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안부를 묻는 요가

위로수집 일지 7

by 단비

요가의 자세를 ‘아사나’라고 한다. 아사나들 중에는 어떻게 이런 동작을 상상해 냈을까 싶을 만큼 기이한 자세들이 많다. 따라 하는 것 자체가 거의 불가능한 자세들도 있다. 하지만 얼추 비슷하게라도 낑낑대며 아사나의 모양새를 만들고, 바들바들 흔들리면서도 조금씩 버티다 보면 몸의 구석구석을 생생하게 느끼게 된다. 어느 쪽으로 몸이 기우는지, 어느 부위가 굳어서 짧아져 있는지, 어디로는 힘이 잘 들어가지 않는지, 어디가 유독 아픈지.


유연하고 부드럽게 자신의 힘을 몸 전체로 고르게 분산시킬 수 있는 숙련자들은 난도 높은 아사나를 할 때도 평안과 안식을 느낀다고 한다. 그러나 초급자들에게는 대부분의 아사나들이 크고 작은 통증을 유발한다. 그러다가 중급 수준이 되어 가면 통증을 느꼈던 부위가 시원하게 느껴지고, 좀 더 여유를 갖고 어느 부위에 어떤 자극이 들어오는지 들여다볼 수 있게 된다.


내가 다니는 요가원 강사님은 ‘엉덩이 근육 기억상실증(의학적으로는 ‘대둔근 조절 장애’)’을 예로 들면서, 몸의 특정 부위로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는 것은 뇌신경과 그 부분의 교류가 잘 이뤄지지 않는 거라고 했다. 그리고 주된 책임을 맡아야 할 근육이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면, 주변의 다른 근육들로 그 부하가 얹어지기 때문에 몸의 자세가 틀어지고 균형이 깨진다고 했다.


강사님이 수련 시간에 항상 반복적으로 하시는 말씀이 있다.

“무리하지 마세요. 타고난 몸이 다르고 살아온 생이 다르기 때문에 각자 할 수 있는 자세가 다 달라요. 요가를 잘한다는 건 아사나를 멋있게 해내는 게 아니라, 자기 자신을 잘 알아차리는 거예요.”


이 말 덕분에 잘하지도 못하고 빨리 늘지도 않았지만 꾸준히 요가를 할 수 있었다. 오랫동안 만남을 이어온 친구가 힘들 때 위로가 되어주듯이, 평소에 꾸준히 시간을 들여 해왔던 운동은 나의 괴로운 시간을 함께 보내주었다. 악기를 연주하거나 그림을 그리는 일도 그러할 것이다. 그런데 요가는 나에게 좀 더 특별했다. 요가를 하고 있는 시간 동안 나는 나의 안부를 물을 수 있었다. 어디가 아픈지, 얼마나 힘든지, 어떤 곳에 무신경했는지, 어떤 부분을 과하게 긴장하고 있는지.


차갑게 굳어진 곳에 따뜻한 온기를 보내고, 힘을 보낸 적이 없어서 잊힌 곳에는 화해의 메시지를 보냈다. 그렇게 자극이 느껴지는 곳들을 들여다보면 서로 요원하게 데면데면 지냈던 몸과 마음의 여러 부분들이 이어져 갔다. 한 번에 잘 이어지지 않더라도 서로 이어져야 하는 사이임을 깨우칠 수 있었다. 그렇게 몸과 마음이 정렬되면 전보다 좀 더 바르게 서 있는 나를 느끼게 됐고, 그러면 좀 더 버텨질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요가는 늘 담담하게 나의 안부를 물어주었다.


Ai로 생성한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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