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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터프리터 Aug 02. 2024

초딩이 엠마 왓슨한테 팬레터 보내고 받은 소포

뭐가 됐든 동심 지켜줘서 코마워요 워너브라더스

어릴 적 나는 나대는 초딩이었다. 아니, 개나대는 초딩이었다.



헤르미온느에게 마음을 빼앗긴 딩초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은 이제 막 이민을 간 우리 남매에게 단비 같은 존재였다. 말도 안 통하고 할 것도 없는 따분해하는 아이들에게 상상력과 낭만을 심어주었다. 심지어 1편 영화도 막 상영되었던 터라 DVD도 빌려서 집에서 봤는데, 비록 영어는 하나도 못 알아들어도 얼추 책 내용을 알고 따라가니까 이해가 되었다. 나중에는 2편도 빌려서 봤다. 나는 삼인방 중에서도 똘똘이 헤르미온느를 좋아했다. 내가 영어를 배울 수 있는 원동력이 되어주었다는 고마움의 마음에서인지, 새로운 환경에서 중2병이 조금 더 일찍 도졌던 건지, 딩초이던 나는 문득 엠마 왓슨 배우에게 팬레터를 쓰...기..로...마음을...먹...었다....다시 말하지만 난 정말 개나대는 초딩이었다.


[딩초의 개나댐 1단계: 주소 검색하기]


여기서부터 본격적으로 딩초의 개나댐 절차를 밟기 시작했다. 첫 번째로 우선 주소를 찾아보았다. 그딴 게 나올 리 없다. 요즘 한국 연예인한테는 편지 어떻게 보내지? 소속사한테 보내나? 디엠을 보내나? 아무튼 초딩이던 나는 열심히 인터넷에 검색해 보다가 아래 주소를 발견한 것이다.


Emma Watson (Hermione Granger)
Emma Watson
C/O Warner Bros.
4000 Warner Blvd.
Burbank, CA 91522


[딩초의 개나댐 2단계: 편지 쓰기. 편지 보내고 잊어버리기]


지금 봐도 씁...ㅎ진짜 맞아? 싶기는 한데 뭐 워너 브라더스라고 적혀 있으니까^^ 당시 나는 고러췌 하고 휘리릭 편지를 써 내려갔다. 대충 뭐 영어로 하이 엠마, 마이 네임 이즈 지현 어쩌고 저쩌고. 두유 라이크 코리안 푸드? 어쩌고 저쩌고. (그와중에 한식을 빼먹지 않은거 보면 두유노족 맞음) 한 세 장은 구구절절 써내려간 것 같다. 뭐 그렇게 할 말이 많았을까? 거의 주소 발견한 당일날 편지 부치고 기억 속에서 지워버렸다. 딩초는 바쁘다. 


[딩초의 개나댐 3단계: 잘 놀고 있다가 소포 받기]


그해 크리스마스 시즌 즈음이었다. 지금은 뭐 인터넷도 있고 스마트폰도 있으니 그 문화가 덜할 것 같긴 한데 당시 우리가 살던 타운에서는 조촐하게나마 서로에게 행복한 크리스마스와 새해를 기원하는 편지 같은 걸 우편으로 보내는 아주 소소한 문화가 있었다. 몇명의 친구들, 평소 학교에서 좋아했던 선생님들에게 편지를 몇개 개봉해서 읽어보며 재밌는 시간을 보내던 와중에, 소포 하나를 가위로 마구잡이로 자르던 엄마가 놀라서 나를 불렀다. 그것은 바로 해리포터 삼인방의 사진이었다 후후

(왼쪽 하단에 보이는 것처럼 엄마는 내용물이 뭔지 모르고 그냥 가위로 뜯고 있던 터라 살짝 흠집이 나기는 했다)


[개나댐으로 얻은 교훈: 개나대자. 영어 실력이 일취월장할 것이다]


나는 영어를 해리포터로 배웠다. 미국 이민 1년 차, 새로 살게 된 아파트에서 최소한의 가구만을 갖추고 살게 된 터라 오빠와 나는 딱히 할 만한 게 없었다. 한 6개월까지는 원래는 티비도 없었는데, 티비를 설치한 이후에도 영어 채널밖에 없으니 (당시에는 OTT, 유튜브는커녕 아시아권 대상 채널도 제한적이었기 때문에) 크레용을 사서 어린이용 휴지곽에 그림을 그리면서 시간을 보내곤 했다. 너무 심심해하니까 한국에서 이모가 한국어로 된 책 몇 권을 보내주셨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이었다. 전 세계 수많은 해리포터 덕후 중 한 명이 된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사실 엠마 왓슨 배우가 저 편지를 접했을 거라는 생각은 1도 하지 않는다 ㅋㅋㅋㅋㅋㅋㅋㅋ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전 세계에서 보냈겠어.... 그때 어린 나이에도 믿지는 않았.... 그냥 하도 팬들이 이것저것 보내고 하니까 관리 차원에서 만든 시스템이 아닐까 싶다. 어쨌거나 그래도 당시만 해도 영어로 말하고 쓰는 게 완전히 익숙하지는 않았었는데, 팬레터 보내려고 애쓰다 보니까 영어가 늘었다;; 역시 덕질이 최고다.


그리고 뭐가 어찌 됐든 어린 친구의 동심을 지켜주기 위해 노력한 워너브라더스에는 고마운 마음이 있다. 여전히 겨울 되면 생각난다고... 이참에 주말에 해리포터 정주행 때려야겠다. 개나댄 일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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