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에 붙잡힌 아버지를 현재로 구출해 오기
아버지는 봄, 여름, 가을, 겨울 - 딸이 어느 계절에 친정을 찾더라도 마당부터 반겨 맞을 요량으로 온갖 종류의 꽃들을 부지런히 심고 가꾸신다.
봄이면 수선화, 철쭉
여름엔 각양각색의 수국
가을엔 맨드라미
겨울이면 국화와 동백
대충 잘 아는 꽃들이 이렇고 여러 이름 모를 갖가지 꽃들을 딸의 눈이 닿을 만한 곳마다 심어 놓으신다.
그러곤 ‘여기 봐라. 이게 무슨 꽃이다. 저기 봐라. 저게 무슨 풀이다. 무슨 나무다.’라고 신이 나서 안내하신다. ‘요 녀석이 2년 만에 꽃을 피웠다. 이거 갈 때 가져가라. 저거 가져가서 키워봐라.’ 하시며 들려 보낼 만한 화분을 고르느라 눈이 분주하시다.
아버지는 어디 구경할 만한 곳이 생겼다는 소식을 들으시면 잘 기억해 두었다고 딸이 오면 꼭 보여주려고 하신다. 당신은 이미 보셨어도 딸이 보지 못한 곳은 다시 한번 딸과 함께 보러 가신다. 올 1월엔 제주 밭담 테마공원에 함께 다녀왔다. 거기 가기 전부터 딸에게 설명해 줄 내용을 정리해서 종이에 적어 놓고 계셨다.
이렇게 아버지의 눈이 현재에 머물러 있을 땐, 아버지는 마냥 좋으신 분이다.
그러나...
아버지의 의식이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면, 아버지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다.
자신을 존중하지 않았던 사람들에 대한 미움, 은혜에 보답하지 않는 이에 대한 분노, 자신의 기대에 미치지 못한 이들에 대한 실망, 여러 타인들을 향한 비난으로 점철된 부정적인 감정을 말로 쏟아내기 시작하면 멈추질 못하신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아버지의 의식은 현재에 머물러 있을 때보다 과거에 붙잡혀 있을 때가 더 많다.
아버지의 과거는 쏟아낼 만큼 충분히 꺼내 놓으면 줄어들거나 없어지는 게 아니었다. 밖으로 꺼내면 꺼낼수록 아버지의 과거는 점점 더 길어지는 시간이었다. 아버지에게 과거는 끝나지 않는 영원한 시간인 것 같다.
하루는 우리 삼 남매 - 나와 두 남동생이 아버지의 무한반복 과거 서사를 들으며 멀미를 느끼고 있었다. 이런 상황을 가장 힘들어하는 건 항상 막내 남동생이다. 나는 맏딸로서 이 분위기를 수습해얄 것 같았다. 그 당시 나는 요가의 물구나무 자세인 ‘시르샤사나’를 꾸준히 연습하고 있었다. 그래서 아버지의 말을 티 안 나게 끊기 위해 제안을 했다.
“아버지, 저 물구나무 얼마나 오래 서는지 보세요. 이거 완전 집중해야 하니까 조용해야 돼요.”
아버지는 “어, 그래? 알았어.” 하시며 순순히 하던 말을 멈추셨다.
나는 온 정신을 집중해서 물구나무를 섰다. 당연히 피가 머리로 쏠리기 시작했다. 10분이나 지났을까?
아버지는 막내아들의 말이 무슨 뜻인지 못 알아들으신 채, “와 진짜 잘 선다!”라며 감탄하셨다.
맏딸인 나는 두 남동생을 위해, 그리고 과거의 시간에 붙잡혀 있는 아버지를 현재로 구출해 오기 위해 피가 거꾸로 도는 물구나무 자세를 오래오래 버텨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