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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르키 May 09. 2023

클래식 FM 라디오를 듣다가 발견한 음악들

냇 킹 콜, 미셸 르그랑, 생상스 


임신 20주쯤부터 KBS 콩 라디오 앱으로 클래식 FM을 듣는다. 처음엔 태교 음악으로 들을 요량이었다. 그러다 문득 떠오른 사실, 나 클래식 참 좋아했지! 일하고 기사 쓰고... 새로 나오는 노래들을 듣다가 오랫동안 클래식을 잊고 살았다.  


클래식을 좋아하게 된 이유들이 생각난다. 첫째, 7살 때부터 13살까지는 동네방네 유행이었던 피아노학원에 다녔다. 음악 천재는 아니었지만, 악보 보며 혼자 즐겁게 칠 정도까진 배울 수 있었다. 둘째, 고등학생 때는 학교 관현악 동아리에서 활동했다. 처음엔 교지편집부에 들어갔다. 그런데 한두 살 많은 선배들이 같잖게도 군기를 잡기에, 당장 탈퇴하고 관현악 동아리에 들어갔다. 쌩초보를 우대한다는 말이 마음에 들었다. 나는 바이올린을 선택했다. 모아둔 용돈을 털어 20만 원짜리 바이올린을 샀다. 당시 내가 스스로 돈을 들여 산 물건 중에 가장 비쌌다.  


고 2 겨울방학에 음악실에 모여 연주회를 준비했던 기억이 난다. 어느 여름날 저녁엔 동아리 애들 몇몇과 구청에서 여는 작은 음악회에 가기도 했다. 자리도 마땅치 않아서, 교복 차림으로 공연장 계단에 쪼그려 앉아서 봤다. 나중에 성인이 되어 여러 좋은 공연들을 보러 다녔다. 하지만 아직까지 가장 설렜던 공연을 꼽으라면, 희한하게도 열여덟 살에 꾸깃꾸깃하게 계단에 앉아 봤던 그날 마림바 공연이다. 


아래는 최근 한두 달 동안 클래식 FM에서 듣고 좋아서 기록해 둔 음악들이다. 이걸 보니 나는 꼭 클래식만 좋아하는 게 아니라, 재즈와 영화음악, 라틴음악을 골고루 좋아하는 모양이다. 



냇 킹 콜 - Aquellos Ojos Verdes 

우리말로 해석하면 '당신의 푸른 눈동자'. 라디오에서는 Trio los panchos가 부른 버전이 나왔다. 냇 킹 콜이 부른 노래가 듣고 싶어서 가져왔다. 영화 <화양연화>에서 장만옥과 양조위가 처음으로 식당에서 마주 앉았을 때 나온 노래라는데,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내가 14살 때 사촌언니 따라 자그마치 극장에서 <화양연화>를 봤다. 시네필을 자처하던 후배가 놀라 내게 물어본 적이 있었다. "개봉했을 때 극장에서 봤다고요?"만 15세 이상 관람가 영화였는데, 성인이었던 언니와 함께 가서 볼 수 있었다. 


물론 그때 나는 인물들의 감정을 전혀, 단 하나도 이해하지 못했다. 사랑도 몰랐고, 내 배우자와 바람피우는 사람의 배우자를 좋아하게 되는 마음을 상상하기도 어려웠다. 바닥에 팝콘을 쏟아서 당황했던 기억만 난다. 대학생이 되어서 다시 봤는데 감정선을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30대가 되어서 한 번 더 봤다. 십몇 년 만에 드디어 <화양연화>를 좋아하게 됐다. 나이가 쌓일수록 이해하고 느낄 수 있는 것이 늘어난다.  


Michel Legrand - What are you doing the rest of your life

미셸 르그랑 트리오의 '인생의 남은 날을 어떻게 보낼 건가요?(What are you doing the rest of your life?)' 다른 가수들이 부른 버전도 많다지만, 미셸 르그랑이 직접 연주하고 부른 이 버전이 마음에 든다. 


미셸 르그랑은 <쉘부르의 우산>의 'I'll wait for you'처럼 유명한 영화음악을 만든 작곡가다. 그가 작업한 영화 중에선 자크 드미의 <쉘부르의 우산>, 아녜스 바르다의 <5시부터 7시까지 클레오>를 봤다. 몇십 년 된 영화들인데도 세련되고 아름다웠다. 'What are you doing the rest of your life'의 노랫말도 찾아봤다. 가사가 아름다워, 서툴지만 옮겨봤다. 사랑이 듬뿍 담긴 노래였다. 


What are you doing the rest of your life

너는 남은 인생을 어떻게 보낼 거야?


North and South and

East and West of your life

네 인생의 북쪽과 남쪽, 동쪽과 서쪽에서


I have only one request of your life

네 인생에 단 한 가지 부탁이 있어


That you spend it all with me

나와 함께 모든 시간을 보내줘


All the seasons and the times of your days

너의 모든 계절과 시간들


Are the nickels and the dimes of your days

너의 삶의 사소한 것들 


Let the reasons and the rhymes of your days

당신 삶의 이유와 운율이 


All begin and end with me

모두 나와 함께 시작하고 끝나게 해 줘


I want to see your face in every kind of light 

모든 순간에 당신 얼굴을 보고 싶어 


In fields of gold and forests of the night

황금 들녘에서도, 밤이 찾아온 숲에서도


And when you stand

Before the candles on a cake


그리고 케이크 위의 촛불 앞에 당신이 서 있을 때 


Oh, let me be the one to hear

The silent wish you make

그대 마음의 고요한 소망을 듣는 한 사람이고 싶어 


Those tomorrows waiting deep in your eyes

그대 눈동자 깊은 곳에서 기다리는 내일


In a world of love you keep in your eyes

그대 눈이 간직한 사랑의 세상


Through all of my life

내 인생의 모든 기억을


I'll awaken what's asleep in your eyes

당신의 눈 속에 잠든 것을 깨울 거야 


It may take a kiss or two

키스 한 두 번으로


Through all of my life

내 인생 모든 기억을 


Summer, winter, spring and fall of my life

내 인생의 봄, 여름, 가을, 겨울


All I ever will recall of my life

내 삶에서 떠올리게 될 모든 것들은 


Is all my life with you

모두 너와 함께 하는 인생이야.



생상스의 <삼손과 데릴라> 중 '그대 음성에 내 마음 열리고' 

<삼손과 데릴라>는 프랑스 작곡가 카미유 생상스가 1868년에 작곡한 오페라다. 그가 작곡한 오페라 13곡 가운데 첫 번째 작품이다.  생상스는 만 세 살에 작곡을 시작한 뛰어난 천재였는데도, 칭찬이나 비판에 별로 반응을 보이지 않고 조용히 자신의 길을 가는 작곡가였다고 한다. 차분하고 여유 있는 태도는 언제나 그대로였다. 나와는 정반대의 사람인 것 같다. 


'그대 음성에 내 마음 열리고'는 <삼손과 데릴라> 2막에 나온다. 메조소프라노가 매혹적인 아리아를 부른다. 오페라에서 이스라엘은 불레셋(팔레스타인)의 지배를 받고 있다. 이스라엘의 용맹한 전사인 삼손(테너)은 하느님으로부터 커다란 힘을 받는다. 단, 머리카락이 힘의 원천이므로 머리카락을 자르면 안 된다. 불레셋의 아름다운 처녀 데릴라는 삼손을 유혹하고, 삼손의 힘의 원천을 알아내어, 밤에 삼손이 잠든 사이에 머리카락을 싹둑 자른다.   



몰랐던 음악들을 새롭게 발견하는 재미가 쏠쏠한 요즘. 내 마음에 든 음악을 다른 사람들도 들어주면 좋겠다. 클래식 FM을 듣다 보면 지금이 유튜브와 인스타그램이 지배하는 2023년이라는 사실을 잊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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