꿰뚫는 성찰이라니. 바늘과 실, 바느질 기법, 수선하는 과정을 담은 이 책은 그래서 참 매력적이다. 바느질의 근원이 된 치앙마이, 그리고 그 도시에 담긴 시간의 흐름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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