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3. 돌담과 철벽을 오가는 아버지의 울타리

아버지를 분노 정서에서 벗어나게 할 방법

by 단비

아버지는 자식들에게 더없이 좋은 울타리가 되어주신다. 아버지의 울타리는 바람이 숭숭 통하는 돌담 같을 때가 있고, 바늘 하나 꽂히지 않는 철벽 같을 때가 있다. 당연히 나는 돌담 같은 울타리일 때를 좋아한다.


하루는 아버지가 제주 밭담에 대해 손수 친필로 쓰신 긴 글을 보여 주시며, 제주 월정리에 조성된 밭담 테마공원에 가자고 하셨다. 제주 밭담은 세계중요농업유산으로 등재되어 있고, 그에 관련된 축제가 매년 11월에 이 테마공원에서 열린다.


제주에서 농사를 짓는 데 가장 큰 장애물은 돌과 바람이다. 땅을 파도 파도 계속 나오는 게 돌이고, 작물이 자랄 새 없이 마구 흔들어대고 열매를 맺는 족족 날려버리는 게 바람이다. 그런데 이 골칫덩어리 돌들을 제주의 선인들은 바람을 막는 복덩어리로 만들어 담을 쌓았다.


밭담은 언뜻 보기에 그냥 아무 돌이나 무심히 툭툭 얹어 놓은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매우 능숙하게 숙련된 사람만이 제대로 쌓을 수 있다고 한다. 밑돌을 놓는 방법이나 크기와 모양이 다른 돌들을 쓰임에 맞게 가장 적합한 자리에 배치하는 것은 아주 오랜 경험을 필요로 하는 작업이다.


밑에서 위를 떠받치는 역할, 위에서 아래로 하중을 주는 역할, 그리고 제각기 다른 서로를 단단하게 잇는 역할까지. 돌담은 인간 공동체가 연대하는 모양을 그대로 투영한다. 돌담의 가장 큰 묘미는 빈틈없이 메우는 게 아니라 여기저기 적당한 구멍을 내는 데 있다. 이 구멍들은 강한 바람을 분산시켜 저항을 줄여주고, 행여 돌담이 바람에 무너진다 해도 전체가 무너지지 않도록 해준다. 파손이 생겨도 일부분만 다시 쌓으면 되는 것이다.


제주 밭담처럼 아버지의 울타리 또한 여기저기 구멍이 참 많다. 아버지는 빈틈없이 철저한 성격과는 거리가 머시다. 원체 낙천적이고 배짱이 좋으셔서 그 모든 허점들을 있는 그대로 내보이며 인생 즐겁게 사신다. 제주 밭담이 거센 바람을 막아주면서도 나지막한 높이로 담 너머 세상을 내다볼 수 있듯이 아버지의 울타리 또한 나에게 그러했다.


그런데...

아버지의 울타리가 철벽(鐵壁)으로 변할 때가 있다. 아버지의 입에서 증오와 응징의 언어가 쏟아져 나올 때다. 주된 내용은 자주 보시는 언론 매체에 근거한 것들일 때가 많다. 강한 욕설과 독한 표현을 내뱉을수록 특정 상대에게 더 큰 가격이 가해진다고 생각하시는 건지, 그런 말들을 하면서 어떤 쾌감을 느끼시는 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분노 정서에 중독되어 있으면 자극적인 말로 자신을 각성시키고, 듣는 사람이 고통받을수록 자신이 힘 있는 존재처럼 느껴진다고 한다. 이런 행동은 설득으로 멈출 수가 없으며, ‘그만하라’는 말이 오히려 더 하도록 부추기는 연료가 된다고 한다. 실제로 아버지에게 그만하라고 말하면 더 수위를 높여서 더 오래 말씀하신다. 이 상황을 GPT에게 물었더니 ‘이해하려고 애쓰지 말고, 물리적으로 거리를 두세요.’라고 답한다.


아버지를 분노 정서에서 벗어나게 할 방법은 없는 걸까?


노화로 인해 신체적 기능이나 인지적인 능력이 쇠퇴하더라도 정서적으로는 편안하고 풍요로워야 한다. 그래야 자식들도 부모의 노화를 무겁고 부담스러운 책무가 아니라 즐겁고 행복한 동행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부모님의 노후에 가족 모두 건강하게 동행할 수 있도록 아버지가 분노 정서에서 벗어나셨으면 좋겠다.

'아버지, 소중한 이들과 동행할 노후의 길에 거친 바람을 막아줄 돌담을 쌓아가듯 아버지만의 미담과 덕담을 길게 길게 쌓아가시면 좋겠습니다.'


제주 밭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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