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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_11 한줄평 : 한구절

by 해란

# 2025년 11월 독서 목록

1. 『온 우주가 바라는 나의 건강한 삶』 *재독
2. 『이 지랄맞음이 쌓여 축제가 되겠지』
3. 『지극히 나라는 통증』
4. 『우리의 정원』
5. 『우리는 마이너스 2야』
6. 『프랑켄슈타인』
7. 『우리가 키스하게 놔둬요』


# 남현지, 『온 우주가 바라는 나의 건강한 삶』 창비(2024)

한줄평

그럼에도 불구하고 달리기 시작한다, 더 해보려고 들어간다, 실은 끝까지 닫힌 적 없던 문을 열고.


한구절

나라고 주장할 만한 것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은데

이름을 부르면 고개를 들고


생각해보면 그 문은 끝까지 닫힌 적이 없었다

(「바깥으로」 부분)



# 조승리, 『이 지랄맞음이 쌓여 축제가 되겠지』 달출판사(2024)

한줄평

빛만 보아 온 자에게는 보이지 않는 찬란한 어둠의 축제.


한구절

나는 어둠을 훑어보았다. 내 눈에 보이는 것은 온통 어둠뿐이었다. 하늘을 수놓은 수백 송이의 불꽃이 궁금했다. 그러나 지금 저 불꽃을 볼 수 없다 해서 아쉽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나의 불꽃은 더 찬란하고 빛나기 때문이었다. (p. 15)



# 하재영, 『지극히 나라는 통증』 문학동네(2025)

한줄평

끝내 쓰지 못한 이야기와 부러 말하지 않은 고통 속에 실재하는 진실 곁에서 세워올린 여성의 언어.


한구절

우리가 서로의 고통을 한순간도 공유하지 못한다 해도, 언어화될 때 형태를 가지는 아픔이 있다면 우리의 이야기는 정직하게 시도되어야 한다. 닿지 못할 것을 각오한 글만이 누군가에게 닿고, 실패할 것을 예감한 글만이 끝까지 읽힐 것이다. (p. 216)



# 김지현, 『우리의 정원』 사계절(2022)

한줄평

모두가 보이지 않는 선으로 연결된 푸른 별에서, 제각기 다른 우리가 함께 가꾸는 마음의 정원.


한구절

상대도 나도 서로의 모습을 볼 수 없고, 그래서 어떤 편견도 없을 때, 그때가 가장 솔직해질 수 있는 순간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오늘 우리가 서로 마주 보고 앉아 한 끼를 먹고, 조금 붉어진 눈으로 각자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들을 꺼내 놓았다. 혜수가 트위터에서 보여 주는 모습은 혜수의 가장 내밀한 한 부분일 뿐, 혜수의 전부는 아니다. 나도 그렇듯이. (p. 169)



# 전앤, 『우리는 마이너스 2야』 사계절(2023)

한줄평

플러스든 마이너스든 함께라면, 등을 마주 대고 기댈 수 있다면 우린 친구야!


한구절

“등짝 좀 빌려줄래?”

김세정은 말없이 등을 내주었다. 우리는 등을 마주 대고서 공기를 한껏 들이마시고 내뱉었다. 아까와는 조금 다른 숨이 느껴졌다. 세아를 그리워하는 두 개의 등이 천천히 오르내렸다. (p. 163)



# 메리 셸리, 오수원 옮김, 『프랑켄슈타인』 현대지성(2021)

한줄평

자기연민에 빠진 무책임한 창조자와 자기혐오에 잠겨 무분별해진 피조물의 데칼코마니.


한구절

기억해주시오. 나는 당신이 만든 존재라는 것을. 나는 당신의 아담이어야 하는데 오히려 타락한 천사가 되어버렸소. 그대는 아무 잘못도 저지르지 않은 내게서 기쁨을 박탈했어요. 더없는 행복이 보이는 온갖 곳에서 나 혼자만 돌이킬 수 없이 배척을 당하고 있소. 원래 나는 어질고 선했소. 불행 때문에 악마가 된 겁니다. 나를 행복하게 해주시오. 그러면 다시 선한 자가 되겠소. (pp. 126~127)



# 사포 외, 이성옥 외 옮김, 황인찬 엮음, 『우리가 키스하게 놔둬요』 큐큐(2017)

한줄평

깨지고 깨뜨린 자리에서 생생히 타오르는 오색찬란한 사랑의 노래.


한구절

그가 울었고, 나도 똑같이 울었다.

우리는 잠시 손을 잡았고,

그 순간 우리의 손을 붙든 건 사랑이었음을 알았다.

(안토니오 보토, 「슬픈 사랑의 노래」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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