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는 별 인연이 없던 세상을 본다
사랑은 언제 시작될까.
이제껏 나와는 별 인연이 없던 세상의 누군가를 마음으로 인식한 순간이 아닐까?
첫눈에 사로잡히든 쭉 알던 사람의 새로운 면을 발견하든 그동안 나와는 별로 인연이 없다고 여기던 사람에게 문득 눈길이 갈 때, 그리고 어쩐지 눈을 뗄 수 없을 때 마음속에는 사랑이 싹튼다. 과연 그 싹이 울창하게 자라날지 아니면 그대로 시들어 사라질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누군가는 영혼의 부딪힘이라고까지 부르는 그 순간이 없다면 아마 사랑은 시작되지 않을 것이다.
사랑의 시작을 노래하는 음악은 몇 곡이나 될까.
당연히 헤아릴 수 없이 많겠지만 그중에서도 이제까지 모르던 존재와 정면으로 마주치는 순간을 포착한 노래라면 내게는 두 곡의 노래가 앞다퉈 떠오른다. 두 곡 모두 계피와 정바비가 함께하는 가을방학의 노래인데, 청아한 목소리로 풀어놓는 이야기를 따라가노라면 내가 노래 속 주인공이 아님에도 공감이 가고 그 장면이 머릿속에 선명하게 그려진다.
그리고 때로는 어떤 사랑의 시작이, 내 속에 묻혀 있던 과거의 조각이 아련히 떠오르기도 한다. 그때는 몰랐는데 돌아보니 비로소 눈에 보이는 멈춤, 머무름, 머뭇거림…
추운 겨울밤, 오랜만에 두 곡의 노래를 연달아 들으며 서툴고 어색했던 순간들로 마음 안팎을 모두 데운다.
https://youtu.be/QPNvkkmtE4M?t=1s
https://www.youtube.com/watch?v=y2g37GZOwUw
어느 3월의 주말에
친구로부터 한 여자를 소개받기로 한다
이름은 낯설지만
이따금씩 작은 영화에 나온다는 그녀
궁금증을 못 참고서
그녀를 담은 작품을 몇 편인가 찾아낸다
늦은 밤 턱을 괴고
나와는 별 인연이 없던 세상을 본다
아, 모르는 사람을 본다는 것이
이리 가슴 뛰는 일이었는지
난 내 무릎을 안은 채 웅크린다
마치 영화관에 처음 갔을 때처럼
귀 기울여 듣게 된다
눈여겨보게 된다
너무 빨리 지나간다
그러다 툭 멈춘다
아, 모르는 사람을 본다는 것이
이리 가슴 뛰는 일이었는지
난 내 손톱을 뜯으며 시계를 본다
마치 오디션장에 가는 것처럼
어느 3월의 주말에
그녀는 내게 정말 말씀 많이 들었다면서
묘한 웃음을 짓고
갑자기 내 얼굴에 눈부신 조명이 비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