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 글쓰기를 좋아하는 나인데 브런치는 왜 어렵게 느껴지지?
얼마 전 천운으로 한번에 브런치 작가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무슨 얘기로 운을 떼야할지 몰라서 일주일을 허송세월하듯 흘려보냈다. 내가 알던 블로거였다가 브런치 작가가 된 한 분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분의 블로그는 8,9년 전 우리 아이가 갓난 아기였을 때 육아 관련 정보를 서치하다가 발견하게 되었다. 우리 아이와 같은 해에 태어난 아기를 양육하며 하루하루 일어난 에피소드와 사진을 올리셨는데 비슷하면서도 다른 일상이 어느 날은 웃게 하고 어느 날은 울게도 하는 소소한 재미가 있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그 분의 직업은 글을 쓰는 일이었다! 정확히는 기억나지 않지만 최소한 기업의 홍보자료를 쓰는 등의 일을 하셨던 것 같다.
내게 그 때는 하루가 24시간이라는 것이 너무나 아쉬운 시절이었다. 수유하랴, 이유식 만들어 먹이랴, 문화센터 가랴, 집안일 하랴, 침 흘리며 푹 자랴... 정말 너무나 바쁜 때였다. 아기에 대한 고민이 넘쳐났고 즉각적인 해결책이 늘 필요했다. 툭 하면 아기를 차에 태우고 병원으로 출동하던 시기였다. 그렇게 살던 나와 달리 글을 쓰며 하루를 정리하던 그 분은 얼마나 대단해 보였는지 모른다. 달디단 잠도 줄여가며 재미있는 글을 쓰다니! 지금 생각해보면 그 분은 회사 일을 하며 느낀 스스로의 글쓰기에 대한 목마름을 해소하고 있었던 것 같다. 내가 틈날 때마다 누구든 붙잡고 내 얘기를 쏟아붓고 공중으로 흩어지는 연기처럼 훌훌 날려버리고 있을 때 글을 통해 본인의 얘기를 기록으로 남기고 있었다.
아이가 자라고 퇴사를 하고 여전히 바쁜 삶에 대한 목마름으로 이것저것 손을 댔다가 뗐다가를 반복하던 나는 이제 내 얘기를 누가 알든말든 큰 상관하지 않는 나이가 된 건지 아니면 원래부터 괜찮았던건지 #매일글쓰기 를 통해 일기 같은 글쓰기를 시작했다. 그 전까지 글쓰기는 일종의 감정쓰레기통, 아니면 기록남기기의 수단일 뿐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글쓰기는 호흡처럼 느껴지기 시작하고 있다. 순간순간 머릿 속을 떠다니는 상념들이 글자가 되어 내 앞에 실체를 드러내기 시작하자 내 슬픔, 아픔, 수많은 고민들의 원인이 사실은 이것이었다고 저절로 줄을 지어 글이 되어 주었다. 친절한 친구처럼 내 머릿속 생각들을 정리해주었다.
그래서 내 글쓰기는 그냥 친근하고 어딘지 만만한 친구가 되었다. 아무때고 전화해서 불러낼 수 있으며 불러내면 쪼르르 달려와주는 다정한 친구. 내게 속상하고 힘든 일이 생기면 누구보다 빨리 달려와서 내 마음을 보듬어주는 친구. 어렵지도 낯설지도 않은 만만한 존재. 그게 나의 글쓰기였다.
그런데 브런치 작가라니. 난 왜 지원한걸까. 오마이뉴스에 내 글이 처음 게재되었을 때의 '일단 멈춤'과 비슷했다. 주변의 누군가가 나를 두고 '글쓰기에 진심'이라고 말했을 때 살짝 흔들렸던 것과도 같았다. 나는 글쓰기를 쫓아다니는 게 아니었다. 나란히 걷는 거였지... 아니 내 자아가 글쓰기보다 한수 위라고 해야 하나? ㅎㅎㅎ
기쁨의 순간을 뒤로 하고 이제 나는 그럴싸한 글을 써야하는 거였다. 그런데 도대체 자신이 없다. 왜냐하면 내 글은 친구이니까. 한없이 자상하고 친절하고 무슨 짓을 해도 받아주는 친구이니까. 고상하고 예쁘고 어려운 누군가는 내 글쓰기와는 거리가 머니까. 난 그런 친구는 둔 적이 없으니까 그 친구를 설명할 수도 없었다. 그 친구가 어떤 얼굴인지 도무지 적어낼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일주일이 흐르고 흘렀던 거였다.
나에 대한 소개글을 적고 싶었지만 그 마음을 접었다. 그냥 블로그에 썼던 글을 그대로 옮겨보자고 마음 먹었다. 그리고 복붙을 했다. 부끄럽지만 내 브런치 첫 글은 블로그 복붙이었다. ㅋㅋㅋㅋ 브런치에 첫 글을 게재했다. 브런치에서 글을 써보라는 내겐 마치 독촉처럼 느껴지는 메시지를 받은지 딱 하루만이었다.
브런치는 예뻤다. 맞춤법 검사도 해줬다. 그리고 블로그의 '좋아요' 대신 '라이킷'이라는 세련된 말을 썼다. 누군가 '라이킷'을 눌러주면 곧바로 알람이 떴다. 알람도 얼마나 예쁜지. 하루에도 수십번 내가 쓴 블로그의 글을 읽고 또 읽는 나인데 (그렇다, 나는 내 얘기가 세상 재밌다. ㅋㅋㅋㅋ) 이제 브런치까지 들여다보게 생겼다. 라이킷을 아무도 안눌러주는 소외된 글이 되는 것이 왜 그렇게 두려웠을까. 브런치라는 낯선 세계에 발을 들이는 것이 뭐가 그리 힘들었을까.
내 부담스런 생각과 달리 일기 같은 글을 블로그 대신 브런치에 게재하시는 분들이 많았다. 그리고 브런치에는 광고글이 없었다. 담백한 글들이 가득했다. '이거였구나' 느낌이 왔다. 단지 처음 만난 친구라 낯선 거였다. 그것도 예쁘고 어딘지 똑똑해보이는 친구라서 그런거였다.
이제 조금씩 그 친구와 말을 터봐야겠다. 낯설지만 조금 힘을 빼고 이렇게 저렇게 스몰 토크를 진행해봐야겠다. 그러다보면 알게 되지 않을까? 어떻게 대해야 할지, 내가 이 친구를 통해서 겪고 싶은 것은 무엇인지, 이 친구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자꾸 라이킷에 집착하지 말고 그냥 내 얘기를 하자. 하던대로 친구 한명 더 사귄다고 생각하고 편하게 하자. 스스로를 달래본다. 긴장하지 말자고. 어깨를 툭툭 쳐본다. 예뻐봤자지. 똑똑해봤자지. 다 비슷한거 아니겠어? 거기도 사람사는 곳이라고!
왠지 곧 브런치 두번째 글을 쓸 것만 같다.
글쓰기 친구를 통해 이제 고민은 막을 내리고 싱그러운 봄기운이 다시 훅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