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오르는 생각 받아적기 '경건한 수용'

새벽독서 38일. 인내심을 갖고 지성의 힘으로 문제를 바라보는 것

by 단비

새벽독서 38일. 매일 글쓰기 64일, SSWB-Act 코칭 5주차

위로의 말들이 고깝게 들리고, 위로가 되었던 글들이 전혀 와닿지 않으면서 나는 내가 무엇에 위로를 느끼는지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것은 잊은 지 오래된 과거의 기억이기도 했고, 항상 옆에 있었지만 눈여겨본 적 없는 자연 풍경이기도 했다. 함께 아파하는 가족의 염려이기도 했고, 우연히 마주친 사람의 무심한 친절이기도 했다.


‘위로’를 찾겠다며 글을 쓰는 동안, 내가 나의 기억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지, 자연 속 어떤 모습에 경외를 느끼는지, 가족 한 명 한 명이 나에게 어떻게 비치고 있는지, 우연히 마주치는 순간들 중에 무엇이 유독 잔상에 남는지를 알 수 있었다.


예상치 못한 충격과 상처는 내 정신에 금을 냈고, 나는 그 틈새의 안과 밖을 드나들며 더 큰 균열을 만들었다. 나는 깨지고 있기도 하지만, 나를 깨트리고 있기도 하다.


깨진다는 것, 자신을 깨고 밖으로 나온다는 것은 사고를 방해하는 모든 것을 제거하라는 에머슨의 말과도 닿아 있었다. 에머슨은 자신의 생각을 그냥 방치해 두지도 말고, 그 방향을 억지로 정하려 하지도 말아야 진짜 자신의 생각이 떠오른다고 말한다.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활동이 항상 늘 최고다. 아무리 깊이 생각하고 주의를 기울여도 문득 떠오르는 영감만큼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는 것은 없다. 이것은 밤에 잠들기 전까지 머리를 쥐어짜도 답이 나오지 않던 문제가 다음 날 아침 잠에서 깨어나 침대에서 일어날 때 혹은 아침 산책 중에 갑자기 떠오르는 것과 같다. 우리의 사고는 일종의 경건한 수용이다.
사고의 진실성은 자신의 의지에 따라 강제로 방향을 정하려 하거나 너무 오랫동안 방치해 둬도 모두 손상돼 버린다. 떠오르는 생각은 미리 스스로 결정할 수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오감을 열고, 사고를 방해하는 모든 것을 가능한 한 제거하고, 인내심을 갖고 지성의 힘으로 문제를 바라보는 것뿐이다.
- 랠프 월도 에머슨, 「내가 원하는 것은 이미 내 안에 있다」 중에서


‘우리의 사고는 일종의 경건한 수용이다.’라는 말에서, 나는 글쓰기가 떠올랐다. 글을 쓴다는 것은 떠오르는 생각을 받아적는 일에 가깝다. 이 작업을 위해 ‘인내심을 갖고 지성의 힘으로 문제를 바라보는 것’, 그것이 나에겐 새벽독서다.


새벽독서를 함께 하는 글벗들 덕분에 혼자 좁은 식견에 매몰되지 않고, 맘대로 아무 방향으로나 내닫지 않을 수 있음에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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