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이 강적이 되지 않게 4.
2)의 저자(리사 펠드먼 배럿)가 감정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대해 뇌과학적으로 설명하면서 ‘에고’를 언급하지 않았지만, 나는 이 또한 에고에 대한 다른 표현이라고 생각됐다. 이와 같은 생각은 크리스 나이바우어의 글에서도 엿볼 수 있었다.
새로운 버전의 무수한 의식 수준이 끝없이 만들어지더라도 그 전부가 또 다른 형태의 에고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새로운 버전이 좀 더 우월해 보이지만 그 역시 약간 정제된 상태의 에고일 뿐이다. - 크리스 나이바우어, 「하마터면 깨달을 뻔: 인지심리학자가 본 에고의 진실게임」중에서
감정을 이해하고 감정에 잠식당하지 않기 위해서 ‘에고’의 특성을 설명하는 연구들이 많다. 에고를 없애야 한다는 주장도 있지만, 일면에서는 에고를 없애려는 생각 자체도 에고의 생각이라고 반박한다. 에고를 없애려는 의지, 자신의 생각 습관을 관찰하는 정신, 이 모든 것에 에고가 관여한다는 것이다. 에고의 속박을 끊어내겠다는 의지가 또 다른 구속이 된다면, 위의 크리스 나이바우어가 말하는 ‘약간 정제된 상태의 에고’라도 될 수 있도록 하는 게 좀 더 현실적인 것은 아닐까?
1)은 감정이 생존에 필요하다는 것은 에고가 만들어낸 허구이며, 모든 부정적 감정은 생존에 대한 근본적인 두려움과 관련이 있다고 본다. 이런 두려움을 조장하는 것이 에고의 ‘예측’이다. 이 예측은 늘 생존에 대한 불안과 공포를 조장하고 부정적 감정을 놓아버릴 수 없게 만든다.
1)은 부정적 감정을 놓아버리면 저절로 우리의 의식에는 용기가 생기고 받아들임과 사랑이 차오른다고 한다. 놓아버린다는 것은 어떤 일에 대해 격한 감정이 없음을 뜻하며, 격한 감정을 마음에서 내보내어 빈 공간을 만들면 에고는 설 자리를 잃고 힘도 줄어든다. 그 빈 공간은 인간 존재의 원래 본연의 모습, 기쁨과 자유로움의 자리가 된다.
2)는 감정은 상황을 설명하고 행동의 지침을 제공하는 기능을 하며, 인간은 그 감정을 능동적으로 구성하는 통제권을 갖고 있다고 한다. 즉 인간은 세계의 사태에 그저 반응하는 수동적 동물이 아니라, 각 개인이 능동적으로 자신의 경험과 지각을 예측하고 구성하며 행동하는, ‘경험의 설계자’라고 강조한다.
이 이론에서 ‘뇌’는 세상을 예측하는 기관으로, 예측을 통해 인간이 생존할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예측은 과거의 경험에 근거하여 이뤄지며, 인간은 예측을 바탕으로 자신의 행동을 선택한다. 결국 좋은 행동을 선택하려면 인간은 많은 것을 경험하고 학습해야 한다. 폭넓은 양질의 경험과 학습은 현명한 예측을 가능하게 하고, 상황에 적합한 감정을 구성할 수 있게 하며, 그것은 좋은 행동으로 이어진다.
1)은 에고의 예측에 속지 말고 감정을 내보내어 의식을 비움으로써 감정으로부터 자유로워지라고 한다. 2)는 많은 경험과 학습을 채움으로써 뇌의 예측 능력을 키워 감정을 의미 있게 구성하라고 한다. 1)은 ‘다 비운 공간(空間)’을 만들라 하고, 2)는 ‘잘 채운 곳간(庫間)’을 만들라 한다. 1)은 의식을, 2)는 뇌를 말한다. 의식은 비우고 뇌는 채워야 하는 걸까?
두 저서 모두 부분 부분 이해가 되고 수긍이 가면서도 전체적으로는 막연하고 어렵게 느껴졌다. 다른 말을 하면서도 같은 것을 설명하기도 하고, 다른 방향을 가리키면서도 같은 곳을 그리는 것 같기도 했다. 가장 큰 공통점은 감정을 의식적으로 객관화시켜 바라보는 것이다. 어떤 느낌인지,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지를 외부 관찰자의 시점으로 보라는 것이다.
감정이 강적이 되지 않게 하려면 그 감정에 대한 관찰자가 될 수 있어야 한다. 감정은 자신의 관찰 대상일 뿐, 자기 자신이 아니다. 감정과 자신을 분리시켜 이해해야 한다 . 그리고 감정은 자신이 만들어 낸다는 것, 그러니 자신이 자신의 적군을 만들 필요가 없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출처 1) <놓아버림>, 데이비드 호킨스 지음, 박찬준 옮김, 판미동, 2013
출처 2) <감정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리사 펠드먼 배럿 지음, 최호영 옮김, 생각연구소, 2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