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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이맘 Jun 24. 2021

느리지만 결코 늦은 건 아니다

※비교는 금물

나이 서른을 훌쩍 넘어서야 나는 처음으로 운전대를 잡게 되었다. 병원을 그만두고 시간이 많아지자 무이를 데리고 이곳저곳 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면허도 없는 뚜벅이 엄마에게  외출은 아주아주 큰 결심을 해야 가능한 일이었다. 버스 타고 키즈카페라도 한 번 다녀오면 무이도 나도 땀범벅이 되기 일쑤였고, 그 불똥은 괜히 무이에게 튀어 별일 아닌 일에도 짜증스러운 불평이 내 입에서 나오곤 했다. 겁이 워낙 많아 "난 절대 면허를 따지 않을 거야!"라고 친구들한테 말하곤 했었던 나였지만, 엄마는 그 누구보다  용감하다 했던가, 정신을 차려보니 운전면허학원에 등록하고 있었다. 기능시험은 80점 커트라인에 80점 턱걸이, 도로주행은 1번 실격당하고 두 번째에 겨우 합격. 추가 연수까지 받으며 거의 한 달 반 만에 나는 운전면허증을 손에 쥘 수 있었다. 나름의 고된 여정이었다...


그즈음 우리 무이는 어린이집을 다니기 위한 사전 준비를 하나하나 해나가기 시작했다. 12월생이라 많게는 1년이나 빠른 친구들과 같은 반에 다녀야 한다는 사실이 부담스러웠다. 일단 제일 급선무는 젖병과 분유 떼기였다. 보통 돌이 지나면서 이유식 완료기에 접어들면 젖병을 떼라고들 하는데, 무이는 무심한 엄마와 한없이 너그러운 할머니 품속에서 16개월이 지나도록 여전히 젖병을 입에 달고 살았다. 그 때문에 밥 먹는 양도 너무 적어서 무턱대고 분유를 끊기에도 난감한 상황이었다. 무이가 밥 대신 분유를 찾을 때마다 엄마와 떨어져 있다는 안쓰러운 마음에 젖병을 내어주었던 할머니와 바쁜 엄마라는 핑계로 예뻐할 줄만 알았지 정작 내 아이 먹는 것엔 관심이 없었던 무지한 엄마의 콜라보. 극약처방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무이야, 이제 젖병은 안돼! 분유도 안돼!"


뒤늦게 육아 전선에 뛰어들어 마음만 급했던 나는 뒤늦은 후회와 너무 무심했다는 부끄러움에 급하게 무이를 다그치며 훈육하기 시작했다. 특히나 밤에 졸릴 때면 무이는 젖병을 찾아 대성통곡을 하기 일 쑤였고, 울다 지쳐 땀에 젖어 잠드는 날들이 이어졌다. 그걸 보는 엄마인 내 마음도 속상하고 점점 지쳐갔다.

"무이가 더 어릴 때 이유식 진행하면서 엄마(무이 외할머니)가 차근차근 분유도 줄이고 젖병도 떼고 했으면 지금 이렇게 힘들 일도 없었을 건데... 다른 애들은 밥도 다 잘 먹던데..."

힘들게 손녀딸 키워준 것에 대해 감사할 줄도 모르는 이 못난 딸의 몹쓸 말에도, 친청 어머니는 그럴 때마다 미안하다며 오히려 나를 다독이셨다.

"그러게, 엄마가 조금 더 똑똑하게 육아를 했더라면 좋았을 텐데 미안하다. 그래도 결국 커서 밥 못 먹는 사람은 없더라~ 아이마다 다 시기가 다른 것뿐이야. 기다려주면 우리 무이도 알아서 다 따라올 거야"


그렇게 고난의 몇 주가 지나고 드디어 무이는 젖병과 분유에 영원한 안녕을 고하였고, (사실 당연한 거지만) 말도 행동도 같은 반 친구들보다 한 참 느린 것 같아 불안했던 엄마 마음이 부끄럽게 무이는 어린이집에도 잘 적응해나갔다. 그 사이 내 운전실력은 일취월장... 하지는 못하였지만 동네 운전 정도는 무리 없이 할 수 있게 되었다.


아침에 무이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돌아와 집 앞에 무사히 차를 주차하고 난 뒤 문득 지난 몇 달이 스쳐 지나갔다. 남들은 고등학교 마치자마자 따는 운전면허를 30살이 훌쩍 넘어 따겠다고 할 때도, 속성 코스로 일주일 만에도 딴다는 걸 한 달 반이 걸려 추가 연수까지 받으며 겨우겨우 딸 때도, 몇 달이 흘렀지만 여전히 동네 운전뿐인 운전실력에도 우리 부모님과 남편은 결코 나를 재촉하지도, 질타하지도 않았다. 대신 격려해주고 기다려주었다. 결국은 잘할 수 있게 될 거라고.

어린이집에 보내면서 나도 모르는 새 나는 무이를 다른 아이들과 비교하고 있었다. 어른들이 만들어놓은 일정한 기준에 우리 무이가 뒤쳐진다고 속상해하고 얼른 따라가라고 등 떠밀며 나무랐다.

참 부족한 엄마다 싶다.


병원에서 영유아 발달검사를 할 때 부모가 가장 주의해야 하는 것은 그것이 결코 절대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평가기준에는 만 15개월에 블록을 2개를 쌓아야 한다고 하지만 그걸 당장에는 못한다 하더라도 한 달이 지나 할 수 있게 된다면 그 아이는 정상일 것이다. 또 오히려 그 당시에 계단 오르기 같은 더 어려운 것들을 잘할 수도 있다. 발달 속도도, 잘하는 영역도 다 다르기 때문에 어릴수록 아이의 발달은 좀 더 유연한 마음을 가지고 지켜봐 주어야 한다.


내 운전실력이 느는 것보다도 하루하루 더 빠르게 성장하는 우리 무이를 보면서 오늘도 엄마인 나는 반성하며 다짐한다.

 

'그래, 느리지만 결코 늦은 건 없어.

너의 속도대로 무럭무럭 건강하게만 자라주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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