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깥에 있는 마음

새벽독서 101일. 내가 아닌 것들이 모여 내가 되는지도.

by 단비

새벽독서 101일


함께 공유하고 있는 집단적 사고방식

'ㅁ'으로 시작해서 'ㅁ'으로 끝나서인지, 나는 '마음'이 네모난 상자 안에 들어있는 그 무엇인 것처럼 연상될 때가 있다. 이것이 나만의 특이한 생각인 줄 알았는데 그렇지가 않았다. 우리는 근대 사회 이후 '마음'이 어떤 공간에 '축적'되어 있다는 인식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이것은 자연적으로 생겨난 게 아니라 사회적으로 형성되어 개인에게 흡수되는, 일종의 집단적으로 공유된 사고방식이다.


내 생각이 아니었다는 깨달음

'마음'을 '무엇을 담아 놓을 수 있는 상자' 같은 것으로 떠올리게 되는 것은 내 개인의 독특한 생각이 아니었다. 근대 이후 인간의 이성이 지나치게 강조되고 과장되면서 우리가 갖고 있었던 '마음'에 대한 상상력이 간과되고 축소되어 버린 것이다. 어떤 생각이 나의 생각 아니었다는 깨달음은 묘한 쾌감과 자유로움을 주었다. 이제 '마음'에 대해 말 그대로 마음대로 생각해도 된다.


'안다.'는 경험은 뇌 안, 또는 육체 안보다 훨씬 넓은 장소에서 일어난다. 그럼에도 자연과학이 이성을 특별히 강조해서 심적 과정의 모든 것을 뇌 안의 물질현상으로 환원함으로써 '사람의 마음은 좁은 곳에 갇혀 버렸다.'고 오카 키요시는 한탄한다. - 모리타 마사오, <수학하는 신체> 중에서

육체 안에 마음이 있는 게 아니라, 마음이 수많은 육체들을 품고 있는 게 아닐까?

우리가 육체 안에 마음을 품고 있는 게 아니라 우주라는 마음이 우리의 육체를 품고 있는 게 아닐까? 어떤 마음이 든다는 건 육체 안에서 생겨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육체 안에서는 어떤 필요와 욕구가 일어나고, 그것이 우주의 마음을 끌어당겨 안으로 들이는 것. 사실 이것도 나의 생각이 아니라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많은 철학자들이 피력해 온 생각이다.


'내가 아닌 것'들이 모여서 내가 되는 건지도.

내 가족과 내 친구가 나를 더 잘 알게 해 줄 때가 있다. 내가 입은 옷과 갖고 있는 소지품이 나를 더 잘 드러내기도 한다. 내가 취하는 자세와 짓는 표정이 가장 나에 가까운 모습이기도 하다. 내 생각이 아니었다는 깨달음이 준 자유로움도 이 지점에서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 마음대로 생각한 많은 생각들이 이미 수많은 남(태고 적부터 내려온)의 생각들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내 생각이라는 건 '내 생각이 아닌 생각들의 총합'일 것이다. 이처럼 '내가 아닌 것'들이 모여서 내가 되는 건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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