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하고 싶은 오늘의 몇몇 순간
오늘의 웃음
평상시 참하기 그지없는 나. 하지만 가족 앞에선 쉽게 망가진다. 지구 탐험에 관한 알쏭달쏭한 노래를 지어서 열 번씩 부르거나, 다리를 높이 들어 발가락을 동생 콧구멍에 찌르려고 할 때도 있다. (물론 진짜로 찌른 적은 없다.) 그런데 몇 해 전부터, 그러니까 결혼하고 나서부터, 남편 앞에서도 서서히 장벽(?)을 깨뜨려가는 나를 발견한다. 연애 시절에 남편은 내게 “망가질 준비가 하나도 안 됐네.”라고 말했었는데. 이젠 남편이 진지하게 뭐라 뭐라 하면 그 앞에서 꿀렁꿀렁 막춤을 추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다행히 남편에겐 아직 콩깍지가 남아있는 모양이다. “올드하지만 귀엽다.”라고 내게 말해줬다.
균이는 이렇게도 말했다. “이 웃음을 복주머니에 넣어 놓고, 화날 때마다 꺼내주면 안 돼? 으아악 화가 나다가도 복주머니를 던지면 갑자기 얼굴이 환해지면서 신나게 춤추는 거야.”
평소 내게 얼마나 잔소리를 많이 들었으면 그런 얘기를 할까나. 남편 말대로 웃긴 순간들을 복주머니에 두둑이 채워놔야겠다.
오늘의 균이
아까 저녁 식사 때 균이가 이런 말을 했다. “얼마 전에 평소 관심 있던 모임에 DM을 보내봤어. 언제 다시 사람을 모집하냐고. 지난 10년 간 균이를 봐왔지만 이런 모습은 처음이다. 관심 있는 모임에 직접 연락을 취해서 언제 모집 공지가 나올지 물어보다니. 그동안은 내 눈엔 뭐랄까, 균이는 이따금 ‘오르트 구름’ 같았다. (오르트 구름은 저 우주의 우리 태양계 끝자락에서도 더 멀찌감치 외곽을 감싸고 있는 거대하고 느슨한 구름이다.) 이제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향해 한 발짝을 뗐다. 태양계 안쪽으로 들어가려 하고 있다. 지금은 명왕성 정도의 거리로 진입하려 하지만, 언젠가는 해왕성으로, 목성으로, 지구로, 그렇게 좋아하는 것에 차츰 더 가까워질 날이 있겠지. 그리고 또 언젠가는 자신이 직접 하나의 태양계를 만들어 주변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태양이 될 날이 올지도 모른다. 좋아하는 것을 향해 좀 더 가까이 가보려는 작은 발걸음, 그게 창조의 시작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오늘의 연두
평소엔 잘 먹고 잘 놀아서 우리를 흐뭇하게 하는 연두가 오늘은 칭얼거렸다. 안아주지 않으면 계속 울었다. 기저귀를 갈아줄 때도 맹렬히 저항하며 뒤집었다. 울 때는 꼭 안아주면 울음을 멈춘다. 무거워진 우리 아기. 이제 내 허리와 목과 어깨에 쌓인 피로는 만성이 됐다. 그래도 안을 때 기분이 참 좋다. 따끈한 솜사탕처럼 폭신한 느낌, 달콤한 냄새, 동그란 볼과 턱. 칭얼거리고 잉잉거리고 우아앙 울어도 어찌나 사랑스러운지. 작은 손으로 내 손가락을 꼭 잡고 입에 가져가는 모습도 귀엽다. 종종 연두는 내 다리를 꼭 붙들고 입을 벌리며 내 옷을 문다. 그런데 재밌는 것은, 균이의 다리는 붙들지 않는다는 거다. ㅋㅋ 균이는 “너 그러기냐?”라며 섭섭해하면서도 사랑스러운 눈으로 아기를 바라본다.
오늘의 나
오늘 낮엔 균이가 아기를 돌봐주는 사이에 잠시 도서관에 다녀왔다. 준비해야 할 일이 있어서 노트북을 들고 갔는데, 할 일이 있을 때는 왠지 꼭 글이 읽고 싶어 진다. (할 일을 미루고 싶단 뜻이다.) 신문 1개(동아일보)와 잡지 3개(한겨레 21, 어라운드, 인)를 읽었다. 와, 틈새 시간에 읽어서 그런지 하나하나 재밌었다.
요즘은 책 <도둑맞은 집중력>(‘집중맞은 도둑력’으로도 유명해진 책)을 읽고 있고, 클레어 키건의 <Foster>를 원서로 읽고 있다. 물론 아주 천천히.
오늘 저녁에도 내가 좋아하는 클래식 fm의 ‘전기현의 세상의 모든 음악’을 들었다. 고마츠 료타의 반도네온 연주가 나왔다. 고마츠 료타는 내가 고등학생 때 즐겨 들었던 반도네온 연주자인데, 아직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그때도 지금도 여전히 좋은 그의 연주. 반도네온이라는 악기에 빠져 그 길로 걸어간 용기와 재능이 부럽다. 나는 듣는 것을 좋아했을 뿐, 해봐야겠다고 생각할 만큼 좋아하진 않았던 것 같은데.
내가 그토록 강렬하게 좋아하는 것은 무엇일까?
돈이 되지 않아도 할 수밖에 없을 만큼 좋아하는 것은?
나는 무엇을 쉽게 하지?
요즘은 이런 것들을 생각해 보게 된다.