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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다 May 26. 2023

친구가 죽었다


친한 친구는 아니었다.

20살에 만났지만, 학교를 다닐때도 사회에 나와서도 1~2년에 한번 연락하고 오고가다 마주치면 인사하는 사이였다.

그러다 몇년 전, 잘 나가던 금융맨이 벤처에 발을 담그겠다고 했다.

덕분에 이미 벤처 늪에 빠져 있던 친구들과 함께 격하게 말리면서 오랜만에 얼굴을 봤고, 같은 늪에 빠져 있다는 약간의 동질감으로 조금 더 친분을 갖게 된 그런 친구다.

그러고 보니, 그래도 2년에 한번쯤은 안부 인사를 주고 받았는데, 마지막으로 연락한게 셋째 낳은 다음이니 이번에는 텀이 좀 길다 싶었다.


그래서 그 친구가 그렇게 아픈 줄 몰랐다.

아니, 아파서 그렇게 텀이 길어졌던 것이겠지.

카톡에 있는 [건강해질거야]라는 멘트를 보면서도, 부모님이나 가족이 아픈가보다 생각했지, 본인이 아픈 것일줄은 몰랐다.

죽음이 옆에 와 있을 만큼 큰 병에 걸렸을 줄은 정말 몰랐다.


병명을 썼다 지웠다.

내 친구를 하늘나라로 보낸 그 병은, 한때는 불치병이었으나 이제는 생존율이 제법 올라갔다고 들었다.

많이들 이겨내고 살아간다고, 실제로 내 주변에도 그 병을 이겨내고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

하지만 여전히 그 병으로 누군가는 죽음을 맞이한다.

혹시 모를 투병 중인 환자 분이나 그 가족들이 검색으로 여기에 들어왔다가, 그 병으로 죽은 내 친구의 소식을 몰랐으면 한다.

이런 소식 따위는 모른채, 그냥 이겨내시길 바란다.


어쩌다 한번 연락하는 사이였지만, 나는 너랑 평생 이 정도 거리의 친구로 지낼 수 있을 줄 알았다.

어차피 우리는 성별이 달라서 더 가까워지면 위험하다는 시덥지 않은 농담을 주고 받으면서,

야 너네 회사 ipo 언제 하냐, 주관사 정했냐, 스톡옵션 털었냐, 이번에 법 개정된거 봤냐- 같은 중요하지 않은 정보를 나누면서.

더 시간이 지나서는, 넌 요즘 어디사냐, 애 중학교 어디 갔냐, 수리 등급이 안나오네 좋은 학원 아는데 있냐- 같은 질문도 던지면서.


너와 이럴 수 있을거라는 사실을 의심하지 못했기 때문일까.

그래서 이렇게 눈물이 날까.

너의 부고를 들은 이후로 혼자 있으면 자꾸 눈물이 난다.

내가 이런 일로 이렇게 울만큼, 우리가 가깝다고 생각하지 못했는데.


너의 장례식장을 지키던 8살짜리 상주는 엄마 품에 안겨 있었다.

[8살짜리 상주가 엄마 품에 안겨있었다]니. 내가 이런 식상한 표현을 쓰는 날이 올 줄이야.

그런데 어쩔 수 없다.

너의 아들은 8살이고, 상주였으며, 네 와이프 품에 꼬옥 안겨 있었거든.


장례식장을 나오는데 날이 너무 좋아서 짜증이 났다.

차라리 이런날 비라도 오지 싶더라.

그러다 생각해보니 발인까지 날이 쨍쨍했으면 좋겠더라.

살 사람은 살아야 하니까, 너의 어린 아들이 더 힘들지 않도록 날이라도 좋았으면 싶었다.


사실 나도 그렇다, 살 사람은 살아야 하니까.

나는 지금 너를 털어내려고 글을 쓴다.

목이 매여서 차마 말로는 못하겠고, 청승맞게 카페에 앉아 눈물을 뚝뚝 흘리며 글을 쓴다.


왜냐하면 내가 좀 급하거든.

30분 후에 중요한 TFT 미팅이 잡혀 있고, 내일부터 시작된 연휴에는 둘째 아들 생일 기념 여행을 가야 해서.


지금까지 1~2년에 한번씩 연락을 주고 받듯, 앞으로는 이맘때가 되면 니 생각이 나겠지.

일년 잘 보내다가 이맘때 니 생각에 한번씩 울고 나면, 몇년 더 지나서는 ‘그런 친구가 있었어’ 하게 되는 날도 오겠지.


나는 잘 살거니까 신경쓰지 말고, 거기서는 아프지 말고 네 아들을 지켜주렴.


잘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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