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이야기

오늘 이것도 쓰는 거야?

by 리세

가끔 남편이 재택근무를 하는 날에는 둘이 점심을 먹으러 간다.

사무실이 집과 꽤 가까워서 가능한 일이다.


평일 저녁은 대부분 집에서 먹고, 주말은 늘 아이와 함께 보내는 우리는 외식도 아이가 먹을 수 있는 메뉴 위주로 고르기 때문에, 남편의 재택근무날은 모처럼 단둘이 맛있는 걸 먹으러 갈 수 있는 기회이다.


그런데 늘 셋이 있는 게 익숙해서 그런지, 둘만 있으면 알콩달콩하거나 꽁냥꽁냥한 분위기가 나는 것이 아니라 되려 괜스레 어색할 때도 많다.

메뉴를 두고 싸한 분위기가 되거나(늘 자기 먹고 싶은 것만 얘기하는 얄미운 사람이다), 점심시간에도 밀려오는 업무 연락에 서로 핸드폰만 보는 것도 다반사다.


오늘도 모처럼 남편이 재택근무를 한다기에 같이 점심을 먹으러 나갔는데, 딱히 할 얘기가 없길래 “나 글쓰기를 시작했어.”라고 툭 뱉었다.


당연히 돌아오는 말은 “무슨 글쓰기?”

이러저러해서 글을 써보기로 했다고 하니

“그럼 우리 이거 먹은 것도 쓰는 거야? “라고 한다.


아니, 오늘 뭘 먹었다, 뭘 했다, 일기 쓰는 게 아니고.

그냥 내 생각을 적는 거야.


아이를 낳고 첫 돌까지 매일 빠짐없이 일기를 쓴 적이 있다.

어플을 이용해서 비공개로 아이 사진을 올리고, 그날 있었던 아이와의 경험에 대해 썼었는데, 나중에 아이가 크면 귀중한 선물이 되지 않을까 싶어 시작한 것이었다.


모 아이돌 가수의 어머니가 하루도 빠짐없이 아이가 성인이 될 때까지 일기를 쓰셨다던가.

아이 낳고 단 1년 동안임에도 불구하고 어쩔 땐 매일 일기를 쓰는 게 괴로운 숙제였던 기억을 떠올리면, 그 어머님이 정말 존경스러울 따름이다.


아무튼 그렇게 딱 1년을 쓰고, 이제부턴 매일이 아니라 특별한 날,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은 날 이따금씩 일기를 쓰겠노라 했다.

물론 모두가 짐작하겠지만 그 이후로 단 하루도 쓴 적이 없다.

‘그냥 멈추지 말고 계속 쓸 걸’, 아쉬웠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때 일기가 오직 아이에 관한 일만 썼다면, 이제 내가 쓰는 글은 나와 나를 둘러싼 세상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 또한 숙제처럼 여겨지는 순간 동력을 잃겠지만,

글을 쓰는 순간만큼은 적어도 나에겐 나 자신을 온전히 들여다보는 소중한 시간이 될 것이다.

일상의 찰나도 글의 소재가 될 수 있으니, 어쩌면 매 순간이 특별히 다가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설렌다.


그러고 보니 남편 말대로 오늘 점심 먹은걸 이야기로 쓰긴 했네. 고마워, 남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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