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날개 연대기』
2. 『네가 누구든』
3. 『두부를 구우면 겨울이 온다』*재독
4. 『먼지가 가라앉은 뒤』
5. 『슬픔의 방문』
6. 『탁월하게 서글픈 자의식』
7. 『칼자국』
8. 『당신의 슬픔을 훔칠게요』
9. 『냥글냥글 책방』
10. 『투명 고양이 또또』
11. 『우리는 무한한 우주를 건너 서로를 만났고 이 삶을 함께하고 있어』
12. 『모텔과 나방』
촛불에서 횃불로 화하여 철새처럼 날아가는 여자들의 연대기年代記 혹은 연대기連帶記.
하나의 새를 선두로 비행하는 새의 군락을 발견한 엄마는 그 모습이 맨 앞의 새가 무리를 통솔하는 것이 아니라 위치를 바꿔 가며 서로를 배려하고 있는 모양새인 것을 알게 되었다. 엄마는 그 모양새를 유심히 보다가 향했다. 언니들이 있는 곳으로 (pp. 240~245)
우리는 누구나 타자로부터 만들어지지만 우리가 누구인지는 스스로 만들어나갈 수 있다, 진실을 마주할 용기가 있다면.
좁은 틈새로 차가운 바람이 불어와 미티의 얼굴에 닿는다. 그녀는 인사를 할지, 웃으면서 자기소개를 할지 망설인다. 그러나 그냥 입을 다물고 다가올 일을 기다린다. 그녀가 마땅히 겪어야 할 일을 기다린다. 다른 세상의 차가운 공기를 받아들인다. 그 공기에 자신을 맡긴다. (p. 343)
안팎으로 총성이 그치지 않아도 두부는 평화롭게 구워지는 이상한 흐름 속에서 홀로 살아남은 죄, 매달 매일 매 순간 초기화되는 흰 노트.
모든 것이 끝나도
어떤 마음은 계속 깊어진다
(「두부를 구우면 겨울이 온다」 부분)
재난이 휩쓸고 간 자리에서도 삶은 이어지고, 서로의 일상을 돌보려 애쓰는 사람들이 우리의 세상을 지탱하고 있음을.
우리는 누구나 ‘만일’이 아닌 ‘언제’를 살아간다. 비극은 매일 우리 주변에서 일어난다. (…) 나는 우리가 재난에, 혹은 재난의 변두리에 휘말리는 경험이 특별하다고 느끼지 않는다.
우리가 그 자리에 없어야 할 이유는 없었으므로. (pp. 235~236)
슬픔은 여지없이 마음을 때려눕히지만 기어이 바닥을 딛고 일어서게도 한다, 슬픔의 선객이 사랑인 사연으로.
나는 아프고 다친 채로도 살아갈 수 있는 세계를 원했다. 고통으로 부서진 자리마다 열리는 가능성을 책 속에서 찾았다. 죽고, 아프고, 다치고, 미친 사람들이 즐비한 책 사이를 헤매며 내 삶의 마디들을 만들어 갔다. (p. 10)
납득되지 않는 슬픔을 설명할 길 없어 왜 죽을 수밖에 없는지 설명하는 글을 쓴다, 나를 긍정하기 위해.
내가 한참 찢어지고 온 날에는 그곳에 그냥 그렇게 있는 책, 을 보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얘는 종이고 나는 사람인데 찢기는 쪽은 나구나. 너는 나를 안 버리겠구나. 내가 너를 버리기 전까지는 내 옆에 계속 있겠구나. 너는 계속 책이겠구나. (p. 179)
엄마가 만든 칼자국을 먹고 자라난 딸이 제 손으로 칼자루를 쥐고 열매를 깎는다, 침이 고인다.
썰고, 가르고, 다지는 동안 칼은 종이처럼 얇아졌다. 씹고, 삼키고, 우물거리는 동안 내 창자와 내 간, 심장과 콩팥은 무럭무럭 자라났다. 나는 어머니가 해 주는 음식과 함께 그 재료에 난 칼자국도 함께 삼켰다. 어두운 내 몸속에는 실로 무수한 칼자국이 새겨져 있다. 그것은 혈관을 타고 다니며 나를 건드린다. 내게 어미가 아픈 것은 그 때문이다. 기관들이 다 아는 것이다. 나는 ‘가슴이 아프다’는 말을 물리적으로 이해한다. (p. 8)
당신의 슬픔을 불러들여 경애로 돌려보내는 일, 당신을 위로하고 싶은 사람의 일.
사랑받던 이가 조금 일찍 선택한 죽음은 살아 있는 편에선 안타까운 일이지만요, 그이의 편에서는 정말 수고했어요, 이해받을 만한 일이기도 하지 않을까요? 어떤 헤어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일순간이 아니라 일생이 필요하기도 하답니다. (p. 172)
비인간동물과 함께 살아가며 겪는 사랑의 희로애락이 어떤 모습인지 궁금하다면.
”한 생명을 책임지는 게 얼마나 큰일인지 아나? 키울 때야 귀엽고 좋지, 그거 죽을 때 어짤래?”
그땐 속으로 ‘사는 동안 최선을 다해 사랑하면 되지. 죽고 나서 후회 없도록’하고 생각했었다. 노랭이가 온 이후 나는 이제야 엄마 말의 의미를 알게 되었다. 사는 동안 최선을 다할 수 없다는 것을. 후회 없이 사랑한다는 건 불가능하다는 것을. 진정 사랑하기에 후회가 남는다는 것을. (p. 206)
눈에 안 보인다고 존재하지 않는 게 아냐, 보이지 않아서 그리워하고 있다면 이미 함께인 거야.
‘산타 할아버지, 제 소원은 또또가 또 와서 또 밥을 먹는 거예요.’ (p. 62)
반려동물을 잃고 공허와 자책의 나락에서 가슴을 쥐어뜯을 수밖에 없는 모든 반려인에게.
억지로 고통에서 벗어나려 할 필요가 없고, 그렇게 되지도 않습니다. 우리는 평생 그 고통을 안고 삽니다. 그래도 괜찮다는 사실을 경험하고 이해하는 게 중요합니다. (…) 하지만 반려동물에 대한 그리움과 슬픔을 늘 느끼려고 애쓰지 않아도 됩니다. 이제까지 반려동물을 사랑하려 애쓰지 않아도 사랑하게 되었고, 생각하려 애쓰지 않아도 그냥 떠올랐습니다. 우리는 그냥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반려동물은 언제나 마음속에 있을 것입니다. (pp. 131~132)
고통으로 영혼의 허기를 채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아픔이 사랑하는 자의 몫인 까닭이오.
아프다
두 날개를 마음대로 가누지 못할 때
천사는 몸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인간의 몫」 부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