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알아차리기 연습

내 마음을 내가 몰라주면 누가 알까요?

by 유선

친한 친구들이 있는 단톡방에서 친구 A가 물었다. “얘들아 나 어떤 머리가 잘 어울려?” 헤어스타일을 바꾸는 데 참고하겠다고 했다. 나와 친구들은 저마다의 답을 했다. “좀 길러서 웨이브 했을 때가 젤 좋아” “아 A는 무조건 단발이지” 신기하게도 우리들은 제각기 다른 의견을 냈다. 이날 대화는 ‘왜 서른 살이 넘도록 잘 어울리는 헤어스타일을 찾지 못 했나?’ 라는 의문으로 끝이 났다. 사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제까지의 나는 어떤 스타일이 어울리는지 잘 모르겠다는 이유로 그저 머리를 길렀다가 잘랐다가만 반복할 뿐이었다.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나는 갑자기 히피펌에 꽂혔다. 이제까지의 나는 눈에 띄는 색으로 염색을 해본 적도 없었고, 빠글한 파마도 해본 적 없었다. 그저 단정하고 평범한 스타일만 고수하며 살았다. 이런 머리에 질려서일까, 아니면 생활이 무료하고 단조로워서였을까. 열심히 기른 긴 머리에 히피펌을 하면 자유로운 느낌의 개성을 드러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마음은 펌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계속 하면서도, 어딘가 망설여졌다. 나는 바로 미용실을 가지 못하고 계속 사진을 찾아보기만 했다.

그깟 머리가 뭐라고, 안 해본 걸 하려니 머리 바꾸는 것도 계속 고민됐다. 나름 큰돈을 들여서 하는데, 안 어울리면 어떡하지. 파마해서 사자처럼 되거나 폭탄 맞은 것처럼 머리만 커 보이면 어쩌지. 머리는 안 어울리고 머릿결만 상하면 최악인데.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고, 펌을 하지 말아야하는 이유는 수두룩했다.



며칠을 고민하다가 남편에게 물었다. “나 히피펌 하고 싶은데 어울릴까? 근데... ” 하고 싶다는 한 가지 마음과 하지 말아야 할 여러 이유를 나열했다. 나의 긴 이야기 끝에 남편의 대답은 단순했다.

“하고 싶으면 해.”

나는 며칠을 고민해서 말한 건데, 그냥 하고 싶으면 하라니. 처음엔 너무 성의 없는 조언처럼 느껴졌다. “아니, 나도 하고는 싶다니까?” 라고 다시 말을 꺼내다가 갑자기 머리를 한 대 맞은 듯했다. 하고 싶으면 하면 되잖아. 뭘 고민하는 거지?


그 길로 나는 미용실로 달려갔다. 하고 싶은 스타일의 사진을 보여주고, 세 시간동안 머리를 말았다. 그동안의 고민이 무색하게 왠지 모를 해방감도 느껴졌다. 처음 거울 속 빠글한 파마머리를 한 내 모습을 보고서는 ‘어? 망했나?’ 싶었지만 그 기분도 잠시였다. 하고 싶은 걸 하고나니 그냥 기분이 좋았다. 물론 머릿결은 조금 상했고, 주변 사람들은 낯선 머리에 어색해했지만 그건 별일이 아니었다. 머리는 내 마음에 들었고, 다른 이유들은 그저 핑계였구나 싶었다.


얼마 후 나는 우연히 에세이쓰기 수업을 발견했다. 글쓰기 수업을 듣고 싶었지만, 또 여러 제약조건들이 있었다. 남편에게 이야기했다. “신촌에서 토요일마다 글쓰기 수업이 있대. 근데 나 초보인데 혼자 서울 왔다 갔다 운전하기 무서워. 이거 들으면 우리 다음 토요일에 놀러가기로 한 것도 못 가고. 수업에서 글 쓰는 게 숙제라는데 어려울 것도 같고.....” 나의 긴 이야기 끝에 돌아온 대답은 이랬다. “그래서 하고 싶어? 하고 싶으면 해.”


생각해보니 나는 내 마음을 들여다보고 나의 욕구를 알아차리는 걸 어려워하고 있었다. 그것보단 하지 말아야 할 다른 이유들을 떠올리는 것에 익숙했나보다.

몇 년 전 미국 여행에서 쓸데없다는 이유로 사지 않은 장식품도, 얼마전 비싸다는 이유로 등록하지 못한 운동도, 나중에 내 집 생기면 해야지 라는 이유로 미루기만 했던 집 꾸미기도.


지나고 나니 “하고 싶을 때 그냥 할 걸.” 이라는 후회만 남길 뿐이었다. 히피펌을 하고 기분이 좋았던 것은 내가 내 마음을 가장 우선시했기 때문이었다. 어릴 적 “여러분, 하고 싶은 거 하thㅔ요!!” 라는 유행어를 외치는 연예인을 동경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부터 마음속으로는 내가 나의 욕망을 알아차리길 바랐나보다. 2023년 여름의 히피펌도, 글쓰기 수업도 나에겐 마음 알아차리기 연습이었다.



그 이후 몇 번의 연습은 계속되었고 나는 점점 단련되고 있다. 신기하게도 무언가를 할지 말지 고민을 할 때면 귀에서 자연스럽게 대답이 들린다. “그래서 하고 싶어? 하고 싶으면,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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