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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주 Jun 19. 2023

식물을 기록하는 일이란

초록 식구들이 들어오고 나서 줄곧 그들이 신경 쓰였다. 건강한 초록빛이 부주의함과 무지로 인해 혹여 상하게 될까 봐 걱정되었다. 식물의 생사 여부가 나에게 달려 있다는 무거운 책임감에서 비롯되었다. 잘 키울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하루의 꼬리표처럼 따라다녔다. 집에 있으면 저절로 식물이 있는 곳에 시선이 갔고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다.


크나큰 걱정거리는 물을 언제 줘야 하는가였다. 아무런 지식이 없는 상태에서도 식물에게 물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알고 있었다. 물을 잘 주지 않으면 시들어 버린다는 것도 당연한 사실이었다. 알고 있음에도 물을 주는 일이 어려웠다. 겉흙이 마를 때 주면 된다고 하지만 초보 입장에서는 그조차도 어렵게 느껴졌다. 화분 하나를 돌보는 것도 막막한데 살펴야 하는 화분이 여럿이었다. 걱정을 덜어내고자 그때부터 물을 줄 때마다 기록하기 시작했다. 단 하나의 화분도 놓치지 않겠다는, 혹시나 챙기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는 의지와 함께.


안 쓰던 작은 수첩을 꺼내 ‘물 주기 기록표’를 작성했다. 각 식물의 이름과 날짜 칸을 만들어 물을 주는 날을 적었다. 덧붙여 빈 페이지에는 식물을 관찰한 내용을 짧게 기록했다. 물을 줘야 하는 때를 알고자 매일 들여다보니 자연스레 식물의 변화를 눈치챘다. 작은 변화이지만 초보 식집사 입장에서는 신기한 일이었고, 이조차도 남기고 싶었다. 별다른 내용은 아니었다. 꽃봉오리가 언제 생겨났고 언제 꽃잎이 피어났는지, 새잎이 언제 생겼고 어떠한 모습으로 자라나는지. 그리고 인터넷에서 찾아낸 식물에 관한 정보나 관리 방법을 기록했다.


그렇게 꾸준히 작성하다 보니 물을 주는 적절한 주기를 찾아낼 수 있었다. 2주 간격으로 줬더니 식물이 조금 힘들어하는 것 같아 일주일 간격으로 바꾸거나, 자주 주었던 것이 문제라면 주기를 늘리면서 식물이 필요한 시기를 알아냈다. 그 시간들이 차곡차곡 쌓여가면서 식물들과 좀 더 친해진 듯했다. 그들을 면밀히 살펴보던 시간들은 우리를 더욱 가깝게 만들었다. 처음 보는 외향에 낯설었던 감정은 점차 친숙함으로 다가왔다. 본래 식물이 지닌 모습을 받아들일 수 있었고 그 속에서 가장 어여쁜 부분을 찾아내기도 했다. 이제는 애정 어린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보게 되었다.


어쩌면 식물을 기록한다는 건, 그들과 더불어 사는 방법 중 하나이지 않을까. 식물이 보여주는 작은 변화를 담아낸 페이지마다 우리들의 겹쳐진 일상이 머물렀다. 더는 함께하는 일상이 낯설지 않았다. 그들 곁에서 보내는 초록빛 일상이 꽤 즐거웠다. 비로소 식물생활의 의미를 알게 되었다. 내가 식물을 가꾸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나의 삶을 가꿔주고 있었음을.


ⓒ 백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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