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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이맘 Apr 25. 2020

아가야, 자석은 먹는 게 아니야~

무심코 지나칠 수 있는 응급상황

25개월짜리 아기가 자꾸 토한다고 한 엄마가 소아응급실을 찾아왔다. 말똥말똥 나를 쳐다보는 아기는 겉으로 보기에는 너무 멀쩡해 보였다. 신체진찰을 해도 별 이상이 없었고, 장염이라고 하기에도 몇 번 토한 것 외에는 설사도 열도 없었다.


뭔가 쎄~한 기분이 나를 스쳤다.

'엄마 혹시 애기가 뭐 잘못 먹지는 않았어요?'

'특별히 그런 것 없었는데...'

혹시나 하는 마음에 X ray 검사를 진행했고, 이게 웬걸! 아기 뱃속에는 떡 하니 원형 네오듐 자석으로 보이는 물체 2개가 서로 붙어서 위에서 못 내려가고 걸려있었다.


우리 무도 요새 '나 구강기예요(모든 게 다 입으로 들어가는 발달 시기)' 하고 시위하듯이 손에 뭐만 쥐어줬다 하면 다 입으로 들어간다. 자기 발, 엄마 손가락, 장난감, 이불... 기타 등등. 아기들의 기본적인 본능인지라 말릴 방도가 없다. 무심코 내가 옆에 뒀던 쓰레기를 기어이 본인의 손에 쥐고 입으로 막 가져가려는 찰나, 나와 눈이 마주치면 뭘 아는 건지 모르는 건지 씩.... 하고 미소 지을 뿐이다. 그 미소에 또 엄마는 그저 마음이 녹아 살랑살랑.


사실 자석 2개는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간혹 아이들이 동전을 먹고 오는 경우가 있는데, X ray상 이미 식도넘어갔고 특별한 증상이 없다면 무탈히 변으로 나오길 기다리면서 지켜볼 수 있다. 하지만 자석 2개는 좀 다르다. 위를 넘어간 경우, 구불구불한 소장과 대장을 지나는 동안 혹시나 두 개의 틈 사이에 장이 끼기라도 한다면 정말 큰일이다. 자석이 더 이상 못 내려오는 건 둘째 치고서라도 점막이 헐어 장에 구멍이 뻥! 하고 뚫릴 수 있다.


X ray에서 아직 자석이 위에 있어 보였기에 응급내시경을 시행했고, 무사히 자석을 제거..... 했었으면 참 좋았으련만. 아무래도 엄마가 못 본 사이 아기는 시차를 두고 자석을 한 개, 한 개 여유롭게 집어 먹었었나 보다. 위내시경 카메라로 보이는 자석은 오직 1개뿐이었다. 나머지 1개는 어디 있냐고? 이미 위를 넘어 소장이나 대장 어딘가를 유유히 여행하다 뒤따라 들어온 자석과 강한 끌림으로 만나 위와 장을 끼고 떡~하니 붙어버린 것이었다. 그래도 내시경으로 위에 있는 자석을 떼어버리면 나머지 하나는 더 이상 말썽을 일으키지 않을 거라 여러 기구들을 이용해 빼보려고 여러 차례 시도했지만, 강한 자력 때문에 자석은 그 자리에서 꿈쩍도 하지 않았다. 결국, 응급 수술 결정.


아기 엄마의 마음은 어땠을까. '도대체 왜 우리 집에 그런 자석이 있었을까. 아기가 자석을 먹는 동안 나는 왜 몰랐을까. 좀 더 늦게 발견했더라면... 생각만으로도 아찔...'

수술 준비를 하는 동안 내내 아기 엄마는 아기 손을 붙잡고 눈물을 흘렸다.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수술 잘 될 거라고, 걱정하지 마시라고, 그리고 엄마 탓이 아니라는 말 뿐이었다.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슬프지만, 그냥 아기가 커 나가는 과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시행착오 중 하나일 뿐이다. 훗날 아이는 건강히 커서 배에 보이지도 않는 작은 흉터를 가리키며 가족들과 기억나지 않는 아찔했던 그날을 이야기할 것이다. 그리곤 웃으며 지나가겠지. 그 날로 우리 집에 있는 작은 자석들도 모두 다 안녕을 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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