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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행간 새김

우리, 우주 #3

나……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지

by 해란

개를 키우신다니, 애견용품에도 관심이 많으시겠습니다.


네, 그럼요. 무척 많습니다.


개 이름이 뭡니까?


구립니다.


뭐라고요?


개 이름이요. 구리, 구리가 이름입니다.


이상하군요.


네?


다른 이름도 아니고 하필 구리라니.


음, 아무래도 조금 특이하기는 하지요.


아니지, 조금 특이한 게 아니라 이상하지 구리는. 구리니까. 구리잖습니까.


그럼 우리는 우리니까 우리랍니까.


순간 면접관이 미간을 찌푸린다. 아차, 눈앞이 캄캄하다.


이보세요, 봉우리 씨. 말장난합니까?


면접장에서 자기 이름 가지고 장난치는 사람이 어디 있답니까, 차마 말하지 못하고 눌러 삼킨다.


유머 감각이 지나치시군요. 과유불급, 과유불급 모르십니까. 저희 회사 슬로건인데. 저희 회사가 왜 천지사인지는 아십니까.


이때껏 조용하던 옆자리 사람이 갑자기 손을 번쩍 들었다.


동물은 세상천지 어디에나 있기 때문입니다. 동물을 키우는 사람도 그렇고요. 애완용품 시장을 선도하는 천지사는 그들이 있는 곳 어디에나 존재하는 굴지의 기업입니다.


좋습니다. 정확히 알고 계시는군요. 봉우리 씨는 알고 계셨습니까?


압니다만, 저는 그것이야말로 이상한 이름이라고 생각합니다, 입 밖으로 내뱉지 않고 꿀꺽 삼킨다. 할 수 없어 삼킨 말들이 울컥울컥 식도를 넘어간다. 거북하다. 거북하기 짝이 없다. 면접관은 나를 물끄러미 보는가 싶더니 휙 시선을 돌려 옆 사람에게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부모님은 무슨 일을 하십니까.


아버지는 안 계시고 어머니께서는 현재 가정주부십니다.


장녀? 다른 형제자매는 없고?


예. 외동입니다.


슬쩍 곁눈질해서 내 오른편에 앉은 여자의 옆얼굴을 본다. 감정을 짐작하기 어렵도록 단정한 옆얼굴이 눈에 들어온다. 여자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그런 것쯤 이력서에 다 적혀 있을 텐데요, 라고 이 사람도 생각하고 있을까.


편모에 외동이라. 나이도 있는데 결혼은 언제 할 예정입니까.


현재로서는 결혼 계획이 없습니다.


애인도 없고?


…예. 바쁘게만 살다 보니 곁에 사람 둘 시간이 안 나네요.


그만하면 몸매 괜찮고 외모도 반반한데 왜?


과찬이세요. 감사합니다.


후후, 여자가 웃는다. 그러나 감사합니다, 말하고 웃기 직전에 잠깐 침묵이 있었다. 그것이 침묵인지 아닌지조차 알아차리기 힘들 만큼 짧은 침묵이었으나 여자는 분명 침묵을 두고서 후후 웃었다. 몰래 완고한 웃음. 어쩐지 기운이 빠진다. 여자 옆에 앉아 하릴없이 눈만 끔벅이는 나와 다르게 면접관은 무슨 확신이라도 얻은 사람처럼 목소리에 힘이 바짝 들어갔다. 그리고 질문 사이사이에 시답잖은 농지거리를 끼워 넣으며 웃음을 강요한다. 연애니 결혼이니 출산이니 하는 영문 모를 이야기가 탁구공 튀기듯 핑, 퐁 여자와 면접관 사이를 오간다.


그렇다니까 글쎄. 이런 시국에 애를 안 낳는 건 이기주의지요. 동물이나 사람이나 모름지기 때가 되면 새끼를 쳐야 합니다, 새끼를. 그게 진짜 애국 아닙니까?


새끼… 새끼라니. 난데없이 날아든 탁구공에 미간을 맞은 기분이다. 설마 저걸 농담이랍시고 한 건가, 저걸 듣고 웃어야 하나 싶은데 거짓말처럼 양 옆에서 웃음이 터진다. 후후. 후후후. 내 것이 아닌 침방울들이 인어의 물거품처럼 완고하고 허망하게 공중으로 흩어진다.


좌우간 뭐든 대답이 시원시원해서 보기 좋습니다. 요샌 지나치게 예민한 여성들도 많은데.


면접관의 시선이 흘낏 내 쪽을 향한다. 졸지에 예민한 여성이 되어 어설피 미소를 짓는다.

머리가 빙빙 돈다.


나……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지.

구리는 지금쯤 무얼 하고 있을까.

아픈데, 혼자 괜찮을까.

어서 구리가 있는 곳으로 돌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