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예와 사랑에 빠져봐

<마이코네 행복한 밥상>에서 인상깊었던 대사

by 노르키
무용은 수백 번 수천 번을 연습하고 외워도 매번 다르게 표현 돼.
이 단풍도, 저 달도,
오늘 저 배 위에서 내 무용을 지켜볼 사람들과도
다시는 똑같은 순간을 함께할 수 없어.
일생에 단 한 번인 거야.
그래서 난 늘 마음속으로 작별 인사를 하면서 춤을 춰. ‘안녕히.’
사랑은 인간한테만 하는 게 아니야.
우선은 기예와 사랑에 빠져봐.


6D38424D-8AE1-4A64-AEDD-0F1AA2307D1A.jpeg

요즘 넷플릭스에서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마이코네 행복한 밥상>을 보고 있다. 주인공인 두 소녀는 중학교를 졸업하고 마이코(예비 게이샤)란 꿈을 안고 시골에서 교토로 온다. 마이코가 되고 싶은 스미레는 무용과 예술에 재능이 있다. 반면에 낙천적인 키요는 야망도 재능도 없어서, 집으로 돌아가라는 말을 듣는다. 그래도 키요가 정말 좋아하고 잘하는 것이 있으니 바로 요리. 친구 따라 마이코가 되려고 교토에 왔던 키요는, 이젠 이곳에서 마카나이(연회나 기숙사에서 요리하는 사람)로 성장해 간다. 두 소녀의 순수한 동경과 배워나가는 기쁨이 내게도 전해졌다.


‘기예와 사랑에 빠져봐’


오래도록 여운이 남는 대사였다.


내게도 사랑에 빠지고 싶은 기예가 있다. 글쓰기.


나는 왜, 언제부터 글쓰기에 관심을 갖게 됐을까? 내가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만지고 느낀 아름다운 것들을 기록하고 싶었다. 그리고 다른 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었다. “이것 봐. 내가 본 세상, 참 아름답지? 우리 이렇게 재밌고 예쁘게 살자.” 이런 마음을 담아서.


가족과 봄에 본 인천시청 앞 벚꽃, 강화도에서 직접 캔 쑥으로 만든 쑥떡, 우리 집에서 기르던 귀여운 고양이, 아빠가 만들어준 썰매, 엄마의 웃음소리, 너무 귀여웠던 어린 동생의 볼, 사랑하는 남자친구의 처진 눈… 내가 느낀 좋은 것들이 사라질까 봐 모두 남겨두고 싶었다.


언제부턴가 학교에서 글쓰기 상을 받고, 선생님에게 칭찬받고, 기자가 되어보라는 권유를 받고, 그렇게 글쓰기가 내 길이라고 믿었다. 직장에선 회사와 독자의 인정을 받으려고 애쓰며 살았다. 인정받으려고 쓰다 보니 잘 써지지도 않았다. 물론 지난날을 돌이켜보면 쉽지만은 않았다. 내게 모두 도움이 되는 시간이었다. 덕분에 나는 꾸준히 내가 아끼는 기예의 세계, 글쓰기를 가까이하며 이 세계에 발가락을 담그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장장 십 년 가까이 왜 이렇게 글이 내 뜻대로 안 써지나 고민해야 했다. 왜 한 글자도 제대로 선뜻 쓸 수없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상사의 이죽거리는 말도 한동안 머릿속에 맴돌았다. “나는 재능이 있어. 근데 너는 있니? 다른 일 알아봐야 하지 않겠어?” 그 말이 부당한 줄 알면서도 아무런 말도 못 했던 이유는, 재능이란 화수분처럼 솟아나는 신이 내린 특별한 선물인 줄 알았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그런 것은 특별한 천재의 것이려니 했을 뿐, 내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었다. 사실은 기예를 사랑하는 마음이야말로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재능인데 말이다.


그동안은 인정받고 싶은 마음으로 글을 써왔지만, 이 예술을 사랑하는 마음을 잊고 지냈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이 일을 좋아해. 이것을 통해 세상과 연결되고 싶어. 그러니까 계속해서 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내 딸을 바라보듯 나를 바라볼 수 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