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2. 양말 신기 자립

묵은 기억 날리고 새 기억 들이기

by 단비

아버지는 양말을 혼자 신기가 힘드시다. 여기엔 세 가지 이유가 있다.

신체의 구조적 특징, 관절의 가동성 감소, 자립의 동기 상실


아버지는 배가 너무 나와 있고, 태생적으로 팔이 짧은 체형이어서 몸의 구조상 양말을 혼자 신고 벗기가 힘드시다. 그리고 팔순을 넘긴 나이다 보니 관절의 가동성이 떨어져서 팔다리나 허리 관절을 굽혔다 펴는 게 많이 버거우시다. 이 두 가지 이유로 인해 양말을 스스로 신으려는 의욕을 점점 잃으신 것도 맞지만, 실상은 엄마가 자꾸 신겨주다 보니 스스로 신어야 할 필요를 잊으신 것이기도 했다.


나는 아버지의 양말 신기 자립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했다. 쪼그려 앉아서 아버지의 양말을 신기는 엄마를 보는 것도 속상했지만, 양말을 스스로 신지 못하는 것에 익숙해져 버리는 아버지가 더 걱정됐다. 양말을 신어야 할 때마다 도와줄 누군가를 찾는다는 건 본인에게도 심리적으로 불안하고 불편한 일이다.


폭풍 검색 끝에 임산부나 환자 또는 노인이 양말을 혼자 신을 수 있도록 고안된 보조 도구를 하나 찾았다. 아주 간단한 도구였다. 반원 플라스틱 통에 양말을 끼우고 발을 집어넣은 다음, 양쪽의 줄을 잡아당기면 발이 양말 속으로 쏙 들어가게 돼 있었다. 즉시 구입해서 친정으로 배송시켰다.


아버지께 사용법을 알려드린 후에 한번 혼자 해보시게 했더니, 아버지는 아주 쉽게 단번에 해내셨다. 엄마와 나는 열화와 같은 박수를 치며 소리 높여 환호했다. 아버지도 매우 흡족해하며 한참을 크게 웃으셨다.


얼마 후, 가족 여행을 가서 보니 아버지는 자신의 짐에 양말 신는 도구를 잘 챙겨서 갖고 오셨다. 그리고 여행 내내 양말을 혼자 신는 모습을 보여 주며 온 가족을 웃게 만드셨다.

“이게 물건이야. 아주 간단하고 정말 좋아.”라며 자랑을 하셨다.


아버지는 나이 들면서 몸이 굳고 움직임이 둔해지셨어도, 가족과 함께 웃을 순간을 잡아채는 데는 그 누구보다 민첩하고 날래셨다.


아버지의 무한반복 과거 재생 목록 중에서...

아버지가 남보란 듯이 어려운 일을 해냈어도 누구 하나 크게 기뻐하며 자랑스럽다 추켜세워주지 않았던 시간을 이제 그만 흘려보내셨으면 좋겠다.

옛 어두운 기억을 흘려보낸 그 자리에, 아버지의 작은 기쁨에도 크게 환호하며 함께 즐거워하는 가족과의 유쾌한 추억을 심어 놓으셨으면 좋겠다.


'아버지, 가족이 함께 웃는 순간을 놓치지 않으시는 것처럼 앞으로 재생될 과거의 서사는 소중한 이들과 함께 한 새로운 기억들이었으면 좋겠습니다.'


Ai로 생성한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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