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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이맘 Sep 15. 2021

미래의 우리 아이들의 건강이 위험하다

소아청소년과의 현재

번아웃 증후군.

한 가지 일에 몰두하던 사람이 정신적 육체적으로 극도의 피로를 느끼고 이로 인해 무기력증, 자기혐오, 직무 거부 등에 빠지는 증상을 말한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전공의를 마칠 즈음 지독한 번아웃 증후군에 걸려있었다. 특히나 내가 수련을 받았던 병원은 전국 곳곳에서 중증환자들이 몰려드는 큰 대형병원이었고 매일매일이 살얼음판의 연속이었다. 학생 시절 소아과 실습을 돌면서 만났던 아이들이 그냥 너무 좋아서, 아플 때도 때때로 보호자와 의료진을 향해 꺄르륵 웃어주는 해맑은 아이들이 너무 예뻐서 소아과 의사가 되어야겠다고 마음먹었던 나로서는 미처 예상치 못했던 전개였다. 체중이 300g밖에 안 되는 미숙아의 탄생은 곧바로 생명을 살리기 위한 밤낮 가리지 않는 힘겨운 사투로 이어졌고, 항암치료를 받으면서도 해맑게 웃어주던 아이들 중 일부는 끝끝내 하늘의 별이 되었다. 의사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그 너머의 영역이 존재한다는 것을 나는 매일 실감했다. 학생 시절 환자를 치료하는 법만 배웠지 의사 본인의 스트레스를 어떻게 감당해야 하는지는 미처 배우지 못했던 나는 슬픔, 두려움, 중압감 그런 감정들을 그저 속으로삭히며 힘든 그 순간순간들이 얼른 지나가기만을 바라고 또 바랐다.


병원의 밤은 항상 불안했다. 눈뜨고 지샜던 수많은 밤들 중 기억에 남는 몇몇 밤이 있다. 전공의 2년 차 소아 혈액종양과 주치의를 하던 때였다. 나는 당직이었고 여느 때와 다름없이 불안한 마음으로 당직실에서 잠을 청하고 있었다. 자정 무렵 당직 폰이 요란하게 울렸고, "선생님, 혈압이 떨어져요!" 담당 간호사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수차례의 재발로 인해 적극적인 치료를 포기하고 보존적 치료만 하고 있던 15살, 내 담당 환아의 혈압이 점점 떨어지고 있었다는 노티였다. 환아는 이미 암이 뇌와 척수에 번져 사지를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로 극심한 통증에 진통제만 다량 투약하고 있던 상태였지만, 의식은 또렷했고 DNR(심폐소생술 거부)도 아니었다.

"당장 치료실로 빼고 모니터 달아주세요!"

수액에, 승압제에, 항생제까지 다 달고도 혈압은 계속해서 저공비행 중이었고 소아중환자실에 환자 이송을 문의했지만 불행히도 중환자실 자리가 모두 차있어서 밤사이에는 불가능하다는 답변을 받았다. 날이 밝을 때까지 치료실에서 버티는 것 밖에는 답이 없었다. 무서웠다. 옆에 버티고서서 승압제 용량을 조금씩 조절하는 것 밖에는 해줄 수 있는 것이 많지 다. 

'버텨줘 제발... 제발...'

다행히 환아는 고비를 잘 넘겨주었고 다음날 중환자실로 무사히 이송되었다. 당직과 정규, 36시간의 연속 근무를 마치고 퇴근하면서 편의점에서 윗년차 선생님이 사주신 위로의 캔맥주 한 모금을 마시고는 필름이 끊 그렇게 고된 하루는 마무리되었더랬다. 후에 그 환아는 혈액에서 곰팡이자라고 있는 것이 확인되었고 결국 일반병동으로 돌아오지 못한 채 하늘의 별이 되었다.


신생아 중환자실에서의 기억은 더 독하다. 출생체중 280g짜리 미숙아의 주치의를 맡았던 적이 있었다. 아기는 폐가 제대로 발달되지 못해 인공호흡기를 달아야 했고 입으로 먹을 수 없으니 정맥영양으로 영양분을 모두 공급해줘야 했다. 체내 산소/이산화탄소 정도는 적절한지, 혈당은 적절한지, 전해질은 안정적인지 확인하려면 때마다 피검사를 해야 했는데, 몸무게가 너무 적게 나가다 보니 피검사 한 번에 (혈액량 부족으로) 혈압이 흔들릴 정도였다. 치료하려고 아기를 건드는 것이 오히려 더 해가 되는 상황이었다.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만지지 마시오'

아기의 생명력과 운에 희망을 걸어볼 수밖에 없는 무기력한 상황이었다. 때론 그런 행운이 잘 따라주는 아기들도 있었지만, 그 아기는 좋은 축에 들지 못했고 내가 당직이었던 어느 주말에 또 하나의 별이 되었다. 한 번도 아기를 품에 안아보지 못한 엄마, 아빠가 병원에 도착할 때까지 손바닥만 한 아기의, 더 조그마한 가슴에 두 손가락으로 심폐소생술을 해주는 것이 담당의로서의 내 마지막 일이었다. 너무도 연약한 그 촉감 지금도 나는 잊히지가 않는다.


엄마가 되어보니 그 마음이 백 프로 이해가 가지만, 그 당시 나를 벼랑 끝까지 몰고 갔던 보호자들도 있었다. 한 번은 초짜 간호사의 실수로 수액 종류가 바뀌어 들어갔던 적이 있었다. 명백한 의료 과실이었다. 그 사실을 인지하자마자 간호부에서는 담당의인 나에게 노티 하였고, 다행히 의학적으로 환아에게 위해가 되는 상황은 아니었다. 해당 간호사에게 주의를 준 뒤 나는 보호자에게 상황을 설명드리고 양해를 구하고자 병실을 찾았다.

"어머니, 죄송합니다. 담당 간호사 선생님의 실수로 A수액 대신 B수액이 일부 투여되었습니다. 다행히 환아에게 위해가 되는 상황은 아니지만, 이런 일이 발생하여 정말 정말 죄송합니다. 앞으로 더 주의하도록 하겠습니다."

완벽하게 일이 처리되어야 하는 병원에서 발생한 실수였기 때문에 더 화가 나셨겠지만, 아무 문제없을 거라지만 혹시나 하는 불안함과 걱정 때문이셨겠지만, 환아의 보호자는 내게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기 시작했다.

"너네 따위가, 내 딸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 내가 어떻게 살린 아이인데!! 책임져! 당장 무릎 꿇고 빌어! 무릎이라도 꿇으란 말이야!"

병실에 정적이 흘렀고 그 안의 모든 환자들과 보호자들의 눈이 내게 쏠리는 상황에서, 몹시도 미성숙했던 나는 그저 죄송하다는 말만 반복해서 드리고는 결국 울며 병실을 뛰쳐나오고 말았다. 물론 항상 안쓰럽게 생각하며 나를 챙겨주시던 보호자분들도,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항상 고맙다고 감사해주셨던 보호자분들도, 오며 가며 인사하고 서로의 사소한 안부를 묻던 보호자분들도 많이 계셨다. 하지만 자식이 아픈 극한 상황에서 마음이 송곳처럼 날카로워진 엄마, 아빠의 슬픔과 자책, 분노도 함께 해야 하는 것 또한 소아청소년과 의사의 숙명이다.


더 나열할 수 없을 만큼의 많은 사건들이, 그 안에 담긴 수많은 감정들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스쳐 지나간다. 바이탈을 다루는 소아청소년과 의사는, 그렇게 키워진다. 두려움, 중압감, 책임감의 무게를 버텨가며 하루하루 성장해 한 사람의 소아청소년과 전문의가 되기까지, 그 안에는 무수히 힘든 낮과 그보다 더 힘든 밤이 있다. 리고 그동안 마주친 수많은 환자들과 보호자들이 있었다. 업에 대한 명감과 언제나 나를 지지해주는 가족, 누구보다 나를 잘 이해해주는 동기들, 그리고 때때로 여전히 나를 향해 웃어주는 아이들이 있었기에 그래도 도망치지 않고 버틸 수 있었다. 그리고 결국 나는 전문의가 되자마자 육아를 핑계로 도망치듯 그곳을 떠나왔다.


현재 우리나라의 소아청소년과는 저출산으로 인한 출생인구 감소와 코로나 19의 직격탄을 제대로 맞았다. 동네 병원들이 줄줄이 문을 닫았고 이런 사회 분위기는 자연스럽게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지원 감소로 이어졌다. 이에 대해 걱정을 늘어놓으면 혹자는 환자수가 줄어드니까 의사수가 주는 건 당연한 이치라고 한다.

'소아는 성인의 축소판이 아니다.'

소아가 존재하는 한 소아청소년과는 그들의 건강을 위해 존재하여야만 한다. 러나 현재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지원율은 전체 정원의 고작 29%, 빅 5 병원들마저 미달이다. 중증 소아환자들이 넘치는 대형 병원마저 소아청소년과의 운영이 위태로운 실정인 것이다. 교수들이 있지 않냐고? 낮이고 밤이고 환아들, 바로 그 옆에서 그들을 직접 살피고 자질구레한 일까지 도맡아 돌보는 건 결국 전공의들이다. 그리고 그들이 미래의 아이들을 책임질 소아청소년과 의사들이다.


모든 인프라가 다 갖추어진 병원에서, 로딩을 서로 나누며 힘든 일을 함께 극복해나가는 든든한 동기들과 수련을 받으면서도 나는 지난 4년이 몹시도 힘들었고 지독히 외로웠다. 누군가의 생과 삶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은 영광스러운 일이겠지만 그만큼의 고통과 책임감이 따르는 법. 그래서 소아청소년과를 꿈꾸는 인턴 후배들에게 나조차도,

'넌 전공의 수가 미달이라 비록 앞으로 당직도 많이 서야 할 거고 잠도 잘 못 잘 거고 여러 죽음과 슬픔을 마주쳐야 할 것이며 그 안에서 무기력감과 절망감, 괴로움을 느낄 수 있지만 동기가 없으니 혼자 견뎌내야 할 것이며, 그렇게 전문의가 되어도 인구수가 감소하고 있고 코로나19로 급여 진료가 대부분인 소아과가 타격을 많이 받아서 나중에는 취직할 로컬 병원이 없을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미래의 아이들을 치료할 누군가는 꼭 있어야 하니 넌 소아청소년과를 선택하렴'

하고 말해줄 수 없었다. 사명감만으로만 버틸 수 없을 너무도 잘 알기에. 침몰해가는 소아청소년과의 현실이 너무도 서글프다.


지방에 소아외과 의사가 없어서 여러 병원을 전전하다 결국 사망한 아이의 슬픈 사연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어쩌면 10년 뒤쯤엔, '소아청소년과 의사' 마저도 없을지도 모르겠다.

미래의 우리 아이들의 건강이 위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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