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야 임산부
고작 9 주차 임산부이다.
갈길이 멀고도 먼 임산부이다.
얼마 전 병원에서 심장소리를 듣고 난 후에야 정말로 애기가 있긴 있구나 하는 생명의 신비와 정말로 우리에게 애기가 생겼구나 와 닿았다.
그런데 문제는 이제 고작 9주 차인데 힘들다는 것이다... 주위 친구들과 언니들 그리고 회사 동료까지 많은 경우를 보았고, 책으로 알려주지 않는 임신과 육아의 고통을 참으로 많이 들었다. 하지만 역시 사람은 자기가 경험해봐야 한다고 이건 뭐 마음의 준비는 했지만 벌써 힘들다.
가장 놀라웠던 건 임신인걸 테스터기로 확인하고 병원을 갔더니 드라마에서 보던 것처럼 배 초음파를 하면서 임신입니다~ 하는 게 아니었다. 아직은 조그매서 질 초음파를 봐야 한단다. 순간 내 귀를 의심했다. 그리고 바로 튀어나온 말은 “남편은요?? 같이 봐요?”였다.
원래 임신이란 게 남편도 같이 병원 가서 초음파를 보는 거 아니었나?
간호사분은 걱정 말라더니 정말로 내가 먼저 진료실을 들어가고 담요로 잘 덮고 삼각지대에 남편을 앉혔다.
솔직히 임신인걸 5주 차에 알았으니 4주가 흘렀을 뿐이다.
임신을 몰랐던 순간과 알게 된 시기에는 쏟아지는 잠으로 내 몸이 이렇게 약했나? 의심이 들었고,
그때는 퇴근 후 9시면 넉다운돼서 잠들었었다.
임신인 걸 알게 된 이후로 차차 졸음은 사라져도 퇴근 후 피로는 사라지지 않았다.
평소에도 퇴근하면 힘들지만 대략 그 피로도의 2-3배를 체감 중이다. 경험자의 말로는 다들 중기가 되면 사라진다 하니 그날만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매일 타던 지하철 버스가 나에게 이렇게 고통을 줄지 몰랐다.
나는 편도 한 시간이 좀 안 걸리는 출퇴근 길이다. 버스와 지하철을 환승하며 간다. 출근길은 그나마 컨디션이 좋다. 하! 지! 만! 퇴근길은 그야말로 HELL이다. 출근길보다 훨씬 많은 사람과 사람들 사이에서 밀리고, 임산부 좌석에 누구라도 앉아있기라도 한다면 그날은 지옥이다. 지하철은 겨우 22분 타는데 그 시간 동안 토하지 않기 위해 나와의 싸움이 시작된다.
속이 울렁울렁거리고 지나가는 사람에게서 나는 냄새가 이렇게 가까이에서 날 줄이야... 특히나 술 마신 분이나 담배냄새가 나면 정말 구역질이 바로 나오며 빨리 도망가야 한다.
먹는 건 괜찮지만 입덧 중에서도 냄새 지옥에 빠졌다. 매일 하던 밥 짓던 냄새가 싫어졌다. 친정엄마가 너 임신했을 때 밥 짓는 냄새가 싫어서 방에 들어가고 그랬어~ 했는데 그게 딱! 나다. 매일 열심히 맛있는 밥을 해주는 쿠쿠에서 증기라도 나오기 시작하면 바로 방으로 도피한다.
참으로 다행인 건 오전에 컨디션이 좋아서 출근길이 덜 고된 것과 회사에서는 컨디션이 좋다는 것이다. 그동안 회사생활을 해오면서 입덧이 심해서 아직 배도 안 불러왔는데 힘들어서 관두는 여직원들을 보며 의아한 적도 있었다. 그런데 충분히 그럴 수 있겠구나... 라며 이해가 되었다. 정말 사람은 자기가 그 상황이 닥쳐봐야 안다더니 딱 그 상황이다.
아! 그리고 나는 워낙에 활동적이고 주말이면 며칠 전부터 남편과 이번 주 주말은 뭐하고 놀까~ 어디를 가볼까~ 무엇을 먹으러 가볼까~ 고민하던 나에게 안정이 될 때까지 대략 16주까지는 조심하라고 한다.
되도록 집에서 쉬라고 하는데 이것도 하루 이틀이지 매주 토, 일 집에 있거나 고작 하는 거라곤 동네 산책 같은 거리가 되어버리니 너무 심심하고 답답하다.
집 현관만 열어도 단풍이 울긋불긋 이쁘고 하늘도 새파란데 좋은 곳에 갈 수 없다니 씁쓸하다.
가장 걱정스러운 건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초기 유산이 제일 위험하다는 말을 듣고 먹는 것도 항상 하던 행동들도 조심 중인데 당최 눈에 보여야 말이지... 보이지도 않으니 잘 있는 건지... 걱정이 태산이다.
임신을 몸소 체험하니 신비하지만 고되다.
40주 참으로 긴 거 같으면서도 짧다. 벌써 9주가 지났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