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뜻한 풍경이 되고 싶다

by 노르키


오늘 낮, 동네를 걷다가 처음 보는 풍경을 발견했다.


주택 앞에 학생 몇몇이 앉아서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어떤 학생은 양반다리를 했다. 누군가는 발을 쭉 뻗은 채였다. 저마다 맘에 드는 자리를 골라,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는 모양이었다. 햇볕은 따스했고 거리는 조용했다. 귀를 기울이면 새들이 나뭇가지를 흔드는 소리도 들렸을 테다. 학생들은 말없이 붓을 들고 스케치북에 무언가를 칠했다. 미동도 없이 앞을 응시하는 이도 있었다. 그의 눈이 향하는 곳을 따라가 봤다. 이제 막 움트려는 목련꽃이 보였다.


우리 집 앞에는 여자대학이 있다. 지난 3년 동안은 유례없이 거리가 텅 비어 있었다. 올해 코로나 거리 두기가 끝나면서 대면 수업으로 바뀌었다. 이제야 거리에 사람들이 보인다. 이렇게 볕 좋은 봄날, 어느 미대 교수는 야외 수업을 포기하기 어려웠는지도 모른다.


학생들은 꽃나무나 담벼락 같은 풍경을 눈에 담고 그렸다. 그들도 알까? 그들 자신도 풍경의 일부가 되었다는 사실을. 늘 똑같았던 동네의 공기가 달라졌다. 3년 동안은 겨울처럼 고요하기만 했던 거리. 땅바닥에 앉아 햇볕을 쬐며 꽃을 유심히 관찰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전에 없던 생기와 색채가 더해지는 기분이었다.


나도 풍경의 일부다. 평소엔 내가 풍경을 바라보는 주체이기에, 낯선 이들에겐 나 또한 풍경이란 사실을 잊기가 쉽다. 이왕이면 주위를 산뜻하게 물들이는 풍경이 되고 싶다. 자주 웃고, 천천히 걷고, 미움이나 경멸을 발산하지 않기. 우선 지금 여기에서 당장 할 수 있는 일들이다.


조용한 곳을 거닐고 싶어졌다. 마을버스를 타고 길상사에서 내렸다. 입구 현판에는 '삼각산 길상사'라고 쓰여 있다. 삼각산은 백운대, 인수봉, 만경대 세 봉우리를 품은 북한산의 또 다른 이름이다. 탑을 돌며 가장 먼저 아기의 건강을 기도했다. 그다음 내 마음에선 이런 말이 떠올랐다. '사랑하고 자비로우며 너그럽게 사는 것이 나를 보호하는 길이다.'


절 안을 걷다가 길상화 공덕비를 봤다. 길상사는 요정 '대원각'을 운영했던 김영한의 법명에서 따온 이름이다. 기생이자 대원각 주인으로 큰 부를 쌓았던 김영한은 법정스님의 『무소유』에 감화했다. 그리고 대원각 자리엔 길상사가 생겼다. 백석 시인에겐 어여쁜 '자야'로 불렸다던 김영한. 법정스님은 그녀에게 길상화라는 법명을 줬다. 공덕비 옆 안내판에는 백석의 유명한 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도 쓰여 있다.


당나귀란 단어를 보니 '토리노의 말'이 생각났다. 1889년,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는 토리노에 있었다. 채찍질당하면서도 꿈쩍 않는 말을 목격했다. 그는 달려가 말을 끌어안으며 마부를 향해 그만하라고 했다. 그날 이후로 10년 가까이 식물인간으로 살다가 세상을 떠났다. 채찍을 맞는 말을 끌어안으며 울었다는 니체의 마음을 상상해 본다.


오는 길엔 남편이 좋아하는 빵집에서 말차파이와 레몬 퀸아망을 샀다. 이따 퇴근해 돌아올 남편에게 먹여주고 싶었다. 날이 매우 따뜻했다. 원래 3월 이맘때면 꽃샘추위가 어울리는데. 새삼 나의 일상이 고마웠다. 미우나 고우나 7년 넘게 다닌 회사 덕에 모은 돈으로 이렇게 나만의 시간을 보낸다. 남편도 내 마음을 편하게 해 준다. 그 덕에 오랜 소망이었던 활동들을 한다. 글 쓰고, 책 읽고, 공부하고, 산책하고...


어제는 불현듯 아무것도 해놓은 게 없는 것 같아 불안해졌다. 남편이 나를 달랬다. "글은 평생 쓸 텐데 뭐가 그리 급해."


삼선교부터 성북천을 따라 집으로 걸었다. 청둥오리 두 마리가 살짝 경사진 바위를 따라 경쾌하게 미끄러져 내려갔다. 물에 몇 번씩 코를 박기도 했다. 태어날 아이에게 보여주고 싶은 풍경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헤엄치는 동물들을 꼭 보여주고 싶다. 아이가 자연을 유심히 관찰하며 존중하길. 자신이 자연의 일부이자, 누군가의 상쾌한 풍경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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