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할 수 없었던 하루

위로수집 일지 8

by 단비

안 좋은 상황이 길어지면서 낯빛도 어두워지고 몸도 많이 여윈 터라 친정에 한참을 가지 못했다. 조금이라도 좋아진 모습으로 가고 싶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사위에게 어떻게든 달래서 데리고 오라고 귀찮을 만큼 전화를 하셨다. 남편은 장인과 부인 사이에서 눈치를 보느라 힘들었다. 내가 몇 번을 간다 안 간다 변덕을 부리는 통에 남편은 비행기 예약을 계속 변경해야 했다. 나의 친정은 제주도다.


결국 긴 추석 연휴에 제주도로 갔다. 귤 출하 날짜가 정해져 있던 탓에 전 식구가 귤 농장으로 집결해야 했다. 이모, 삼촌, 외숙모를 포함해서 우리 식구만 해도 10명이 넘었지만, 품삯 일꾼도 네 분 정도 더 모셨다. 일꾼으로 오신 네 분은 모두 칠순을 넘기신 어르신들이셨다.


일을 시작하고 얼마 안 가서 내 눈에 포착된 게 있었다. 우리 식구들은 나무 밑으로 굽어 들어가서 낮게 달린 열매들도 다 따는데, 일꾼으로 오신 분들은 허리나 다리를 굽혀 가면서 따지를 않으셨다. 팔을 뻗어서 딸 수 있는 것들을 따고 나면 다음 나무로 이동하셨다. 그걸 본 나는 그분들이 다 따지 않은 나무 아랫부분의 열매들을 땄다. 밑에서 위를 올려다보면 나무 중심부에 안 딴 열매들이 매우 많았다. 그걸 기를 쓰고 다 따려니까 엄청 힘들었다.


나보다 더한 건 이모와 삼촌이었다. 행여 다른 식구들이 힘들 까봐 조금이라도 자신들이 더 움직이고 더 어려운 역할을 맡았다. 젊은 조카들보다 늙은 이모와 삼촌이 아직 더 낫다며 힘자랑을 하셨다. 그렇게 서로 자기가 앞서 뭐라도 더 들고 나르고 움직였다. 다른 식구가 조금이라도 덜 들고 나르고 움직이게 하려고 말이다. 함께 일을 해보면 사람의 마음이 보인다. 그건 직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올케는 귤 따는 것만으로도 힘든데 점심 새참을 거하게 차려냈다. 후식으로 먹은 커다란 멜론도 달기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런데 이때 나는 일꾼으로 오신 분들의 또 다른 면을 봤다. 식사를 마치자마자 조금도 쉬지 않으시고 또 귤을 따시는 거였다. 무조건 한 시간 쉬어야 한다고 그만 따고 쉬라고 엄마가 누차 말하셨는데도, 그분들은 일을 멈췄던 자리로 돌아가서 계속 귤을 따셨다. 몸을 굽혀 가며 따지는 않으셨지만 쉬지 않고 따셨다는 걸 그때 알았다.


일을 마치고 동생은 몇 번을 감사하다 인사하며 일꾼으로 오신 분들께 품삯이 든 봉투를 드렸다. 일해주신 분들은 이 집처럼 우애 좋은 집을 못 봤다며 품삯에서 만원씩을 빼서 돌려주셨다. 세상 살다 이런 장면을 내가 또 볼 수 있을까 싶었다. 일한 값을 더 달라고 하는 경우는 있어도 일해주고 가면서 품삯을 깎아주는 경우는 아마 없을 것이다.


저분들한테 만원이 큰 돈일 텐데 저걸 준다고 받으면 어떡하냐고 올케에게 했더니, 올케는 웃으면서 내게 말했다. “언니, 저분들 모두 부자고, 그중에 한 분은 통장에 현찰로 100억 있으셔. 도시 계획으로 토지 보상받으셨거든.” 그분들에게는 이게 그냥 살아오던 대로 살아가는 인생의 루틴이라는 것이다.


나는 이날 하루 동안 세 번의 경이로움을 느꼈다. '우리 가족의 한결같은 애틋함, 가늘고 길게 일하는 담백한 태도, 부자 할머니들의 진정한 걸크러쉬.' 하루하루 우울감을 떨쳐내지 못해서 고단했던 나는 이날 하루 우울할 수가 없었다. 난류가 한류를 저만치 몰아냈다고나 할까? 물론 밀려났던 한류는 어김없이 다시 난류를 몰아냈다. 친정에서 돌아온 나는 여전히 풀리지 않는 일들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러나 하루 종일 힘들게 일한 시간이 대부분이었던 그날에 대해 나는 순간순간 느꼈던 경이로움만을 크게 간직하고 있다. 지금 보내고 있는 이 힘든 시간을 나중에 뒤돌아보게 될 때도 순간순간 스쳤던 감사한 일들을 더 크게 떠올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


Ai로 생성한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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