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개발은 자선이 아니다

유엔 직원이 필드에서 전하는 국제개발 이야기 (1)

by 김형준

국제개발은 자선이 아니다. 자선의 마음을 둔 과학이라고 하는 게 더 정답에 가까울 테다.


한때 자선에 가까운 개발이 있었다면, 지금은 과학에 가까운 국제개발업계의 규범을 따르지 않으면 업계에서 큰소리를 내지 못하는 게 사실이다.


프로그램 매니저가 감으로 프로그램을 설계하고 진행하던 시절이 있었을게다. 하나 이제는 적절한 리서치가 없이는, 데이터가 없이는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진행하지 못한다. 특히나 제대로 일하는 조직일수록 art에만 의존하기보다는 science와 같이 가는 art를 더 신뢰한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일하는 유니세프도 완벽하지는 않지만 상당 부분을 리서치에 리소스를 쓰고 있다. 나도 항상 내 포트폴리오에 research나 evaluation을 넣어서 내가 하는 일들을 평가하고 배우고 향상하려고 노력한다.


그중 하나를 소개하고자 한다. 물론 업계 사람이 아니면 뭔 소린가 할지도 모르겠지만, 최대한 쉽게 설명해보겠다


22692100519_7662717eb4_o-879x659.jpg 가나에선 흔한 하수구 그리고 그 주변에서 노는 아이들


가나는 경제적으로 다른 아프리카 국가들에 비해 발전했지만, 위생문제에서는 전 세계에서 가장 뒤처진 국가 중 하나다. 제대로 된 화장실을 가진 가구의 비율이 15%다 (참고로 전 세계 평균은 68%). 100가구 중 85가구는 화장실이 없거나, 공용 화장실을 쓴다거나, 화장실이 있어도 제대로 배설물이 배출되지 않는 화장실을 쓴다는 것이다. 또한 10개 학교 중 4개 학교는 제대로 된 화장실이 없다고 한다. 이들은 어디서 크고 작은 일들을 본다는 말인가. 이런 위생환경으로 가나가 잃는 사회경제적 비용이 매년 880억이라고 세계은행은 추산하고 있다.



그럼 사람들을 어떻게 노상방뇨를 멈추게 할 것인가? 물론 화장실을 지으면 된다. 허나 화장실을 국가에서 다 지어줄 수도 없는 노릇이고, 세계은행에서 막 지원금을 부어주면서 지으라고 해도 사람들이 나머지 돈을 내서 지으려 하지 않는다. 굳이 내 돈 써가면서 지어야 할 필요성을 못 느끼기 때문이다. 게다가 노상방뇨 (숲에 가서 뿌지직)하는 것이 나만 그런 것도 아니고 철수도 영희도 다 하는 거니까 해도 된다는 social norm (사회적 규범)이 자리 잡고 있다.



그래서 유니세프와 정부는 함께 앞으로 2년 정도 힘들게 노상방뇨에 관한 사회적 규범/인식을 바꾸기 위해서 캠페인을 기획하고 있다. 유니세프는 주로 캠페인 전략을 세우고, 다양한 채널을 발굴하고, 관련 영상물, 프린트물, 행사 기획 등등을 개발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난 그 캠페인을 맡아서 하고 있다. 쉽게 말해 사기업에서 프로덕트 론칭하기 위한 마케팅을 한다고 생각하면 된다.



가나에 216개 군이 있는데 50개 군을 선택해서 학교, 시장, 마을 등등 여기저기서 캠페인 행사와 교육을 진행하기로 되어있으며 100여 가지가 넘는 다양한 홍보물 (TV/radio 광고, 홍보 전단지, 애니메이션, 만화책 등)들을 개발하고 뿌리는데만 20억 정도를 투자해서 준비 중이다. 그뿐만 아니라 선생님들, 지방 공무원들, 미디어, 학교 대상 보건 수업, 지역 화장실 건설업자 등등 교육 또한 같이 병행이 될 예정이다.



그럼 과연 이렇게 많은 시간과 돈이 들어가는 캠페인이 의미가 있을까?

즉, 그렇게 하면 사람들이 노상방뇨를 멈추고 화장실을 짓고 깨끗하게 살까? 그런 질문에 봉착하게 된다. 이 펀딩을 주는 캐나다, 네덜란드 정부도 유니세프에게 그런 질문을 한다는 것이다. 투자 대비 효과를 보여달라고 한다. 그게 이 업계에서 요구되는 accountability (책임성)인 것이다.




그래서 난 어떻게 social norm이 바뀌었는지를 증명해야 하는 숙제를 가지게 되었고 지난 몇 달간 여기저기 수업도 들어가면서 준비를 했다. UPENN에 있는 Bicchieri라는 교수님이 있다. 그분이 social norm에 관해 유니세프와 연구를 많이 해서 개발한 틀이 있다. 그것에 따르면 사회적 규범(social norm)은 개개인이 하는 행동을 지배하는 룰인데 그게 주변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니까 나도 그냥 하는 것도 있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도 그렇게 해야 한다고 믿기 때문에 나도 어쩔 수 없이 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즉, 철수랑 영희가 다 하니까 나도 노상 방뇨하면 되지라는 기대와 철수 영희도 내가 노상방뇨를 할 거라고 믿고 있기 때문에 나도 그 기대에 부응한다는 것이다. 꼭 남들이 다 노상방뇨를 하니까 나도 할 필요는 없지만, 남들이 나에게 기대하는 바에 부응하고자 때로는 아닌 거를 알면서도 그냥 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그 과정에는 일명 social sanction과 incentive가 작용하게 된다. 즉, 사회 규범을 안 지켰을 때에 받는 벌과 상 같은 것이다. 벌이라면 노상방뇨를 하면 사람들이 보낼 놀림/수치심 등이고, 상 같은 것은 노상방뇨를 하지 않는다는 것에 대한 사회적 인식/격려/인정 등이다. 그런 것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서 사회적 규범을 만들고 개인의 행동을 규정한다는 것이다.



그럼 이렇게 복잡한 개념을 어떻게 측정하는가?

일단 캠페인 전과 후를 조사해서 그동안 얼마나 사람들의 인식이 변했는지 알아보는 거다. 그러기 위해서는 1년이 넘는 시간차를 두고 조사를 하게 된다. 사람들의 인식이 바뀌는데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는 캠페인 전과 후에 우리가 일하는 50개 군 사람들의 인식과 그 밖에 있는 사람들, 즉 캠페인에 노출이 적은 사람들의 인식을 비교하는 것이다. 캠페인 전에는 두 커뮤니티 대부분 사람들이 노상방뇨를 모두가 하고 있고, 커뮤니티가 나도 노상방뇨를 할 거라고 기대한다고 대답했는데, 캠페인 후에 우리가 일한 지역에서 더욱 많은 사람들이 “이제는 사람들이 노상방뇨하지 않고, 이제는 나도 하면 사람들 눈치가 보여서 안 한다.”라고 대답한다면 그건 우리 캠페인이 그 사람의 행동 변화와 그 커뮤니티의 사회규범을 바꾸는데 기여를 했다는 근거가 되는 것이다. 우리가 가지 않은 커뮤니티는 여전히 사회 규범이 많이 바뀌지 않았다면 말이다.



이것을 리서치에서는 Quasi-experimental design라고 하고 differences-in-difference를 이용해서 전과 후 그리고 실험군과 대조군을 비교한다는 것이다. 무슨 소리인지 모를 거다. 나도 뭐 잘 몰랐는데 이것저것 찾아가면서 이해하면서 하니까 이렇게 하는 게 맞다는 결론을 내렸다. (물론 이게 아니라고 다른 방법으로 하라고 조언해준다면 고맙게 받아들이겠지만 말이다.)



이 리서치는 1년 반 정도의 시간을 두고 진행되고 현재로는 2억 정도의 예산이 책정되어 있다. 20억짜리 캠페인에 10% 정도를 리서치에 투자해서 20억의 가치를 증명해내는 것이다. 물론 결과가 잘 안 나올지도 모른다. 그러나 결과가 왜 잘 안 나왔을까? 무엇이 문제였던 것일까? 를 분석하면서 다음에 하는 프로그램에 반영하는 게 이 평가의 목적이기도 하다. 그래도 유니세프는 리서치에 이렇게 투자하고 프로그램의 효과성을 증명하고 문서로 만들고 공유하고 이런 일들에 관대한 편이라서 새로운 스타일의 리서치 일지 몰라도 현실로 이루어지고 있는 중이다.



실제로 유니세프 내에서도 사회적 규범의 변화를 이런 식으로 측정하는 리서치는 없는 걸로 알고 있다. 노상방뇨가 안 좋다고 아는 것 (지식), 느끼는 것 (태도)에 관한 연구는 많지만, 실제 노상방뇨에 대한 행동을 측정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누군가 노상방뇨를 하는 것을 지켜봤다가 체크하는 것이 불가능하기도 하고 대부분 설문지에는 노상방뇨를 안 하는 깨끗한 사람처럼 대답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리서치는 그 행동을 물어봐서 거짓(일 가능성이 높은) 답을 얻는 것이 아니다.


남들이 응가 여전히 밖에 싸니? 너도 그렇게 쌀 거라고 다른 사람들도 생각할까? 밖에 응가 싸다가 마을 사람들이 보면 뭐라고 하니? 하지 말라고 하니? 예전에 비해 어떻게 달라졌어?

라고 물어보면서 조금 더 객관적이 답을 이끌어 낸다. 내 행동에 관한 질문이 아니라 사회적 규범이 어떻게 바뀌었냐고 묻는 것이다. 사회적 규범이 바뀌었다면 우리는 그 개인의 행동도 그것에 맞추어 변할 것이라는 높은 가능성(가정)을 믿기 때문이다.


ta.jpg 남들도 다 안 버리니 당신도 쓰레기를 버리지 말라는 공고문


내가 일하는 개발 커뮤니케이션 분야는 보건 분야 같은 곳과 달라서 다루는 주제도 추상적이고 결과보다는 과정을 중요시하는 것이 중론이다. 그래서 리서치를 하는 것이 쉽지 않고, 돈도 많이 들고, 시간도 많이 드는 편이다. 그러나 리서치로 증명하지 않으면 더 이상 살아남을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도 내가 하는 일이 정말 그들의 삶을 변화시키는가. 우리가 꿈꾸었던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는가 측정해야 할 의무감이 있다.



가끔 좋은 일 한다는 얘기를 듣곤 한다.

일면은 맞는 얘기다. 내가 만들어내고자 하는 변화는 분명 개인과 사회를 건강하게 만드는 것이다. 허나 그걸 만들어 내는 과정은 좋은 의도만으로는 부족하다. 어떻게 주어진 자원을 효율적으로 써서 프로그램 참여자에게 해가 되지 않을 것인가 (Do no harm)에 대한 과학적 접근과 고민이 없으면 자선과 다를 바가 없어진다. 그래서 나는 내가 하는 일을 art와 science의 그 중간 어디쯤이라고 믿고 싶다.


22687890_10155821235036528_3161924099312221117_n.jpg 가나에 있을 때 KBS팀이 오셔서 취재해주신 프로그램의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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