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하지 않는 것들 그리고 변하는 것들.
13년 전 나는 아프가니스탄에서 근무하고 있었고. 컨테이너로 지어진 내방에는 이런 물건들이 있었다.
13년이 지나도 여전히 내 공간에 살아있는 물건들
1) 뉴트로지나 로션: 20년을 넘게 한 브랜드만 고집해서 얼굴부터 바디로션까지 커버하는 최애품. 피부의 비결을 물을 때 항상 이야기하는 만능 로션. 한국 생산품만 발라서 한국서 여전히 사 오는 피부템.
2) 성경 책: 이제는 핸드폰으로 지티 책으로 보지만 그때도 성경을 붙잡고 잘 살아보려고 노력했구나 싶어서 문득 대견함.
3) 컴퓨터 거치대 + 키보드 + 마우스: 앉은키가 큰 나에게 거치대와 키보드는 적당한 거리감과 높이를 맞추기 위해 필요한 필수템. 지금도 여전히 쓰지만 이제는 맥북과 블루투스 키보드로 바뀌었다는 점은 다른 점. 마우스도 이제는 손목 보호를 위해 옆으로 세워서 쓰는 인체공학적 블루투스 흰색 로지텍 마우스를 쓴다는.
4) 오레오: 난 군것질은 정말 안 하는 편인데 과자 중에 좋아하는 3개를 고르라면 홈런볼, 오레오, 그리고 초코송이다. 미국에 오니 오레오를 자주 접하게 되고 여전히 애들 먹을 때 뺏어 먹는 과자 중 하나다. 취향은 무섭다.
5) 비타민: 아프가니스탄 가면서 살기 위해 그렇게 챙겨 먹던 비타민은 습관이 되어서 지금도 매일 챙겨 먹는 건강 효과는 입증되지는 않았지만 심리적인 효과는 있는 비타민.
이제는 사라진 물건들
1) 디카: 디지털카메라. 그때는 저걸 들고 다니며 미팅 사진도 찍고 칩을 꺼내서 컴퓨터에 다운로드해서 저장하고 그랬던 시절이 있다.
2) 노키아 폰: 스마트폰이 대중화되기 되기 전. 아프가니스탄에서 쓰고 버릴 폰으로 노키아 폰이 딱이었고, 뭐 딱히 전화 말고는 할 것이 없기에 쓰던 전화기. 다시 보니 정겨운 노키아 폰.
3) 생수병: 아프간에서 물은 저렇게 생수로 먹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주 환경에 좋지 않지만, 그냥 저것밖에 없었고, 주는 대로 먹다 보니 항상 저렇게 방에 물이 쌓여있었다. 물을 아주 많이 마시는 나에게 쌓이는 물병은 항상 많았고.
4) 두루마리 휴지: 군대 생활의 잔재인가. 군인들과 같이 살아서 그랬던 건가. 두루마리 휴지가 그렇게 편할 수 없었다. 난 항상 입에 뭐를 묻히고 먹고, 콧물도 자주 흘려서 항상 휴지가 필요한 사람이라. 아프간에서 각 휴지를 쓰는 것도 말이 안 되지만. 결혼하고 나서 두루마리 휴지를 화장실 이외에 쓰는 것을 와이프가 좋아하지 않아서 끊었다. 난 여전히 식탁에 있는 각 휴지를 보면 괜스레 두루마리 휴지가 그립다. 각 휴지는 뭔가 너무 낭비되는 느낌이다.
13년 전 아프가니스탄에서 토플과 GRE를 공부했고, 유학을 꿈꾸었었다. 대기업 그만두고 와보니 현실은 녹록지 않았고, 계약 기간이 끝나가는데, 마치고 할 것이 보이지 않았었다. 괜히 그만두고 왔나. 애초에 계획했던 유학을 못 가게 되면 난 한국에 가서 뭐를 해야 하는 건가 고민하던 시절이었다.
다 떨어지고 플래쳐에 붙었을 때 생각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드디어 기회를 주시는구나. 매번 원하는 건 떨어지는 게 익숙했던 나에게 제대로 된 합격이었다. 그 합격의 감동이 아직도 생생하다. 13년 전의 그 공간이. 그 적막함이. 긴장감이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