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의 성찰과 외연의 확장

감정이 강적이 되지 않게 3.

by 단비

지각하고 있지는 못하지만, 우리 내면에는 ‘내가 알아야 할 모든 것을 나는 이미 알고 있다.’라는 사실이 있다. - 데이비드 호킨스(출처 1)


1)의 저자는 우리가 이미 태생적으로 알고 있는 진리를 자각하여 깨달으면 더 이상 감정으로 인해 괴로울 일이 없어진다고 말한다. 그러기 위해서 진실을 가리고 있는 감정을 버리고, 왜곡된 신념을 버리고, 그에 따른 부정적인 신체 반응을 모두 버리라고 한다.


감정을 놓아버리면 그것에 결부된 생각에서 벗어나게 되고, 왜곡된 생각에서 벗어나면 고통스럽던 신체 반응도 없어진다. 한 마디로 '싹 다 버리라.'는 것이다. 또한 이 ‘놓아버림’은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는 우리의 선천적 능력이며, 우리가 할 일은 '처음 출발한 바로 그곳'에 있음을 느끼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니 딱히 달리 애쓰지 말고 지극히 단순해질 것을 강조한다.


우리는 세계 자체를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스스로 구성한 세계를 경험한다. - 리사 펠드먼 배럿 (출처 2)


2)의 저자는 인간이 눈앞에 펼쳐진 세계를 관찰하면서 각자 자신의 실재를 창조한다고 본다. 관찰은 결과를 예측하는 과정이며, 이 예측을 토대로 각 개인이 자신의 목표에 맞게 감정을 구성하여 만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감정이 만들어지는 메커니즘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 과정은 상당히 복잡하고 난해했다.


인간은 특정 상황에서 자신의 목표에 가장 부합하는 개념을 즉석에서 구성하는 작업을 통해 ‘감정 개념’을 형성해 간다. 이 '감정 개념'이 풍성하고 섬세할수록 자신의 감정을 주도적으로 이끄는 데 유리하다고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학습과 훈련이 필요하다.


전자는 영성적인 통찰로 감정의 속박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안내하고 있고, 후자는 실천적인 지식으로 감정의 순기능을 활용하는 방법을 설명하고 있다. 전자는 에고가 감정을 일으키고 거대하게 키워서 적군을 만들어 내는 것이라 한다. 후자는 에고를 잘 훈련하면 자신의 목표에 맞게 감정을 구성할 수 있다고 한다. 물론 2)의 저자는 뇌의 여러 기능을 설명했을 뿐, ‘에고’를 언급하지는 않았다.


'에고'에게 너는 가짜니까 저리 물러나라 하고 참 자아를 위해 모든 감정을 버릴 수 있을까?

'에고'에게 풍부한 경험과 깊이 있는 지식을 쌓게 하면 지혜롭게 감정을 구성할 수 있을까?

감정을 미련 없이 버리라는 것과 감정을 의미 있게 구성하라는 것은 서로 상반된 주장인 걸까?


부정적 감정을 버리는 것이 자신에게 끝없이 질문하며 내면을 들여다보는 일이라면, 감정 개념을 형성하는 것은 지속적인 경험과 학습을 통해 자신과 세계에 대한 식견을 넓히는 일이다. 전자는 '내면의 성찰'을, 후자는 '외연의 확장'을 강조한다. 두 견해가 서로 다른 방향을 가리키고 있기는 하지만, 영적 통찰에 이르는 사람이 자신과 세계에 대한 식견이 협소할 리가 없고, 자신과 세계에 대한 식견이 높은 사람이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지 않을 리가 없다.


1)과 2)의 두 저자는 서로 다른 방향의 길을 가리키면서도 '감정은 우리가 만들어 내는 것'이라는 데 의견을 같이 한다. 결국 감정이 자신을 아프게 하는 적군이 되어 있다면, 그 적군은 우리가 만들어 낸 것이다. 감정이 강적이 되지 않게 하려면 감정을 놓아버릴 만큼 초연해지던가, 아니면 감정을 자신의 아군으로 돌려놓을 만한 실력이 있어야 한다.


홀로 고요한 평화에 머물고자 한다면 떠오르는 감정들을 끊임없이 버려야 한다는 것에 충분히 공감이 간다. 하지만 분명하게 맞서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다면 감정을 아군으로 삼아 현실을 헤쳐 나가야 하지 않을까?


To be continued 다음 회차에 계속 이어집니다.


출처 1) <놓아버림>, 데이비드 호킨스 지음, 박찬준 옮김, 판미동, 2013

출처 2) <감정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리사 펠드먼 배럿 지음, 최호영 옮김, 생각연구소,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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