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니세프 직원의 지극히 개인적인 코로나 대응 이야기
말레이시아가 락다운이 되면서 본격적으로 코로나 19 대응을 시작한 지 6개월째. 이제는 몇몇 클러스터를 제외하고는 지역감염 사례가 한자리 정도로 잘 방어하고 있는 말레이시아. 유니세프 말레이시아 코로나 19 대응을 담당하며 보낸 지난 6개월을 정리하며 머리의 짐을 내려놓고자 이 글을 시작해본다.
1. 우리는 지금 어디쯤 온 걸까?
유니세프에서는 코로나 대응을 쉽게 표현해 Respond, Recover, and Reimagine이란 말로 표현한다. 코로나 19로 생긴 긴급한 인도적 지원 니즈에 대응(respond)하고, 과부하된 혹은 멈춰친 보건, 교육 등등 시스템을 복구 (recover)하고, 그다음 더 좋은 상태로 갈 수 있게 이번 기회에 정책과 서비스를 개선 하자는 것 (reimagine a better world for every child).
내가 있는 말레이시아는 락다운으로 긴급구호의 니즈가 피크였을 때를 지나서 이제는 대부분 영업/학교/서비스가 열렸고 일상과 비슷한 생활을 해나가기 때문에 긴급구호 단계는 지나간 것 같다. 반면 다른 지역은 여전히 대응 모드인 것을 보게 된다. 우리 모두 같은 터널을 지나고 있지만 다른 포인트에 서있다.
2. 우리 모두가 피해자라서.
코로나 19 대응의 가장 특이점은 피해 국가 혹은 지원국가가 따로 없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유니세프의 인도적 지원은 피해국 (전쟁, 기근, 자연재해 등)이 있고 그 피해국을 돕기 위해 전 세계적으로 펀딩을 모으고, 본부/지역사무소의 인력들도 피해 국가 사무소를 돕기 위해 빠르게 움직이는 게 일반적이다.
허나 이번 코로나 19는 내가 있는 말레이시아나 본부가 있는 미국이나 모두 피해자고, 모두가 락다운에서 일하고, 펀딩을 주는 일명 선진국들도 모두 피해국이라는 것이다. 누가 누구를 돕는다는 것이 어불성설이 된 상황. 오히려 미국의 상황이 말레이시아보다 더 안 좋으니 누가 누구를 돕는 건지 경계가 불분명해졌다. 인도적 지원의 일반적인 규범이 사라지는 순간이다. 모두가 자기 앞마당에 난 불을 끄느라 다른 곳을 돕는데 인색하고 타이밍도 늦었다는 생각이 든다.
3. 매도 먼저 맞는 게 좋다
어차피 맞을 매였다면 먼저 맞는 게 좋았던 걸지도 모른다. 중국에서 시작된 코로나 바이러스가 유니세프 기준에서는 중국을 시작으로 아태지역에 먼저 덮쳤고 본부가 코로나에 대해 이해하고 대응을 준비하기도 이전에 국가 사무소들은 자체적으로 대응을 준비해야 했다.
말레이시아도 예외는 아니었다. 본부의 가이드라인이나 리소스를 기다리기에는 당장 눈앞에 불이 급했고 우리는 부딪히며 배우며 대응을 시작했던 것 같다. 그래서 오히려 우리가 급한불을 끄고 나니 본부에서 써내려 보내는 지침이나 리소스들이 우리가 웬만하면 고려해봤고 해 본 내용들이 많았다.
제일 먼저 대응을 시작한 것도 아태지역이고 긴급구호의 피크 시즌을 넘어간 것도 아태지역이었다. 현재 아태 지역에서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 몇몇 국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안정세로 접어든 것을 보며 다른 지역들도 우리 지역의 커브를 잘 따라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4. 사람들을 만날 수 없다는 것.
긴급구호를 하는 기구 입장에서 코로나 19 대응은 락다운이라는 아주 유니크한 제한사항이 있었다. 즉, 사람들이 모일 수 없다는 것이다. 이것이 어떤 것을 의미하냐면 그들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이야기를 듣는데도 제한이 있고, 그것을 알아도 물자나 정보를 전달하는데 사람들을 만날 수 없다는 것이다.
내가 현지 NGO와 진행하던 프로젝트가 있다. 취약 계층 (난민, 저소득층 가정, 미등록 이주노동자 자녀 등)에게 위생 물품 (비누, 손세정제, 마스크 등등)과 위생 교육 (손 씻기, 마스크 제대로 쓰는 법)을 하는 것. 코로나가 터지자마자 xx정부가 준 펀딩으로 위생 물자를 대량으로 구매하고 모든 게 준비가 된 시점에서 락다운이 걸리면서 물자를 대량으로 전달해줘야 할 학교들도 닫고, 모임들도 금지되면서 대규모로 사람들을 만나서 물자와 교육을 할 기회들이 사라진 것이다.
동시에 긴급구호 상황에서 이루어지는 다양한 대면 커뮤니케이션의 장이 사라지면서 나같이 행동변화 커뮤니케이션하는 사람들에겐 기존의 대면 채널들은 모두 사라지고 온라인만 남게 되었다. 온라인으로 정보를 뿌리는 거야 언제나 하는 일이지만 온라인으로 듣고, 교류하고, 소통하는. 그것도 아주 잘해야 하는, 어찌 보면 미루어두었던 과제들을 처리해야 했다. 그런 상황 속에서 새로운 혁신들이 나왔고 이제는 온라인으로 청소년들과 교류하는 다양한 플랫폼과 콘텐츠를 개발하는데 집중하고 있다.
5. 몸이 아픈건만 아픈 게 아니다.
코로나 19는 많은 사람들을 직접 아프게 하기도 했지만, 모두의 정신건강(mental health and psychosocial wellbeing)에 더 큰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한다. 특히 학교가 닫히고 집이란 공간 안에서 몇 개월 동안 익숙지 않은 온라인 교육에 노출되었던. 심지어 그것에 접근하기 힘든 친구들까지도 불안한 미래와 싸워야 했다. 뿐만 아니라 락다운 기간 동안 가정폭력이 늘어났다는 수치는 단지 말레이시아 만의 문제는 아녔을 테다.
모두가 얼마나 많은 사람이 걸리고 죽는지 관심을 가질 때 우리는 더 많은 아이들과 청소년들이 겪고 있는 정신건강적 임팩트에 집중했다. 실제로 코로나 대응 초기에 우리 팀이 진행한 온라인 서베이에서 10-25세 친구들이 뽑은 가장 큰 문제는 그들의 정신건강이었다. 외롭고, 불안하고, 우울하고, 답답함이 그들에겐 바이러스만큼이나 큰 위협이었다.
그래서 우리 사무소의 대응의 중심에는 MHPSS (Mental Health and Psychosocial Support)가 있었다. 청소년들과 정신건강 전문가들, 인플루언서들과 지속적으로 온라인을 통해 정신건강에 관해서 이야기하고 팁을 나누는 시간을 가짐을 물론. 학교가 열리면 마음의 무게를 들고 학교로 돌아갈 아이들을 위해 학교 상담 선생님들을 온라인으로 트레이닝하기도 했다. 보건 서비스가 과부하되면서 서비스에서 조금 밀려난 장애아동들과 그 부모님들에게 온라인으로 어떻게 이 시기를 같이 건강하게 극복할 수 있는지 상담 세션도 열어졌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우리의 시스템과 사회가 얼마나 바이러스에 취약한지도 보여줬지만 인간이 얼마나 팬더믹이라는 집단적 공포에 정신심리적으로 취약한지도 여실히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이것을 보면 앞으로 우리는 앞으로 자라날 아이들 세대를 위해 어디에 투자를 해야 하는지 보이는 것 같기도 하다.
6. 목소리가 작은 게 아니다. 들리지 않을 뿐이다.
코로나 19가 만들어낸 집단적 공포는 의외의 곳에서 분출이 되기도 했다. 가정 내의 여성을 향한 폭력으로 나타나기도 했고, 열악한 거주환경에서 분투하는 이주 노동자들을 향하기도 했고, 같은 하늘에 살고 있는 난민에게 향하기도 했다. 단지 말레이시아만의 문제는 아닐 테다.
모두가 제한된 자원을 가지고 살아갈 때 위기가 오면 모두 자기 것을 지키고자 두 손을 움켜쥐는 것이 인간의 본성일지도 모르겠으나. 팬데믹은 우리의 공포가 사회적 약자에게 폭력이 될 수도 있다는 걸 보여주었다.
중진국 사무소에서는 대부분 정부의 정책을 서포트하고 정부 시스템을 통해 스케일이 큰 변화를 만드는 게 목적이지만, 이번 코로나 19 대응을 통해 그 어느 때보다 취약계층을 돌아보고 그들에게 조금 더 가까운 곳에서 서비스를 전달하는 기회가 있었다. 모두가 완벽해 보이는 말레이시아 같은 평온한 나라도 취약계층은 여전히 서비스와 거리가 멀고 많은 장애물들이 있다는 걸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나 스스로에게 묻는다. 난 들리지 않는 그들의 목소리를 충분히 대변하고 있는가. 내가 바꾼다고 믿는 변화가 그들에게도 미치는 변화인가. 무엇보다 나는 전략과 정책과 역량개발이라는 그럴듯한 단어 뒤에 숨어 틈 사이로 빠지고 있는 친구들의 삶을 놓치고 있는 건 아닐까 반성해본다.
7. 꼭 나여야 했을까?
내가 하고 싶어서 코로나 19 대응을 리드한 것은 아니었다. 코로나 전부터 나는 사무실 긴급구호 담당이었다. 아마 중진국 세팅이라 인도적 지원의 경험을 가진 직원들이 많지가 않아서 나에게 맡긴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사실 맡을 때만 해도 말레이시아 같이 안전한 국가에서 아마 몇 년에 한 번 올까 말까 하는 긴급구호 상황을 겪지 않을 수도 있겠다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코로나 19는 산불처럼 번지기 시작했고, 나는 얼떨결에 어마어마한 책임감을 지어야 하는 코로나 19 대응을 리드하는 중책을 맡게 되었다. 코로나 19 대응 계획을 세우고, 각 부서별로 하는 모든 일을 모니터링하면서, 도너 리포팅, 예산을 배정하고 승인까지 하는 사무소 안의 작은 사무소장을 맡은 기분이었다. 여기에는 나를 전적으로 믿고 전권을 준 내 보스 부소장이 있었기에 이것이 가능했다.
적어도 담당자인 나는 사무실 구석구석 코로나 19 관련되어서 누가 무엇을 하는지 모두 알고 있어야 했다. 누군가 물어보면 우리 사무소의 타깃이 얼마고 현재 얼마나 달성했고, 예산은 얼마나 펀딩 되었고, 얼마나 썼고, 도너 리포팅은 어떻게 진행되는지 모두 알고 있어야 했다. 뿐만 아니라 매주/매달 오는 상황보고는 물론 각 섹터별 지표들도 세우는데 도움을 주고 엄청 푸시를 해야 하는 일이었다.
유니세프 네팔 사무소에서 지진을 겪을 때 긴급구호를 총괄 코디하기 위해 무려 P5직급 분을 따로 모셔왔다. 우리 사무소장이 P5인걸 감안했을 때 P3인 내가 사무소를 대표해서 이걸 관리한다는 게 처음엔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지만, 정작 일이 많아지니 너무 나를 뽕뽑아먹는 건 아닌가 하는 원망 아닌 원망도 들기는 했다.
6개월이 지났고 긴급구호의 상황을 넘어서 이제는 build back better 모드로 넘어오니 이젠 숨을 조금 쉴 수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의식적으로 일을 줄이면서 휴가를 내고 다른데 내 정신을 쏟으려고 노력 중이다. 저 멀리 번아웃 사인이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에. 오늘도 휴가를 내서 이렇게 낮에 한가히 글을 쓰며 나름대로 힐링을 하는 중이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한다. 나에게 주어진 기회였고 나는 그걸 받아들였고, 이것으로 성장했다고. 네팔의 지진이 그랬듯이, 부딪혀서 해내면 굳은살로 남아서 언젠가 그 굳은살이 두툼하게 나를 지켜줄 것이라는 걸. 지금은 그렇게 믿고 싶다.
8.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이렇게 얘기하면 코로나 19 대응이 끝난 것 같지만 전반전이 끝났을 뿐이다. 앞에서 얘기했던 것처럼 이제는 reimagine 하는 시기다. 이번 사태를 통해 드러난 우리 사회의 교육 불평등, 사회 안전망의 부재, 취약 계층의 보호, 정신건강의 위기 등.
지난 수십 년 아이들을 학교로 보내고 학습의 질을 개선하려는 노력이 온라인 교육 앞에서 한계를 보았고, 자국민만 커버하던 보건서비스가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다는 것도 보았고, 아이들의 백신도 중요하지만 정신건강의 밑거름을 잘 뿌려주는 것도 중요하다는 것을 보았고, 무엇보다 우리에게 거리두기와 이동의 제한을 통해 약화될 공동체 가치와 연대의 노력들도 어떻게 극복할지 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봐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아직 우리 모두 할 일이 참 많지만, 적어도 우리가 큰 문제 앞에서 함께 일하는 기회가 되길 간절히 소망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