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연애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IAMLOCKED Feb 13. 2016

사진과 기억

그리고 헤어짐

사람의 기억은 온전하지 못하다.

당장 어제 있었던 일을 떠올려봐도 제대로  기억할 수 있는 것은 극히 일부일 것이다. 난다 하더라도 세세한 디테일까지 기억해내지는 못한다. 나의 기억이 벌써 의식의 영역을 지나 무의식의 영역에 잠들어 버렸기 때문이다. 한번 무의식에 들어간 기억들은 특별한 매개체를 통하지 않는 이상 나의 호출에 응답해주지 않는다. 가끔 꿈을 통해 만나기도 하지만... 거의 모든 기억들은 이렇게 무의식에 잠든 체 영영 나의 호출을 받지 못하게 된다.





사람은 기억이 온전하지 못하기 때문에 살아갈 수 있다.

고 한다. 왜냐면, 슬픈 기억 아픈 기억들이 지워지지 않고 계속 난다면 삶 자체가 괴로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좋았던 일. 행복했던 기억. 영원히 간직하고 싶은 이 기억들마저 무의식의 영역으로 넘어가는 것은 굉장히 슬프고 불행한 일이다.




내가 카메라를 들기 시작한 이유.

는 사진이 매개체가 되어 행복했던 순간들을 "박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몇 년 전 아니 작년에 찍은 사진들만 봐도 무의식에 갇힌 기억이 돌아옴은 물론...  그때의 온도, 분위기, 주변 향기까지 사진 한 장이  가져다주는 기억은 실로 놀랍다. 이 경험을 해본 뒤로는, 부끄럽게도 누구나 갖고 있을 병인 "셔터 한번 누르기  귀찮음"으로부터 자유로워졌다. 사진을 찍은 후, 사진 정리를 꼭 잘 하지 않아도 된다. 우리는 이미 대용량의 시대에 살고 있으므로.. 넉넉한 크기의 하드디스크 드라이브 하나에 몇 년 몇 월 며칠 정도만 폴더명을 정한 후에 사진을 몽땅 넣어두면... 이것만으로도 다시 사진 폴더를 꺼내보기에 충분하다.




헤어지고 나면 누구나 슬프다.

늦은 새벽, 쓰레기를 버리러 밖을 나섰는데 버려져있는 누군가의 편지와 선물을 보게 되었다. 나 역시 답을 얻지 못했던, "헤어지고 나면 꼭 이렇게 정리를 해야 할까?"에 대한 본격적인 생각을 하게 된 계기가 되었으며 그날 새벽 나는 "아니오"라는 답을 얻었다. 이때가 공교롭게도 전 여자친구와 헤어진지 6개월이 지났던 시점이었고, 헤어진 그날 이후로 나는 같이 찍은 사진들을 편집했던 맥북프로에 전원을 6개월간 켜지 못했다. 헤어졌던 당시에는.. 사진은 물론이고 그녀와 함께 만졌던 물건 그로부터 떠오르는 기억들이 나에게 비수처럼 꽂혀왔기 때문이다. 맥북프로에 전원을 켜면 바탕화면 여기저기에 널려있는 사진 폴더와 라이트룸을 켜면 나타날 편집 장면들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지 않아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 결국 추억이 된다.

사람마다 이별을 받아들이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다르게 마련이다. 누군가는 수개월.. 어떤 누군가는 몇 년이 걸리기도 한다. 서른한 살이 된 지금은, 헤어졌다고 하여 모든 사진을 다 지우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보통 연애를 하게 되면, 모든 활동을 그 혹은 그녀와 함께하기 때문에 당연히 함께 찍은 사진들이 나의 전체 사진이 되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그 사진들을 모두 지우면 해당 연도의.. 나의 기억 역시 모두 공백으로 날아가게 된다. 비록 그/그녀와의 마지막이 좋지 못했다 하더라도 사진을 찍었던 당시의 행복함은 시간이 흐른 뒤에 떠올려 볼 "우리"가 아닌 "나"의 소중한 추억으로 남길 수 있지  않을까?라는 조금은 이기적인 생각이 지금의 내 결론이다. 물론, 이 사진들을 본다고 하여 그때로 돌아가고 싶다거나 그때의 그 사람이 그리워지는 것은 아니다. 졸업식 날 아무리 서럽게 우는 아이도 학교에 그냥 남아 있고 싶어 우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