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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준 Dec 28. 2022

산만한 나에게도 꾸준함이?

시간이 지나고 보니 발견된 나의 꾸준함

"산만하나 교우관계는 원만함"


내 어렸을 적 성적표에 자주 적히던 나의 평가다. 무척 산만했고 수업시간에 집중을 못하던 그런 아이었다. 

이런 산만함은 어른이 되어서도 사라지지 않았고, 여전히 지금도 나의 삶은 산만한 부분이 많다. 이제는 이것도 나의 일부분으로 받아들이고 사는 공존의 관계라고나 할까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꾸준한 부분도 동시에 발견하게 된다. 할 때는 꾸준하게 하려고 노력을 한 것은 아니지만 마음에 끌려서 하다 보니 꾸준함이 되었고 산만한 삶 속에 꾸준히 지속되는 몇 가지 습관(?)들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런 습관들이 시간이 쌓이니 꾸준함이란 단어로 표현해야 하는 수준까지 이르렀다. 산만한 내가 이거 5개만큼은 그래도 꾸준하게 해 왔다고 말할 수 있는 것들. 


1. 테니스

애초에 나는 운동신경이 그렇게 좋은 사람은 아니었다. 친구들과 어울리기 위해 농구와 축구를 했고, 스노보드를 탔다. 스포츠 자체에서 성취감보다는 같이하는데 의의를 두던 그런 사람이었다. 그래서 한 종목을 아주 잘하거나 파고드는 그런 성격이 되지를 못했다. 허나 테니스는 해외를 나와서 꾸준히 한 유일한 스포츠다. 석사 때 학교 앞에 있던 테니스 장에서 코치 없이 막테니스로 시작해서 네팔에 가서 코치에게 2년 넘게 주말마다 배웠다. 실력은 늘지 않았지만 적어도 뭔가 한 가지를 판다는 느낌이 뿌듯했다. 이후에 가나에 가서도 테니스를 칠 수 있는 곳에 멤버십을 끊어서 일주일에 2번 정도는 테니스를 치러 다녔다. 실력은 여전히 그대로였지만 그냥 습관적(?)으로 갔다. 말레이시아에 와서도 내 돈 주고 코치를 섭외해서 1년을 더 배웠다. 말레이시아 코치는 내 폼이 이상하다며 80년대 폼이라며 다 바꾸기를 강요했고, 말레이시아 스타일로 바꾸다 보니 그나마 없던 테니스 실력은 더 늘지 않았다. 그래도 7-8년을 꾸준히 테니스를 쳤고 어깨가 아프기 시작할 때 코로나가 터져서 그다음에는 테니스를 칠 수가 없었다. 테니스가 무릎과 어깨에 무리를 줄 때쯤 골프로 갈아타서 미국 오기 전까지 골프를 집중적으로 쳤다. 여전히 뭐 하나 잘하는 스포츠는 없지만, 그래도 뭐라도 꾸준히 해온 게 테니스다. 


2. 팔 굽혀 펴기와 턱걸이 

어디서든 할 수 있지만 운동효과가 좋은 것 중 하나가 팔 굽혀 펴기다. 한국을 떠난 2010년부터 12년간 어디를 가든 팔 굽혀 펴기를 꾸준히 해왔다. 매일 하지는 못해도 모든 운동에 팔 굽혀 펴기가 메인을 이루고 지금도 뛰러는 갈 시간은 없어도 공부하다가도 바닥에 엎드려서 한 세트에 30개를 하고 다시 공부를 하곤 한다. 아프가니스탄 바닥을 거쳐 말레이시아까지 팔 굽혀 펴기는 언제나 나의 디폴트 운동이었다. 


턱걸이는 12년 전에 아프간에 있을 때 턱걸이 1개도 힘들어했는데 밤마다 나가서 남들 안 볼 때 하나둘씩 하기 시작했다. 자신감이 붙어서 철봉이 보이면 틈틈이 하기를 벌써 10년. 말레이시아에서는 급기야 집에 문에 턱걸이 거는 걸 사서 코로나 시기 턱걸이 영상을 찍어서 우리 남자 그룹 (정석, 열호, 기훈)에 올리고 서로 점검을 해주곤 했었다. 지금은 그래도 10개씩 3세트는 할 수 있을 정도로 유지를 하는 중이다. 미국에 돌아와서도 한창 (날씨 좋은 여름) 애들 놀이터 데리고 나갈 때 철봉에서 놀면 뭐 하니 하며 턱걸이를 3-5세트씩 했었다. 지난 10년 꾸준하게 해 왔지만 매일 하지를 못해서일까? 유튜브에 도는 몸짱 변화 영상처럼 그런 급격한 변화는 없다. 그런 변화를 기대하지도 않고 살기 위해 하는 생존운동정도. 


3. 블로그 

ordinarybutspecial.com이라는 블로그 주소를 사서 12년째 운영 중이다. 한국서 대기업 다닐 때 무료하던 일상을 바꾸어보고자 시작한 네이버 베이스의 블로그가 벌써 12년째가 되었다. 한국-미국-네팔-가나-말레이시아-미국까지 내 삶의 변화들을 고스란히 기록한 오래된 블로그. 전략적으로 관리하지 못하고 손이 갈 때마다 기록해놓은 글들이 150개가 넘고, 방문자도 십만 명이 훌쩍 넘는 곳이 되었다. 아주 인기 있는 그런 곳은 아니지만 국제개발이나 유학 관련 검색어로 들어오셔서 보시는 분들이 주를 이루는 것 같다. 중간에는 브런치도 열고 뭔가 글을 주제에 맞게 모아보려고 했으나 능력부족인지 남들처럼 출판은 하기 힘든 산만한 블로그를 운영 중이다. 산만한 주제지만 10년을 넘게 내돈내산 주소를 가지고 운영한 거니 그래도 꾸준하다는 범주에 들어가지 않나 싶다. 


그 꾸준함 덕분에 블로그를 통해 많은 분들이 질문을 했고, 응답을 하면서 좋은 인연들도 많이 만날 수 있었다. 무엇보다 블로그를 통해 도움을 받았다는 글들도 보면서 나에게는 내려놓을 수 없는 평생 가는 그런 글쓰기 공간이다. 


4. 나를 도와준 분들에게 근황 업데이트 

유학을 위해 커리어 과정 중에 나를 조언으로 추천서로 도와주신 멘토님들이 계시다. 그분들에게 지난 10년간 삶의 변화들 (퇴사, 취직, 출산, 이직, 유학)이 있거나 생각이 날 때 잊지 않고 이메일을 드린다. 해외에 살기에 만나 뵙고 인사드릴 일은 많이 없지만, 항상 감사의 마음을 담아 제가 이렇게 잘 지내고 있고, 이런 커리어를 밟아가고 있다고, 도너 리포트같이 메일을 드려왔다. 회사 그만두고 아프가니스탄에 갈 때부터 지금까지 항상 든든한 지지를 해주신 선배님, 아프간에 있을 때 플래쳐 추천서를 써주셨던 대표님, 친형같이 조언해주던 부대표님. 유니세프에 들어와서도 나에게 처음 잡을 주었던 네팔 사무소 대표님부터 팀장님들. 그 이후에도 부탁하기 어려운 추천서를 써주시고, 기회를 주시며 앞의 문을 잡아주던 분들의 호의를 갚는 나의 방법이다. 그분들에게 답장을 받지 못할 때도 있지만 때가 되면 근황을 업데이트해드리고 그때 감사했다고 꼭 말을 전한다. 지난 10년간 그런 습관을 길들이니 이제는 더 많은 분들에게 감사함을 표현하게 되었다. 얼마 전에 하버드에서 하워드 교수님이 도움받은 분들께 꼭 주기적으로 감사를 표하라는 말을 듣고 속으로 "저 진짜 꾸준히 해왔습니다. 이메일 기록 다 남아있어요!"라고 말할뻔했다. 


5. 영어 말하기 

영어로 말을 잘하고 싶었고, 이건 대학교 때부터 거의 20년을 꾸준히 노력을 경주해온 부분이다. 대학교 때 영어 연설 수업을 듣고 오바마 스피치를, 스티브 잡스 스피치를 외워가며 흉내를 냈었다. 한국서 대기업을 다닐 때도 막간 점심시간에 전화영어를 꾸준히 했었다. 그게 왜 필요한지는 몰랐지만 영어로 생각을 표현 전달하는 게 좋았다. 플래쳐를 졸업할 때는 급기야 졸업 연설을 하게 되는 영광까지 누렸으니. 영어 말하기는 그냥 내 삶의 일부였다. 유엔에 와서는 매일이 영어로 말하고 쓰는 시간이었지만, 항상 정제된 영어 말하기에 대한 갈급함이 있었다. 무엇보다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곳에서 영어로 일하다 보니 "좋은 영어"를 듣는 것이 제한이 있었고, 내 돈 내고 지난해에는 링글이란 서비스를 통해 미국에서 공부하는 원어민친구들과 주제를 잡고 진지하게 토론하는 연습들을 해왔다. 박사에 오니 돈 주고 하던 그런 영어연습을 매일하고 있으니 지난 시간들에 내가 영어 말하기에 쏟아왔던 시간들과 노력들이 다 이 날을 위해서가 아니었나 싶다. 아직 갈길이 멀지만 정말 긴 여정을 걸어온 건 사실이다. 대학 1학년때 토익 700을 못 넘겨서 카츄사를 못 갔는데 지금은 영어로 박사과정을 하고 있으니. 꾸준함이 쌓이면 이렇게 무서운 게다. 그리고 영어 공부를 왜 하는지 모른 채 해왔던 그 수많은 시간들에게 문득 고마움을 느낀다. 


어렸을 때는 산만하다고 항상 얘기를 들어서 나는 산만하다고만 생각했다. 산만하다는 것이 나쁜 거라고 생각했던 날들이 있었다. 그래서 꾸준함이 좋은 것처럼 느껴졌다. 나에게는 가지지 못하는 그런 것 말이다. 그런데 산만한 인생 속에도 찾아보니 꾸준함이 분명히 숨어있었다. 알고 보니 나에게도 꾸준함을 이끌어갈 근육들이 있었고, 그런 꾸준함이 모이니 습관이 되고 내 삶의 일부분이 되었다. 이 꾸준함이 손흥민의 꾸준함. 김연아의 꾸준함. 책에서 말하는 10000시간의 꾸준함을 아니더라도. 나같이 산만하다고 평가받던 사람도 꾸준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준 시간들이었다. 그 자신감으로 오늘을 살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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