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수집 일지 5
감정은 주어진 자극에 어떤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발생한다. 똑같은 자극에도 어떤 의미를 부여하느냐에 따라 느껴지는 감정은 다르고, 그 감정에 대응하는 방식도 사람마다 다르다. 각자 가지고 있는 지식이 다르고, 지금까지 살아온 경험이 다르며, 개인을 둘러싼 상황과 환경이 제각각 다르기 때문이다.
감정은
- 자신의 욕구와 관심사를 깨닫게 하여 의사결정에 영향을 주고,
- 미처 인식하지 못했던 인간관계의 거리를 알려주어 적절한 관계를 유지하게 하며,
- 상황에 적합한 행동을 하게 해 줄 뿐만 아니라,
- 위급한 상황을 깨닫게 하여 우리가 생존할 수 있게 한다.
이지영(2014) 「나는 왜 감정에 서툴까?」 중에서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는 동안 밀려오는 숱한 감정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 채 허덕이면서, 나는 그간 쌓아온 지식과 경험의 창고를 구석구석 헤집어 쓸만한 걸 찾아내려고 무진 애를 썼다. 벌어진 일에 대해 긍정적인 의미를 부여하려 했고, 느껴지는 감정을 과장하지도 왜곡하지도 말자고 다짐에 다짐을 했다. 지나치게 억눌러서도 안 된다고 자신을 타일렀다. 되도록 걸러낼 건 가려가며 정제된 감정을 절제된 방식으로 표출하고자 안간힘을 썼다. 안간힘이든 젖 먹던 힘이든 아직 쓸 힘이 남아 있었을 때까진 말이다.
‘감정은 온전히 느껴지고 표현되면 스스로 사라진다.’는 말을 되뇌며 느낀 걸 표현하려는 시도를 수없이 했다. 그런데 옴팡지게 감정의 폭포를 뒤집어써 보니 느낀 걸 표현하는 게 아니라 표현한 걸 느끼고 있을 때가 많았다. 하나씩 단정하게 줄 맞춰서 찾아온 게 아니라 떼거리로 덕지덕지 엉켜서 몰려온 감정들을 온전히 느낀다는 게 불가능했다. 뒤죽박죽 엉망진창으로 넘쳐나는 검정들을 선별하고 정리할 새 없이 그냥 토해낼 수밖에 없었다.
이쯤 되면 감정의 표출이 아니라 배출이 된다. 뭐라 지껄이고 있는지 모를 말을 뱉어내고, 나중에 후회할 게 뻔해도 알 게 뭐냐는 심정이 될 때도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사람 봐가며 만만한 사람한테만 그랬다는 것이다. 정확히는 만만한 사람이 따로 있었다기보다 내가 못나게 굴 때 내 앞에 있던 그 누군가는 그냥 만만한 사람이 되어주었다. 정신 차리고 생각해 보면 원래는 만만한 사람이 아니라 어려워 했어야 할 이들도 있었다.
날것의 감정을 토로할 대상으로서 '만만하다'는 건 속 깊고 입 무겁고 인내심 많음을 의미한다. 하지만 그와는 조금 결이 다르게 공감에 둔하고 돌아서서 잘 잊고 금방 딴 얘기하는 그런 사람도 있었다. 그 1호가 나의 아버지다. 그 어떤 일도 심각할 게 별로 없고, 심각한 일이 있어도 맛있는 거 드시면 기분 좋아지시고, 버릇없이 신경질을 있는 대로 부려도 허허실실 금방 잊어주시는 게 아버지였다. 감정을 표현해도 안전한 상황, 그걸 만들어 주는 분이셨다.
몸과 마음이 온전치 못한 것 같아서 두려웠을 때 감정을 표현해도 안전한 사람이 있다는 건 그 무엇보다 강력한 위로가 되었다. 삐뚤어지고 심술 맞아져도 잠시 그러는 거라 봐주고, 도를 지나치게 선을 넘어도 넘은 선만큼 물러서 주는 그런 사람이 있다는 건 큰 행운이었다. 사람들은 그냥 운이 나빠서 힘든 일을 겪게 된 거라고 나를 위로했지만, 그렇게 와닿지는 않았다. 그러나 감정을 표현해도 안전한 상황에 가닿을 수 있다는 거, 그건 진짜 운이 좋아서였다. 그래서 불행은 행운과 단짝으로 함께 다닌다고 하는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