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관 <아무튼, 서재>, 주한나 <아무튼, 정리>
김윤관. 목수. 함혜주의 책 『나무를 다루는 직업』(마음산책, 2024)에서 알게 된 이름. 한국 목가구의 수준이 높지 못한 이유는 목수들이 ‘나무’와 ‘목재’를 구별하지 못하고 목공을 신비화하려는 심리 때문이라는 김윤관의 말에 수긍한다는 내용이었다.
그의 책을 읽었다. “자기만의 책상이란 얼마나 적절한 사물인가”라는 카피 문구를 표지에 갖춘 『아무튼, 서재』(김윤관, 제철소, 2017). 함혜주가 인용한 그의 사유에 흘린 듯 빠져들었는데, 이 책, 역시나 도입부부터 냉철한 판단과 생각의 깊이가 심상치 않다.
목수에게 목공은 목적이 아닌 과정이고, 변경과 수정이 이루어지는 30% 정도가 디자이너나 가구회사와는 다른 ‘나만의 가구’를 만들어 내는 여정이라고 그는 분석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공부가 필수인데, 나만의 서재는 목수라면 갖추어야 할 덕목이라고 덧붙이면서.
“목수에게 목공은 과정에 불과할 뿐 목적이 아니다. 목수의 목적은 유용하고 아름다운 가구를 만드는 것이다. 내가 아닌 타인의 유용함을 파악하고 아름다움을 찾는 과정에서 공부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일 수밖에 없다. 목수가 손에 연장을 들고 나무를 깎기 시작할 때는 이미 전체 과정의 70%는 끝난 것이라고 보면 된다. 물론 실제 나무를 만지고 제작하는 과정에서 대강 30% 정도의 변경과 수정이 이루어진다. 이 30%가 목수의 가구를 디자이너나 가구회사의 그것과 구별되는 정체성을 갖게 하지만, 연장을 들기 전 이미 큰 그림은 잡혀 있는 것이다. 내가 나만의 서재를 유지하지 않았다면 아마 지금보다 훨씬 별 볼 일 없는 가구를 만드는 목수가 되었을 것이다. 내게 서재와 공방은 별도의 공간이 아니다. 서재는 공방의 연장이며, 공방은 서재의 확장이다.” (p.10)
김윤관은 목공을 신성시하지 않는다. 다만 목수(木手)라면, 자신이 만드는 가구에 자신의 가치관을 녹일 줄 알아야 하는데, 이를 위해 책이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나는 아직 한국의 목수 중에서 자신이 만드는 가구의 미학을 스스로 규정한 경우를 보지 못했다. 그 이유는 그들에게 공방만 있을 뿐 '서재'가 없기 때문이다. 그들의 손에는 연장만 쥐어질 뿐 책이 들려 있지 않기 때문이다. 혹자는 말한다. 목수에게 무슨 '미학'이 필요하냐고. 잘 깎고 다듬으면 될 것을 서툰 먹물 흉내 내지 말라며 눈을 흘기기도 한다.” (p.12)
서재를 구성하는 책장, 책상, 의자, 책을 바라보는 저자의 시선을 따라가며 그의 철학을 공유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내친김에 ‘아무튼’ 시리즈 한 권 더. 주한나의 『아무튼, 정리』(위고, 2023). 정리란 무엇인지, 정리의 노하우를 기대했는데 웬걸, 이 책은 굳이 정리가 필요하냐고 묻는다. ADHD 진단을 받은 저자는 같은 성향의 배우자와 삶을 함께한다. 정리와는 거리가 먼. 그런데, 그래도 괜찮다고 하니 낚인 기분이 들면서도, 정리에 대해 던지는 근본적인 질문이 나름 신선하게 다가온 책이다.
데이터 과학자인 저자는 디지털 삶에서 정리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고 말한다. 하루에도 몇십 통씩 쌓이는 (스팸)메일을 삭제하고 분류하는 사람은 많지 않으며, ‘우와’라는 단순한 트윗에도 생성되는 로그의 양은 상상을 초월한단다. 검색창이나 SNS에 흘린 쓰레기를 일일이 삭제하는 건 불가능하다. 결국엔 누군가의 먹이가 될 뿐이라는 설명에 살짝 섬뜩한 기분까지.
“내가 코드나 시스템 테스트에 몇 시간을 썼다면 그것만으로도 이미 백과사전 뺨칠 정도의 기록이 생성된다. 아무도 그 기록을 다 읽지 않지만 중요한 몇 부분은 가공되어 다시 기록으로 전파된다. 아침에 눈뜬 이후부터 하루 사이에 내가 생성한 디지털 흔적만 헤아려봐도 팔만대장경 이상의 분량이 나올 것이다. (중략)
현대인으로 살아가면서 모델하우스급의 깨끗한 온라인 프로필을 유지하기는 불가능하다. 눈에 보이지 않을 뿐이지 우리는 어딜 가든 온갖 발자국을 남기며 부스러기를 질질 흘리고 다닌다. 그리고 그 흔적들은 아주 정성스럽게 포장되고 가공되어 수천만의 저장소와 검색 모델들이 반기는 먹이가 된다. 내 마음을 나보다 더 잘 아는 듯한 검색 결과는 바로 그 결과물이다.” (p.116~119)
결국 저자의 논리에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책. 이래도,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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