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날의 결혼식 축가
저에게는 4명의 절친이 있습니다. 고등학교 1학년 같은 반 친구들인데, 20년 가까운 시간이 지나고 지금은 그때처럼 자주 보진 못하지만, 언제 만나도 바로 어제 만난 것처럼 어색함이 없는 사이인 친구들이죠. 이 다섯 명의 남자 중에 유일하게 한명만 결혼을 했습니다. 그리고 이 노래는 이 친구의 결혼식에서 우리가 불렀던 노래입니다.
안타깝게도 한 친구는 결혼식에 오지 못해서 남은 세명이 축가를 준비했습니다. 한 친구의 강한 주장으로 선택한 곡은 이적의 '다행이다'였는데, 친한 친구, 게다가 가장 먼저 결혼하는 친구의 결혼식이라는 상징성에 욕심을 부린 우리는 그냥 부르기도 쉽지 않은 이 노래에 화음을 넣자는 의견을 내고야 맙니다.
결국 이 감성적인 노래를 3도 화음으로 편곡하고, 원곡보다 키를 낮추는 (고음불가라 죄송합니다.) 만행을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첫 연습날, 생각보다 나쁘지 않은 곡의 완성도에 우리는 (어이없으면서도) 만족했고, 실제로 예비 신랑도 듣더니 잘한다고 흐뭇한 웃음을 지었더랬죠. 그렇게 우리는 연습 대신 자만심을 쌓아갔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D-day, 결혼식 당일.
독실한 천주교인 친구의 결혼식은 성당에서 진행되었습니다. 엄숙한 분위기에서 미사와 함께 식이 진행되었고, 시간이 흐르고 기다리던 축가 순서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막상 앞으로 나가 보니, 시설상의 문제로 우리 세명에게 하나의 마이크만 주어졌고, 결국 스탠드에 마이크를 올린 채 노래를 시작했습니다.
"그대를 만나고 그대의 머릿결을 만질 수가 있어서......"
조용한 성당 안에 세 남자의 목소리가 퍼졌습니다. 솔로 파트로 시작된 노래는 조금 뒤 저음부와 고음부의 화성이 섞이고, 다시 하나의 멜로디로 합쳐졌습니다. 우리는 결혼하는 친구를 위해 마음을 가득 담아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래서인지 1절이 끝났을 뿐인데 많은 박수가 터져나왔습니다. 분위기가 아주 좋았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2절이 시작될 때가 되었는데도 박수가 멈추지 않은 것입니다. 그때서야 상황 파악이 되었습니다. 부족한 마이크 개수와 그보다 더 부족한 세 남자의 성량이 서로 시너지 효과를 일으켜, ① 실제로 노래를 들은 사람은 앞의 몇 줄 뿐이라는 것. ② 중간에 앉으신 어떤 분이 (1절이 끝났을 뿐인데) 노래가 끝난 줄 알고 박수를 쳤다는 것. ③ 그 뒤쪽에 계신 분들도 덩달아 박수를 쳤다는 것. ④ 결국 모든 하객들이 노래가 끝났다고 생각한다는 것을.
그래서 어떻게 됐을까요? 당황한 우리는 "아직 끝난 거 아니에요." 하고 꿋꿋이 2절까지 불렀습니다. 속으로는 엄청 당황했지만요. 그렇게 결혼식 축가가 끝나고 몇 가지 교훈을 얻었습니다.
1. 만약 다음에 축가 부를 일이 있으면 반드시 (자체 자신감 상승용) 선글라스를 써야겠다.
2. 이 친구들에게 내 축가는 맡기지 말아야겠다.
노래 듣기 : 다행이다 - 이적, 나무로 만든 노래, 2007
그대를 만나고
그대의 머릿결을 만질 수가 있어서
그대를 만나고
그대와 마주 보며 숨을 쉴 수 있어서
그대를 안고서
힘이 들면 눈물 흘릴 수가 있어서 다행이다
그대라는 아름다운 세상이 여기 있어줘서
거친 바람 속에도 젖은 지붕 밑에도
홀로 내팽개쳐져 있지 않다는 게
지친 하루살이와 고된 살아남기가
행여 무의미한 일이 아니라는 게
언제나 나의 곁을 지켜주던
그대라는 놀라운 사람 때문이라는 걸
그대를 만나고
그대와 나눠먹을 밥을 지을 수 있어서
그대를 만나고
그대의 저린 손을 잡아 줄 수 있어서
그대를 안고서
되지 않는 위로라도 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그대라는 아름다운 세상이 여기 있어줘서
거친 바람 속에도 젖은 지붕 밑에도
홀로 내팽개쳐져 있지 않다는 게
지친 하루살이와 고된 살아남기가
행여 무의미한 일이 아니라는 게
언제나 나의 곁을 지켜주던
그대라는 놀라운 사람 때문이라는 걸
그대를 만나고
그대의 머릿결을 만질 수가 있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